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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영휘원과 숭인원 답사

안태수 2023. 8. 24.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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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모르는 할미와 손자가 나란히 묻힌 곳

 

영휘원은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후궁 순헌황귀비 엄 씨의 원(무덤)이고 숭인원은 고종황제와 엄귀비 사이에 태어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의민황태자 영친왕의 첫아들 李晉 원손의 원이다. 두 원 청량리 천장산 자락 홍릉공원에 나란히 마련되어 있다. 홍릉은 고종의 능호로 먼저 돌아가신 명성황후의 능이 있었으나 고종 승하 후 지금의 남양주로 합장하였다.

 

 

영휘원과 숭인원 (서울 동대문구 홍릉로 90)

 

 

永徽園과 嵩仁園 (사적 제361호)

 

 

 

◇永徽園

 

영휘원은 대한제국 1대 고종황제의 후궁이자 의민황태자의민황태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1854~1911)의 원이다. 황귀비는 엄진상의 딸로 8세 때 궁녀로 입궁하여 명성황후를 모시는 상궁이 되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시해당한 후 고종을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1897년 의민황태자 영친왕을 낳고 정식으로 고종의 후궁이 되었다가 1903년 황귀비로 책봉되었다. 황귀비는 신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져 양정의숙, 진명여학교, 명신(숙명)여학교를 설립하고 인재를 키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58세의 나이로 덕수궁 즉조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홍살문

 

 

능원 전경

 

 

향로, 어로, 정자각

 

 

비각

 

 

純獻貴妃永徽園

 

 

능상 봉분(원침)에는 호석을 두루고 문석인, 장명등, 석마, 망주석, 혼유석,  석양, 석호를 배치하였다.

 

 

 

◇崇仁園

 

숭인원은 원손 이진(1921~1922) 의민황태자 영친왕과 황태자비 이방자 사이에 첫째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1922년 4월 28일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황태자비(이방자)의 조선에서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우유를 잘 못 마셔 급성소화불량(진단)으로 생후 7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당시 풍습은 임금의 아들이라도 영아가 죽으면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 부모보다 먼저 죽어 불효를 했기 때문이다. 순종황제께서 특별히 장례를 치르도록 했다. 황태자비는 멀쩡하던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홍살문

 

 

향로, 판위, 정자각

 

 

비각

 

 

元孫 崇仁園

 

 

능상 봉분(원침)에는 호석을 두루고 문석인, 장명등, 석마, 망주석, 혼유석,  석양, 석호를 배치하였다.

 

 

금천과 금천교

 

 

어정(御井)

 

 

제실 일원

이방자라고 하면 금방 알아채도 의민황태자비 하면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방자는 일본 황족으로 아버지가 당시 일본 천황의 조카였다. 일본이 조선을 영구 지배할 목적으로 황실 간의 정략결혼의 대상이 되어 조선황실로부터는 환영을 받지 못했으나 그녀의 자서전 '세월이여 왕조여'에서 보면 절제와 인내, 배려의 미덕, 따뜻한 심성으로 조선 황실의 여인으로 적응해 나가는 모습과 한국인으로 동화해 나가는 과정이 훌륭하게 그려져 있다. 숭인원을 보고 있노라면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원손 이진의 애틋함 보다 그의 어머니 일대기가 더 가슴 아프게 저며 온다.        

 

 

 

 

 

 

 

2023년 05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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