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숨겨 놓은 산 아래 고이 잠들다
조선왕릉 총 42基 중 북한 개성에 있는 조선 초대 태조의 왕비 신의왕후 제릉과 2대 정종과 정인왕후 후릉을 제외한 40基 중 서울 의릉과 김포 장릉 2 곳만 남았다. 조선 왕릉을 답사하게 된 계기는 특별하지 않다.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며 산행 전, 후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산 주변에 있는 절과 명소를 찾으면서 조선 왕릉도 자연스럽게 게 되었다. 어느덧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왕릉은 국조오례의에 따라 비슷한 형식을 갖추었지만 왕릉이 있는 곳은 시대의 풍수지리설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왕릉 하나만 보면 됐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왕릉이 있는 곳은 수도 한양 100리 內 사방에 흩어져 있다. 왕의 무덤보다 입지가 더 답사의 관심사였다.
서울 의릉 (서울 성북구 화랑로 32길 146-20)
북한산 자락에 산 같지도 않은 산이 많다. 의릉이 있는 천장산도 해발 140m 밖에 안 되는 구릉지이다. 능을 조성할 당시는 북한산과 이어지고 한강과 연계하였으니 얼마나 장엄했을까!. 지금은 천 만 도시의 일부가 되어 서울 시민의 공원으로 거듭나 있다.
매표소
서울 의릉 안내도를 살펴보면 의릉은 천장산 동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천장산이 얼마나 명당인지 주변을 둘러보면 왕실의 묘역이 2 곳, 대학이 4 곳, 국가기관이 3 곳이 천장산을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다.
세계유산 서울 의릉 표석
500년 이상 지속된 조선왕조의 무덤이 훼손 없이 전해오고 있다는 것은 세계사에도 찾아볼 수 없는 유례이며 그 보존의 가치가 높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금천과 금천교
의릉(懿陵)은 조선 제20대 경종대왕과 계비 선의왕후 어씨의 동원상하릉이다. 경종(景宗 1688~1724)은 숙종과 옥산부대빈 장씨(장희빈)의 아들로 1720년 왕위에 올랐다. 선의왕후(宣懿王后 1705~1730)는 숙종 44년(1718)에 세자빈이 되었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슬하에 자식이 없어 이복동생 연잉군(영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홍살문
향로와 어로
정자각은 정면 3칸, 익량 좌, 우 1칸씩, 배위청 2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사 지넬때 사용하는 중심 건물로 건물 모양이 '丁'자와 같아 丁字閣이라 불렀다.
정자각 (측면)
정자각 神階와 御階
정자각 잔디광장
정자각 잔디광장 전경
비각
신도비 (朝鮮國 景宗大王 懿陵 宣懿王后 祔)
능침 전경
동원상하릉
동원상하릉
앵두나무
미선나무
개나리
자두나무
진달래
소나무 숲 산책로
능원 구역을 제외한 중간 산책로와 천장산을 경유하는 천장산 산책로 두 가지 산책로가 있다. 오랫동안 국가기간에 출입이 통제된 탓에 훼손도 되었지만 보존도 있었다. 숲이 그런 경우다. 민간인에게 개방되면서 숲은 차라리 망가진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도 나무가 울창하고 오래된 꽃나무도 많았다. 의릉 경내를 한 바퀴 도는 천장산 산책로는 생태계 복원 명목으로 잠정 폐쇄 중이었다.
천장산 등산로 입구
1962년 중앙정보부가 의릉 능역으로 들어와 의릉은 일반인에게는 철저하게 봉쇄되었다. 당시 천하를 호령하던 중앙정보부는 문화재란 역사 인식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연못을 조성하고 돌다리를 놓는 등 능원 훼손이 심각했다. 이후 정권이 바뀌며 중앙정보부도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뀌면서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을 한 후 의릉은 1996년에 다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2005년 능원 복원공사를 마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023년 0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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