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m 고지 수목한계선 빙퇴석만 나뒹군다.
간밤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흔적으로 살얼음이 끼었다. 해가 뜨면 기온은 급상승하여 한낮에는 20도에 육박한
다. 아침에 중무장하고 출발하다가 차츰 한 꺼풀씩 벗어 낮에는 무장 헤제가 된다. 일교차가 심해 컨디션 조절이
엉망이다. 여름에 개도 안 걸린다는 감기가 들어 약국 약으로 버티다가 미국 서부지역 여행 중 도져 샌프란시스코
에서 좋다는 미제 약을 달고 지냈다. 감기 기운은 사라지고 대신 기침으로 옮겼다. 남 보기에 큰 병 걸린 것처럼
콜록거렸다. 한국으로 돌아와 죽기 보다 가가 싫은 병원을 찾았다. 처방전대로 약을 지어먹고 나을만할 때 이번에
는 히말라야로 날라 온 것이다. 에베레스트 트레킹 중 기침이 재발하여 거식증과 함께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디보체 아침
하늘이 파래지면 산 그늘은 음침해 지고 설산은 더욱 더 눈부신다. 대지에는 찬 기운이 가득해지고 생명체들은 납
짝 엎드려 삶을 감춘다. 파란색, 흰색, 검은색의 단순 조화가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 생존을 허락하지 않는 죽음의
지대가 지구에도 있다.
(07:55) 디보체 출발
음식만 대하면 울렁증이 나 오늘 아침은 고추장 냄새도 역겹다. 한식 대신 로지에서 제공하는 감자수프와 토스트
로 양식에 도전해 본다. 마찬가지지만 기분을 새롭게 하기 위해 구역 구역 쑤셔 넣었다. 吐만 하지 않으면 됐다.
달콤한 크림 케이크와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08:35) 임자콜라 다리 건너기
오늘은 딩보체(4,410m)까지 8.5km, 고도를 700m나 높인다. 도중에 팡보체(3,930m) 지나 소마레(4,010m)부
터는 4,000 고지에 접어든다. 작년 이맘때 안나푸르나 BC (4,130m) 트레킹이 최고 높이에 오른 기록이다. 오늘
은 그 기록을 뛰어넘어 새로운 높이에 도전한다. 돌이켜 보면 안나푸르나는 4,130m까지 숨이 약간 가쁜 것을 제
외하고는 아무 문제없었는데 에베레스트는 루클라부터 가벼운 고소증에 걸리고 말았다. 오늘은 하루 300m 이상
올라가지 말라는 수칙을 두배를 어기는데 버티어 낼지 걱정이다.
임자 콜라는 트레킬 진행 방향으로 우측에 캉테가 좌측으로 타보체를 끼고 있다. 양 옆 두 산의 높이가 6,500m가
넘고 트레일 평균 고도가 4,000m가 되니 7부 능선을 오락가락 하는 셈이다. 임자체(Imjatse 6,189m)는 딩보체
에서 로체 BC로 가다가 추쿵에서 갈라진다. 아마추어 트레커들이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올라갈 수 있는 산으로
빙하, 모레인, 크레바스, 세락, 아이스폴, 리지, 꿀루아르, 설원, 정상 등 설산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콜라
(Khola)는 네팔어로 계곡을 뜻한다.
아마다블람(Ama Dablam 6,814m)
티베트어로 '아마'는 어머니라는 뜻이고 '다블람'은 불교도들이 불단에 놓아두는 약상자를 말한다. 아프거나 심신
이 괴로울 때 찾는 데가 어머니이고 만병통치 약은 보물상자다. 불교에서는 그런 분을 약사여래라고 한다. 아마다
블람은 부처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주봉 앞에 조금 낮은 서봉 6,170m 북서벽에 마애불 좌상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또 주봉을 호위하고 있다고 해서 전위봉 혹은 장다름이라 부른다.
♡박창탁 (50, 울산, 전기공사업 대표, 산악회 회장, 산악마라토너, 킬리만자로 등정)
'요산의 하루'
산은 평편한 땅 가운데 높게 솟아있는 부분을 말한다. 히말라야 같이 장장 2,500km나 되고 남북의 너비가 200~
400km나 되는 산도 있다. 우리는 보통 산의 높이를 말할 때 지도에 표기한 데로 해수면부터 측정한 절대적인 고
도를 말한다. 그러나 산을 오를 때 체감하는 고도는 상대고도를 말한다, 에베레스트 트레일 주변에 솟아 있는 산
들은 하나의 커다란 산괴에 속한 봉우리에 불과하다. 그중 오르고자 하는 봉우리의 밑둥치부터 측정한 높이가 실
제 체감하는 고도가 된다. 베이스캠프에서부터 산의 실체가 보인다.
케니게이트 무사 통과
마을이나 절 입구에 호법신장이 문을 지키며 귀신이나 악마 혹은 삿된 무리들의 출입을 막는다.
초르텐
티베트 라마교 사원을 규모에 따라 모나스트리(Monastry 스님이 상주), 곰파(Gompa 스님이 없는 경우가 있음)
라고 부른다. 초르텐은 사원, 마을, 산지 등에 불탑 형식으로 부처의 사리나 불교의 여러 가지 상징물을 모신 전각
이다, 인도에서는 스투파라고 부른다.
라마교 육자 진언 '옴마니반메흠'만 암송해도 경전을 한번 읽은 효과가 있다.
아마다블람
트레킹 시작 3일차부터 아마다블람이 설산 중심에 떠올랐다. 너저분 하지 않게 전위봉만 대동하고 깔끔하게 솟았
다. 세계 3대 미봉, 쿰부 히말라야의 보석, 부처님을 모신 산, 어머니의 보석함, 등 추상적으로 불리지만 내 눈에
는 하늘로 비상하는 유니콘으로 보인다.
팡보체 마을
임자 콜라 계곡을 건너 타보체 7부 능선을 따라 느릿느릿 걷다 보니 어느새 팡보체 마을이다, 마을이 제법 커서
아랫마을 윗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마을 어디에서 쉴까도 고민되겠다. 우리는 가이드가 정한 로지로 따라가면 그
만이지만 나 홀로 트레킹을 경우 기준을 정해 놓으면 편할 거다. 마을 중앙이 좋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장소라 빈자리가 없을 경우가 많다. 그래서 편안하게 상행 일 경우 위쪽, 하행 일 경우 아래쪽에 잡으면 좋겠다.
팡보체 '엄홍길 휴면 스쿨' 안내판
(09:50) 팡보체((Pangboche 3,930m) 휴게소 도착
팡보체에서 보는 아마다블람
팡보체에서 보는 에베레스트 연봉
지금까지 임자콜라를 끼고 타보체 산기슭을 오르락 내리락 빙빙 돌면서 아마다블람, 에베레스트 연봉에 혼이 뺏
겨 힘든지도 모르고 지나왔다. '오뉴월 하루 빛이 무섭다'고 팡보체를 지나 4,000 고지가 가까우니 산이 달라지
고 길이 달라진다. 빙하의 흔적이 계곡 곳곳에 눈에 띈다.
케른(돌탑) 히말라야 희생자의 추모비
소마레 마을
척박한 땅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기본 환경이 안 되어 있다. 그래도 옹기종기 모여 산다. 티베트에서 건너온 셰
르파족이 자리 잡으며 그들의 터전이 되었다. 무얼 먹고사나? 옥수수, 감자, 무, 버섯 등이 주요 작물이고 야크,
양, 염소, 닭을 길러 우유, 치즈, 고기를 얻는다. 히말라야가 유럽에 알려지면서 원정 등반대를 시작으로 트레커,
여행객들이 몰려와 그들을 안내하고 짐을 날라주면서 얻는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요즘은 일 년에 수 만명이
몰려와 우리가 걱정할 단계는 지나 부를 축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마레가 손에 잡힐 듯해도 30분을 더 가야 한다. 고산에서 거리 측정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11:30) 소마레(Shomare 4,010m) 도착 점심
고도계는 4,025m, 만보계는 5. 030km, 기온은 17.5도를 가리킨다. 아침에 디보체에서 1.6도에서 출발했으니
일교차가 널뛰기 한 셈이다. 점심은 컵라면 박사장이 한국서 가지고 온 것이다. 컵라면 맛이 이럴 수가 얼큰한 국
물 맛은 사라지고 네팔 냄새로 회가 진동한다.
(12:45) 누운향나무와 너덜, 볼더 사이로 팡보체 마을을 벗어 난다.
딩보체 이정표
생소한 풍경이다. 사진이나 영상물로 보던 것 하고는 딴판이다. 감각 기관이 활발하게 돌아간다. 파란 코발트색
하늘에 빠르게 이동하는 흰 구름, 그 사이로 만년설에 덮인 에베레스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계곡은 점차 광활한
대지로 바뀌고 빙하가 물러간 자리는 모래, 자갈, 바위가 쌓여 강인지 벌판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생명체라곤 길
게 누운 향나무가 전부이다. 이걸 보고 있노라니 하늘이 빙빙 돈다.
카르카(Karka) 야크 방목장, 움막, 돌담.
내리막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다음에 내려간 만큼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체력이 바닥났을 때도 악을 쓰면 숨이
나고 발걸음도 떨어진다. 고소증은 숨이 아예 멎는다. 계곡을 지나고 긴 경사면이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다리 건너기
로부체 콜라
케른 (한국인 추모비)
박주훈(35), 황선덕(33)은 2003년 엄홍길이 이끈 한국 로체샤르(8,382m) 원정대에 참가 중 8,250m에서 추락
눈사태에 매몰된 실종 사고이다. 추모비는 우리 가이드(니마 셰르파) 자기가 세웠다고 자랑한다.
드디어 딩보체 임자콜라 강변 개활지에 넉넉하게 자리 잡고 큰 산에 둘러쌓여 마치 분지 같다. 겨울에도 따뜻하다
고 한다.
딩보체(Dingboche 4,410m)
(14:40) 딩보체 셰르파 랜드 로지 도착했다. 오후는 신기할 정도로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어 춥다. 불을 피우는
곳은 식당 겸 휴게실 한 곳, 그것도 연료 사정이 좋지 않아 5시부터 두 시간 가량 불을 피운다. 야크 똥이 주된 연
료라 화력이 형편없어 다들 난로가에 빙 둘러앉아 시간을 보낸다. 휴게실에 모인 사람은 트레커, 가이드, 포터들
이며 여러 날 같은 길을 걷다 보니 서로 얼굴이 익어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가이드나 포터 같이 고산
적응이 된 사람은 술을 마신다. 다들 부러운 눈치다.
2017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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