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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죽헌동 오죽헌 답사

안태수 2023. 6. 1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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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烏竹軒'은 신사임당과 율곡이 태어난 가옥 별칭이다. 

 

오죽헌은 경포대에서 차로 가까운 5분 거리에 있다. 경포호 주변으로 강릉의 명승들이 산재해 있다. 월파정에 송시열의 조암바위, 방해정을 비롯한 옛 정자들, 허균과 허난설현의 생가 초당마을, 강릉선교장, 매월당 김시습 기념관 등 일일이 돌아보지 못하고 오죽헌으로 직행했다. 

 

 

오죽헌 정문

조선 1440년(세종 22)에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崔致雲)이가 오죽헌을 건립하고 1505년 형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의 고택이다. 최응현은 둘째 사위 이사온에게 물려주고 이사온은 외동딸 사위 신명화에게 물려준다. 신명화는 외손자 권처균에게 상속했으며 권쳐균의 號가 오죽이라고 했다. 당시 사위가 처가 재산을 물려받는 풍습이었다고 한다. 신명화의 둘째 딸이 사임당이다. 사임당도 한양 이원수와 결혼하여 친정에 머물고 있으며 율곡을 낳고(몽룡실) 율곡이 6세 때까지 오죽헌에서 살았다고 한다. 

      

 

오죽헌 관람 동선은 고택을 중심으로 사당, 사랑채, 안채, 어제각 순으로 관람하고 율곡 기념관, 강릉시립박물관은 생략하고 야외 조형물을 찾아보고 숲길을 산책하기로 한다.   

 

 

오죽헌 숲길 정원

 

栗谷 李珥 동상

율곡 이이(1536~1584)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며 경세가였으며 1536년 (중종 31) 사헌부 감찰 이원수와 사임당 신 씨의 셋째 아들로 외가인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나 1557년(명종 12) 성주목사 노경린의 딸과 결혼하고 1584년(선조 17)에 49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의 총명함은 13세 때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고 1564년부터 아홉 차례나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호조, 병조, 형조, 이조판서 등 국가의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주요 업적으로 십만양병설 주장 등이 있고 생애와 깊은 연관이 있는 지역으로 그가 태어난 외가 강릉 오죽헌과 처가가 있던 황해도 해주 석담 그리고 세거지 파주 율곡리가 있다.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자운서원로 204에 율곡 이이의 유적지가 있다.     

 

자경문 일원

 

 

오죽헌 안내도

 

 

自警門

 

 

오죽헌 고택 전경

 

 

문성사 오죽헌 출입문

 

 

文成祠

 

 

문성사 현판 (박정희 글씨) 

 

 

율곡 이이의 영정

조선 유학계의 2대 거두 영남학파 퇴계 이황(李滉)과 기호학파(畿湖學派) 율곡 이이(李珥)가 쌍벽을 이루며 조선의 성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그의 선견지명은 후기 실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1584년(선조 17)에 49세의 나이로 죽어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자운산 기슭 선영에 안장되었다. 

 

 

烏竹軒(夢龍室) 전경

오죽헌 몽룡실에서 율곡이 태어났다.

 

 

600년 수령의 배롱나무 낙엽 활엽 소교목 식물이다. 한여름부터 꽃이 피기시작하여 100일 동안 피었다가 가을이 시작하면 진다고 하여 가을을 알리는 나무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껍질이 없고 매끈하여 원숭이도 미끄러진다고 하여 원숭이미끄럼나무, 매끄러운 줄기를 굵으면 간지름타듯 나무가 흔들린다고 간지럼나무 등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烏竹 울타리

 

 

烏竹

오죽은 줄기가 까만 대나무를 일컫는다. 껍질이 까마귀처럼 검다고 붙여진 오죽은 지름이 5~8㎝, 높이 10m까지 자라며 우리나라 동해안에 비가 많고 따뜻한 난류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강릉(오죽헌)에 많이 자란다고 한다. 대나무는 외떡잎식물로 나이테가 없고 부피가 생장하지 않으며 줄기는 원통형으로 가운데가 비어있다. 생장은 수십일만에 다자라며 더 이상 굵어지지 않고 굳어지기만 한다. 3~4년 주기로 벌채를 해야 한다. 

  

 

사랑채 출입 솟을문 

 

 

사랑채 전경

 

 

사랑채

 

 

안채

 

 

600년 수료의 주목

주목은 우리나라 높은 산지에서 자라는 상록 침엽 교목 식물로 20m까지 자라며 나무 껍질도 붉고 속살도 붉다하여 朱木이란 이름이 붙었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누어 천 년, 산다는 대료 장수목이다. 

 

 

강릉 오죽헌 율곡매(천연기념물 제484호)

600년 수령의 율곡매는 홍매 종류이며, 열매는 다른 나무에 비하여 훨씬 굵은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오죽헌이 들어설 당시인 1400년경에 심었으며 신사임당과 율곡이 직접 가꾸었다고 한다.

 

 

사랑채에서 어제각 통하는 솟을문

 

 

御製閣

정조 임금이 율곡의 유학입문서 '격몽요결'에는 머리글을, 어린 시절 사용하던 벼루 뒷면에는 율곡의 학문을 찬양하는 격문을 새긴 것을 보관하라는 어명을 받들기 위해 지은 전각이다.

  

 

사랑채 출입문

 

 

立志門

 

申師任堂 동상

사임당(1504~1551) 申氏는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문인, 화가, 시인이며 이이의 어머니다. 신사임당은 1504년 강원도 강릉 죽헌리 북평촌 오죽헌에서 신명화라는 선비의 둘째 딸로 태어나 1551년 48세의 나이로 죽었다. 1522년 (중종 17) 한양에 거주하는 이원수와 결혼하여 당시 결혼 후 사위가 처가에 머무는 전통에 따라 강릉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하며 친정 강릉과 시집 서울을 오가며 살았다. 슬하에 5남 3녀를 두었는데 셋째 아들이 율곡 李珥이다. 예술가의 자질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고 아버지의 배려로 이원수와 결혼하고 시댁과 떨어져 살 수 있게한 남편의 도량도 그녀의 예술에 한몫했다고 한다.

 

 

강릉 비석군

 

 

오죽헌 전경

1시간 남짓 둘러봤다. 경기도 파주 법원읍 동문리에 있는 이이 유적지와 겹쳐 특별히 시간 끌 만한 자료들은 없었으나 오죽헌의 발상이 이번 기회에 다 밝혀졌다. 강릉시에서 오죽헌을 중심으로 심혈을 기울여 성역화 작업과 종합문화유적단지로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을 보고 보람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2023년 04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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