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소문따라/제주올레

제주 추사 유배지

안태수 2021. 3. 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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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대정은 추사 세한도의 고향, 추사체의 완성

 

 

추사관 주차장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은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로 유명하다. 그동안 수없이 제주도를 들락거리면서 제주올레, 오름, 한라산에만 정신 팔려 옆을 지나가면서도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마음속으로 추사 유배길 대정 적거지, 안덕계곡, 산방산, 단산은 늘 그리워하며 지냈다. 

 

 

도로 마크

조선 태종 16년(1416) 제주도 행정구역 정비할 때 세 고을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3개 구역으로 나누었다. 당시만 해도 대정읍은 제주 서남부지역의 중심지였는데 서귀포가 항구로 크게 번성하면서 일개의 읍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명실공히 추사관과 추사 적거지가 대정읍의 옛 영화를 일깨워 주고 있다. 

 

 

매표소(안내소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166-1)

 

 

제주 추사관

지하 1층 지상 1층 대지 1,618㎡(490坪) 건축면적 1,193.90㎡(360坪) 목조건물이다.  2015년 5월 완공추사 유물전시관으로 운용하고 있다. 국적불명 창고 같은 건물이 적거지를 가로막아 여기가 뭐 하는 곳인가 했는데 우리나라 건축 대가가 설계했다니 어리둥절하다. 먼저 추사관의 위치가 문제다. 적거지가 우선이니 뒤로 배치하여 적거지로 향한 첫시선을 막지 말아야 했었다. 코로나 19로 문을 닫았다. 세한도 복사본을 위시하여 추사의 편지, 지인의 편지, 현판글씨, 각종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제주 길거리 꽃 유리호프스

 

 

적거지 전경

추사 김정희는 귀공자로 태어났다. 고조할아버지는 영의정, 증조할아버지는 영조대왕의 사위, 아버지는 이조판서 명문 집안 출신이다. 일찍이 부친이 동지부사 자격으로 연경에 갈 때  자제군관 자격으로 따라가 청나라 석학 완원(阮員)의 제자가 되고 옹방강(翁方綱)의 금석학(金石學)을 연구하고 돌아왔다.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정조 10년 충청도 예산에서 출생 조선 후기 문신, 실학자, 금석학자, 서화가로 활동하면서 순조 19년(1819)에 문과에 급제 후 규장각 대교, 성균관 대사성, 병조참판, 형조참판을 거쳐 동지부사 재임 중 헌종 즉위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때 과거 윤상도의 옥사 사건에 연루된 사건으로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간 제주도로 유배생활을 했다. 헌종 말년에 해제되었다가 1851년 다시 친구 영의정 권돈인의 일에 휘말려 함경도 북청 2년간 유배생활 끝에 귀향하여 과천에 기거하다가 철종 7년(1856) 10월 10일 생을 마쳤다.

 

   

위리안치(귤종옥, 탱자나무)

유배 초기 적거지로 삼은 포교 송예순의 집에서 다시 지금의 강도순의 집으로 옮겼다. 강도순의 집은 1948년 제주 4, 3사태 소실 된 것을 1984년 송예순의 집을 고증하여 복원했다고 한다.

 

   

대문간

 

 

 

초가 5채

 

 

안채(안거리)

 

 

사랑채(밖거리)

 

 

友鶴山人書室

원교 이광사(1705~1777)와 글씨로 얽힌 재미나는 일화를 소개한다. 추사가 제주도 귀양길에 해남 대흥사 일지암에 들러 동갑내기 초의선사를 만나 원교의 대흥사의 '대웅보전' 현판을 떼어내게 하고 자신의 글씨를 달게 했다. 그리고 9년간 유배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려 초의선사에게 원교의 대웅보전 현판을 아직 보관하고 있으면 자기 것을 떼어내고 다시 달아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유배생활 후 추사의 기개가 성숙해졌다는 얘기다.

 

       

별채(모거리)

 

 

눌(노적데미, 낫가리) 미당 힌 쪽에 곡식을 원통 모양으로 쌓아 둔 곳

 

 

돗통시(칙간, 뒷간, 돼지 우리를 겸한 변소)

 

 

말방애

 

 

추사관 연결로

 

 

대정읍성 

조선 태종 16년(1416) 제주 행정구역 정비 시 대정현 설치, 이후 현감 유신이 둘레 1,614m, 높이 5,1m 성곽을 축조하고 관아, 창고, 봉수대 동, 서, 남 세 곳에 門 설치했으나 현재 잔편만 남아 있다. 추사관, 적거지, 읍성 복원하느라 애 많이 썼지만 이 시대의 천편일률적인 복원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쉬웠다. 추사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과연 살던집을 알아볼까?    

 

 

 

 

 

2020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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