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소문따라/세계유산 조선왕궁

조선왕궁 창경궁

안태수 2019. 5. 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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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았던 벚꽃들 지금 어디서 피고 지나?


해마다 봄철 벚꽃이 필 때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창경원 벚꽃 놀이다. 다녀온 지도 어언 50년도 더 지났다.

그때 그 창경원 벚꽃 구경을 끝으로 나의 벚꽃놀이는 관심에서 사라졌다. 어쩌면 꽃 타령할 여유가 없었는지

니면 벚꽃에 묻혀 산 세월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의도에서 한 20년 일을 했다. 여의도를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개

발하면서 사방을 삥 둘러 제방을 쌓고 가로수로 벚나무를 심었다. 해마다 나무가 크고 잎이 무성해지며 봄에는

오리를 맺고 만개하여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장면까지 시시각각으로 지켜봤다. 벚꽃이 절정

러면 여의도 윤중제 벚꽃놀이 행사가 열린다. 창경원에서 옮겨 심은 벚꽃들이 지난날의 성장통을 이겨내고

품으로 자라나는 것을 보며 마땅히 해 줄 말이 없었다. 군 복무 시절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생각난다. "×퉁소

불어도 세월은 간다"였다.                


홍화문(弘化門 보물 제384호)

창경궁(昌慶宮)의 정문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창경궁)

입궐하다.


명정문 일원

창경궁은 한양도성에 경복궁, 창덕궁에 이은 세 번째 지은 궁궐이다. 조선 9대 임금 성종 14년(1483년) 태종의

수강궁 터에 창궐했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임진왜란 때 전소가 되고 병자호란 때도 화를 입었다. 영조

장희빈의 광난과 사도세자의 비극도 일어났다. 순종 1909년에 들어와 개화의 물결을 타고 창경궁을 원으

추어 동, 식물원을 개장했고 1983년 궁궐 복원사업으로 동식물은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고 3,000여 그루

벚꽃은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 윤중로에 옮겨 심었다고 한다.          



벚나무가 있던 자리에 앵두, 자두, 살구, 복사나무로 갈아 심었다. 넓은 뜰에 옥천을 따라 심어 놓은 것들이 아직

왜소하여 꽃도 적고 그늘도 없어 볼품이 없다.        


옥천(玉川)

인공수로이다. 풍수지리상 길지에는 임수가 따라야 하는데 자연조건이 그러지 못할 때는 일부러 물길을 낸다.  

이왕 만들어진 수로 돈 딴 데 쓰지 말고 물이 흐르도록 좀 하지! 


명정문 전경


옥천교(玉川橋 보물 제386호)

조선왕궁 궁궐 다리 중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다리.


옥천교


명정문 및 행각(明政門 및 行閣 보물 제385호)


명정전 일원


명정전 품계석(品階石)


명정전(明政殿 국보 제226호)

조선왕궁의 궁궐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


명정전 내부


임금이 명정전에서 신년하례, 국가적 행사, 외국사신 접견. 등을 행한 장소.


숭문당(崇文堂)

후전 임금이 신하들과 정사와 학문을 토론하며 주연을 배풀던 장소. 현판은 영조의 친필.


문정전(文政殿)

편전 왕이 일상적인 업무를 하던 장소.

외전 중에 유일한 남향 건물이다. 창경궁 외전은 정문부터 동향을 하고 있다. 무리하게 남향을 고집하지 않은 것

지형을 감안하여 건물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빈양문(賓陽門)

외전 관람을 마치고 내, 외전 출입 통로를 따라 후전으로 나왔다.


외전 후면


함인정을 중심으로 넓은 공간이 펼쳐 있는데 전면에는 정원이 후면에는 내전이 배치되어 있다. 마당에는 마사

가 넓게 깔려 눈부셨고 일정한 탐방로가 없어 산만했다. 지그재그로 요령껏 관람해야 한다.  


함인정 일원

창덕궁과 경계 담벼락에 동물원 사육장이 있던 걸로 기억된다.


함인정(㴠仁亭)

임금의 야외 활동으로 사용한 정자와 공간 


함인정 후면


5층석탑


200년 수령 향나무


죽기도 살기도 힘든 주목


환경전(歡慶殿)

내전 소속 건물로 주로 빈전(殯殿)이나 혼전(魂殿)의 용도로 사용


경춘전(景春殿)

주로 대비전으로 쓰인 건물이며 역사적으로는 인수대비, 혜경궁 홍씨가 사용하였으며 정조와 헌종이 이곳에서

어났다.


영춘헌(迎春軒)과 집복헌(集福軒)

원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정조 이후 임금님의 서재 사용하였다. 집복헌은 영춘헌의 부속 건물로 후궁들의 거처. 


양화당(養和堂)

왕비의 생활 공간으로 현판은 순조의 글씨다.


통명전(通明殿(보물 제818호)

내전의 중심 전각으로 왕과 왕비의 침전과 연회용으로도 사용하였다. 역사적으로는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모함

하다가 사약을 받은 곳이다.


통명전에는 사각 연못과 돌난간, 돌다리, 화강암을 두른 샘이 있다.

 

함양문은 창경궁과 창덕궁을 연결하는 통로이다. 내전 뒤 언덕바지에 올라서면 창경궁은 발아래 놓이고 후원에

이어 와룡산, 북악산, 북한산과 연결된다. 궁궐은 북한산 자락에 지은 것이다.


종지나물


후원 산책로


고궁과 도시와의 조화


창경궁의 봄


풍기대(風旗臺 보물 제846호)

바람의 방향(24방)과 풍속(8단계)을 측정하는 측정기


성종대왕(9대) 태실비

 

한복을 차려 입은 외국인


400년 수령 느티나무


팔각7층석탑(보물 제1119호)

15세기 중국 명나라 때 만든 티베트 라마식 불탑으로 李王家博物館을 만들때 만주에서 가지고 온 상인으로부터 매입.  


'요산의 하루'


춘당지


대온실(식물원)


관덕정


진달래


졸참나무


백송


광덕문(光德門)

명정문 행랑에 달린 문



회화나무


야외촬영


관천대(觀天帶 보물 제851호)

천문 관측소는 숙종 14년(1688)에 만들었


황철나무


느티나무(130년)와 회화나무(150년)가 뿌리와 줄기가 뒤엉켜 자라고 있다. 



퇴궐

꽃구경하러 갔다가 역사 공부 한 바탕하고 나왔다. 처음에는 외전을 중심으로 둘러보고 그다음 외전을 빠져나와

정원과 내전의 일원을 돌아보는데 이곳저곳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일관성 없이 돌아다닌 꼴이 되어 다시 한 바

더 돌았다. 2.89km에 1시간 15분이 걸렸다. 헷갈리지 않으려고 가능한 시계 방향으로 돈다. 창경궁은 조선

1483년 (성종 14)에 창건하여 우여곡절을 겪은 후 1909년(순종 3)에 동, 식물원과 박물관을 동시에 조성

하면서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가 다시 1983년 복원공사를 마치고 창경궁으로 환원했다. 도심

속에서 한나절 숲길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우리의 축복이다.            






                                                       2019년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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