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토박이 오름 선생님의 올레 가이드
제주도에 아는 분이 생겼다. 작년 가을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생츄어리 코스 트랭킹할 때 같은 방을 써 알
게 된 사이로 두 분 교직을 은퇴한 오름 전문가로 한 분은 오름에 대한 책을, 또 한 분은 오름사이트를 최초로
개설한 제주의 귀한 분들이다. 그런 인연으로 나의 제주 방문은 언제든지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고 했다.
제주에는 내 여행의 꿈이 있다. 사계절 한라산 등반, 368개 오름 답사, 제주올레 걷기이다. 기회가 되고 형편이
허락하면 거처를 마련하여 도전해 볼 작정이다.
(07:10) 조천 '아침해변 펜션'
제주도 분께 번거롭게 하기 싫어서 제주도 방문 소식을 알리는 것을 많이 망설였다. 일전에 통화할 일이 생겨서
4월 중순에 제주도 올레길과 영실 등산활 계획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게 맘에 걸려서 제주도 체류 일정을 간략
히 카톡으로 전송했다. 내 일정을 참고하여 상면할 기회를 가져보자는 뜻이다.
강 선생님이 금방 전화를 해 왔다. 한 선생님과 같이 내일 제주올레 6코스를 같이 걷는 거로 일정을 정했으니 아
침 조천의 숙소로 픽업하겠다고 한다. 참고로 그분들도 작년부터 올레길을 틈틈이 걷고 있는데 다음이 6코스라
했다.
조천 만세동산 (제주 항일운동 기념공원)
대형 광장, 기념관, 기념탑, 조형물 3.1 독립운동의 발상지처럼 꾸며 놓았다.
'2007년 제주 특별차지도 건축문화 대상 수상 집'
제주시 화북동 강 선생님 댁이다. 제주도 머물 동안 숙박처로 제공하겠다는 친절에 정중히 사양했다. 오늘은 제
주도 두 분 선생님만 따라 다니면 된다. 조천 만세동산에서 강 선생님을 만나 화북동 강 선생님 집 구경하고 다시
이웃에 한 선생님을 모시고 가까운 식당으로 아침 식사하러 간다.
'은희네 해장국' (제주시 일도 이동 ☎ 064-726-5622)
동네 한가운데 감히 여행자가 찾아올 수 없는 곳. 아침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영업하는 집이다. 메뉴는 딱 한 가
지 '소고기 해장국'이다. 하루 판매량을 다 팔면 영업 끝이다. 그 이후부터는 다음날 판매할 것을 준비한다. 유명
한 집이라도 해장국을 재탕 삼탕하는 바람에 갈 때마다 맛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이 집은 우선 신선도에서 신뢰를
주고 단일메뉴를 제공함으로 장인 정신을 엿본다. 그 많은 제주도의 맛집 중에서 진짜 맛집이다.
소고기 해장국
국이 부산물로 가득 차 국물이 부족해 뻑뻑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건더기 건져 먹는 맛이 그만이다. 시래기,
콩나물, 당면, 소고기 파도 파도 끝없이 나온다. 다 건저먹고 나면 국물은 놀랍도록 시원하다. 본래 아침을 안 먹
는 사람인데 과식했다.
제주 유채꽃 도로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제주도를 누구 못지않게 많이 와 본 사람이지만, 올 때마다 변화는 환경에 언제나 초행처럼 당황한다. 도깨비도
로를 지나 한적한 지방도를 달리다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도로의 풍경에 깜짝 놀랐다. 벚꽃, 유채꽃이 2차선 도
로에 가지런히 늘어서 마치 정지된 화면 속을 달리는 듯했다. 가시리 제주 유채꽃 도로라고 한다. 1112번(비자
림로) 지방도와 1119번(서성로) 지방도와 접속한다. 한라산 쪽으로 유채밭이 펼쳐지고 유채꽃의 단조로움을 일
깨워주는 풍력발전기가 하늘을 돈다. 유채꽃 하면 성산 일출봉이 생각나지만, 가시리가 단연 압권이다.
유채꽃과 풍력발전기
쇠소깍다리(서귀포시 하요동 990-1)
(10:10) 쇠소깍 제주올레 6코스 스탬프 찍는 곳.
6코스 출발 전 기념촬영
효돈천
건식 하천이다. 비 오면 흐르고 이내 말라버린다. 물이 흐르지 않는 강은 흉물스럽다. 기이한 잡석들이 강바닥
에 딩굴고 물이 훝고 지나간 호안은 삐죽한 바위 투성이다.
쇠소깍 (서귀포시 하요동 990-1)
쇠는 소牛, 소는 늪沼, 깍은 제주도 방언으로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끝 하구. 소가 목욕하는 장소. 소가 누운 모
습, 용암천, 용천수 등 다양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곳, 쇠소깍에 담긴 물은 민물일까? 바
닷물일까? 아니면 지하에서 솟아오른 용출수일까? 조수에 따라 민물이 되었다가 바닷물이 되기도 하겠지.
쇠소깍 하류
쇠소깍 바다와 접하는 지점
쇠소깍 검은모래 해변
쇠소깍 주차장
제주도 올레 해안을 걸으면서 자주 접하는 풍경 쇠소깍은 그중에서도 특별난 곳이다. 올레는 제주의 속살을 비
집고 길을 냈다. 올레 본 의미를 넘어서 산길, 해안길, 들길, 골몰길, 오름, 명소, 역사유적지를 연결하여 길을
냈다. 그냥 사람이 일상으로 다니는 길을 이런 것들과 연결하고 보니 살아 숨 쉬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한적한 해안 조그마한 포구가 사람들로 북적인다.
서귀포시 화요항
섶섬과 제지기오름
쇠소깍에서 줄 곳 해안을 따라오다가 오름을 만났다. 제주도에서 신라 왕릉처럼 생긴 큰 봉분을 보면 오름이라
해도 틀림없다. 오름 정상에 분화구가 있어야(원형 오름)만 오름인 것은 아니고 분화구가 미어진(원추형 오름)
것도 오름이라 한다. 보기에 따라 작은 산봉우리처럼 생겼다.
제지기오름 입구
제지기오름 안내
오름은 한라산이 화산으로 폭발할 때 생긴 작은 분화구(기생 화산체)를 말하며 중산간 지대에 집중으로 분포되
어 있으며 마치 작은 산봉우리처럼 보인다. 그리고 분화구를 가진 소화산체를 오름이라 한다. 그동안 확인된 오
름은 368개소라 한다.
제지기오름(원추형 오름) 정상
동네 가까이 있는 오름은 사람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알다 모르게 분화구가 자연스럽게 미어졌을 것이다.
분화구 위치에 각종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동네 놀이터가 되었다.
제지기 오름 전망대에서
보목포구 이어 서귀포항 조망
제지기오름 화장실
제지기 오름을 내려와 보목 마을 길을 걷는다.
식당 '보목 해녀의 집' (서귀포시 보목동 보목포구 ☎ 064-732-3959)
(11;40~12:10) 점심 (자리물회)
식당에 온 손님 중에 관광객 차림은 한 분도 없다. 마을 사람이 대부분이다. 자리물회 먹어 본 것 같기도 기억이
아리송하다. 여름철 별미라고 하는데 포구에는 계절이 없는 모양이다. 자리돔, 오이채, 양념, 얼음에 약한 식초
냄새가 비린내를 가시게 한다. 말아먹어도 좋다. 권하는 데로 다 받아먹었다. 옛날에는 제주도 하면 갈치구이를
연상했는데 이제 자리물회로 바꿔야겠다.
제지기오름과 보목마을을 뒤로 하고
이따금 나타나는 해안 벼랑 숲으로 난 길
제주도에서 흔히 보는 귀신 머리 같은 관목 숲
섶섬이 크게 보인다. 서귀포시 보문동 앞 바다에 있는 섬으로 무인도이며 낚시꾼들이 즐겨 드나든다고 한다.
옆에서 문선명이 땅이라고 귀뜸해 준다. 산 모습이 오행의 木체로 필봉으로 친다. 나무 모양이 붓을 닮았다하여
학자나 문장가가 많이 배출한다고 한다.
서귀포가 점점 가까워지고 섶섬 지나 문섬, 범섬이 차례로 다가온다.
소천지(小天地)
보목동 해안에 있는 소천지는 백두산 천지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암이 흐르다가 급속히 식어 구멍
이 숭숭 나고 바닷물이 들락날락 하며 돌을 갈가 날카롭게 날이 선 바위 군상들이 늘어서 있다. 암석의 변화 과
정을 실감 나게 본다. 어느 것 하나 영겁의 풍상을 겪은 것들이다.
소천지
소천지
'간세' (제주 조랑말 이름)의 머리가 진행 방향.
소천지를 돌아나오면 한낮 돌무더기
검은 여 (서귀포시 토평동 칼호텔 앞)
검은 黑, 여는 돌 이름 礖, 밀물 때 물속에 잠겼다가 썰물 때 드러나는 바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제주도 해안 암
반지대는 전부 '검은 여'라 해도 괜찮겠다. 토평동 해안 암반 지대는 돌바닥이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모양이
특이하다.
올레는 칼 호텔 옆길로 빠져나온다. 호텔은 외관 리모델링 공사중이라 어수선하다
칼 호텔 잔디밭
검은 여 버스 정류장
시내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 도심과 연결되는 간선도로까지 나왔다. 이 길로 주욱 가면 서귀포 시내에 닿는다.
소정방폭포 좌측 해안
소정방폭포 한선생
樂山
소정방폭포 우측 해안
제주올레 6코스 안내소 (서귀포시 동흥동 234-8)는 소정방폭포 언덕배기에 자리 잡고 있다. 반가움에 한참에
달려가 보니 문은 잠겨 있고 주변 청소는 엉망이고 내부는 먼지가 쌓여 관리를 그만둔 듯 했다.
(13:50) 정방유원지 통과
정방폭포 (서귀포시 동흥동)
세계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유일한 폭포라고 하는데 수량이 적어 볼품이 없다. 옛날 우렁차게 쏟아지던 폭포를
기억하며 먼발치에서 감상.
서복전시관
徐福이 진시황제의 명을 받들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배를 타고 삼신산 한라산(영주산)이 있는 제주도까지 찾
아 왔다가 불로초는 구하지 못하고 서귀포를 통해 돌아가다가 풍랑을 만나 일본 규슈에 정착했다고 한다. 서귀
가 '서복이 돌아가다'라는 뜻을 의미한다고 하니 재미있다. 전시관은 중국 관광객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세워
진 것같다.
정방폭포 입구 교차로 본격적으로 시내 중심가로 접어든다.
작가의 산책 길
이중섭 미술관 입구
이중섭로
이중섭 거처
방
이중섭 거주지
이중섭 거리 서귀포 예술 시장
이중섭이가 서귀포를 먹여 살린다고 한다. 이중섭의 생가도 아닌 잠시 거주자가 집주인을 내 몰고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는 꼴이다. 市에서 거처 주변을 관광지화함으로 화랑, 화방, 미술용품점 등이 생겨나 예술 거리의 풍
취가 물씬 풍긴다. 서귀포 명품 거리.
서귀포 매일올래시장
서귀포 제주올래 여행자센터 (서귀포시 서귀동 316-1)
(14:30) 7코스 스탬프 찍는 곳
올레 6코스는 비교적 짧은 코스에 속한다. 난이도 하에 속하며 휠체어 코스도 끼어 있다. 11.63km, 4시간 25분
걸렸다. 제주도에 관광 와서 올레길이나 한번 걷고자 하는 사람에겐 적당한 코스다. 쇠소깍의 시퍼런 물길, 검은
모래사장, 작고 아담한 보목포구, 시큼한 자리물회의 맛, 소천지, 제지기 오름, 정방폭포, 이중섭이 거주지, 짧은
거리에 이렇게 내용을 달리하는 암팡진 볼거리가 늘어서 있는 것은 아마 이곳 뿐일 것이다.
(17:00~18:30) 저녁은 식당 '가마솥 愛'에서
돼지고기 돔배기
몸국
제주분들과 가시리 유채꼴 길, 올레 6코스, 서귀포 칠십리 새섬, 10시간 넘게 같이 다녔다. 제주 토박이 오름 전
문가의 안내를 받으며 너무 편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여행객이 감히 맛볼 수 없는 토속 음식 기행, 여행지마다
난무하는 제주 방언으로 된 안내문 해설, 올레길에 만나는 오름, 명소 설명, 해안 절벽에 생성된 암석의 족보, 제
주 산야에 자라는 식생과 야생화 등 다 주워 담지는 못했지만, 걷는 즐거움을 더했고 유익하고 즐거운 하루였다.
속된말로 잘 얻어먹고 대접 잘 받고 잘 놀았다. 강 선생님이 조천 숙소까지 바래다주었다.
2017년 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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