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일본 규슈, 야마구치

일본 혼슈 야마구치현 하기시 성하마을, 쇼인신사 ⑦

안태수 2016. 9. 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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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 격변 지역 하기를 가다.  

 

 

일본의 메이지유신 때문에 박살 난 곳은 대한제국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막부 무사 정권 700년간의 종지부를 찍고 욱일승천 선진 세계로 진입한다. 일본의 개혁 개방을 주도한 세력들은 경쟁적으로 서구로 진출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문물을 들여와 자본과 부를 축적한다. 그리고 막부의 공백 상태에 국가 운영 주권을 잡기 위한 지방 개혁 세력들 간에 치열한 경쟁, 동맹결성, 막부의 저항 등 격변기의 생사를 건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난다. 제일 먼저 그 세력을 발휘한 곳이 메이지 유신의 태동지라고 공히 인정하는 주고쿠(中國) 지방의 하기이고 중심 인물이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다. 하기(萩)시는 야마구치 현의 북쪽 한반도와 동해를 끼고 마주 보고 있다. 삼면은 산으로 둘러싸여 눈만 뜨면 바다 건너 한반도를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한론(征韓論)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16:15) 하기시 관문(道の往還) 안내판

하기시는 삼각주 형태의 섬의 도시다. 섬 양쪽으로 흐르는 강은 크기와 주변 산세를 봐서는 삼각주가 형성되기어려울 것 같고 해자를 두른 인공 섬처럼 보인다. 섬을 감싸고 흐르는 강이 세 줄기다. 중앙 아부가와(阿武川)하기 입구에 다달아서 오른쪽은 마쓰모토가와(松本川), 왼쪽은 하시모토가와(橋本川)로 나누어져 동해로 져 들어 간다. 江자를 붙이지 않고 川자를 붙인 것을 봐도 폭과 길이가 동네 하천 정도이다.

    

 

하기시 관문 통과 시가지 5km

 

 

하기시 자연과 역사 전시관 쇼인 기념관

하기시 관문 옆으로 쇼인 기념관이 있고 앞마당에는 쇼인이 애제자 2인과 함께 있는 동상이 있다. 다카스키 신사쿠(高杉晉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구사카 겐즈이(久坂玄瑞) 일본도 이런 조형물을 만들기 하는 나라다. 무엇이든 흔하면 천하게 보이는 것. 쇼인의 행적을 따라 이런 조형물이 넘쳐난다. 여기는 하기 구역(舊驛)이 있던 곳으로 역사를 옮긴 자리에 역사 문화공간을 조성하여서 하기를 드나드는 사람게 잠시 숨돌리게 한다. 

 

 

관문 입구 도로변에는 하기시의 역사적 인물 5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무사 시대 인물로 다들 칼을 차고 있다.

 

 

쇼인 기념관內에 꾸며 놓은 '쇼카손주쿠'. 요시다 쇼인의 학습 장면 재현. 이를 심각하게 바라보는 김さん. 

  

 

하기 관광협회 방문

박さん이 있어서 걱정할 일이 없다. 길 찾느라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그 사이 요령도 생겼다. 방문지의 청사나 관광안내소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일이다. 우리는 길을 헤매지 않아 좋고 안내소는 외국인을 안내했다는 기록을 남겨서 좋다. 비지니스 급 호텔과 시내 무료주차장까지 소개받았다. 다음 기회에 박さん과 다시 일본 여행을 한면 통역비 정도는 깎아주어야겠다. 

       

 

하기 역

 

 

하기 버스센터 앞

 

 

(17:15) 마루후쿠 파크인(숙소) 투숙하다. 1박 1식(아침)에 ¥5,000, 깔끔해서 좋다.

 

 

다다미방 하얀 이부자리

 

 

욕실

 

 

오코노미야키 전문점

매식(買食)이 항상 걱정이다. 혼자 같으면 문제 없지만, 다들 주장이 강해 의견 일치를 봐야 한다. 우리는 보통 당이 어디 있느냐 묻지 구체적으로 메뉴룰 대가면서 잘 묻지는 않는다. 일본사람 고개만 갸웃둥하고 오늘도 발품 파는 수 밖에 없다. 사전에 어딜 가면 무얼 먹는다 정도는 정하고 와야겠다. 시내를 큰 블럭으로 한바퀴 돌아봐도 눈에 띄는 식당은 없다. 하는 수 없이 찾아들어간 집이다. 

   

 

주인장

김さん이 매력적이라고 하자 놀란다. 나이를 73세로 밝히면서 이 나이에 매력적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정중히 사양한다. 일본 사람들 칭찬에 잘 쓰는 말 '오이씨' '가와이'는 입에 발린 말로 실제 의미와는 다르다. 곧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오코노미야키 만들기

 

 

소스(양념)가 입에 안 맞는다. 나이든 사람 한테는 부담은 주는 양념(기름지다)과 양. 만든 사람이 코앞에 있으인상도 못쓰고 남기는 게 예의 아니라며 다 먹어라 칸다. 배 터져 죽는 줄 알았다. 

  

 

한국의 전 형식

 

 

(08:00) 체크아웃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자 습기를 동반한 시원한 바람이 몰려온다. 하늘에는 구름이 바람 따라 움직인다. 간간이슬비까지 뿌려 시원해서 좋다. 일본 여행 중 줄곧 날씨가 맑았다. 천기를 거드리는 불충한 언행을 삼가한 덕분이라 생각한다. 마침 숙소가 사적지의 중심에 위치하여 금방 찾았다.

   

 

하기시 미술관 주차장(무료)

 

 

성하마을(城下町) 안내도

일본 국내 일개 번 청이었던 조그마한 하기(萩) 그것도 무사 마을 한곳에서 나라를 혁신하고 선진국이 되는 데 공을 세운 사람들이 줄줄이 태어난 것은 어찌 된 일인가? 천하의 명당인가, 하늘이 도운 건가, 일본 천신이 도건가, 한반도에서 불어오는 대륙의 정기가 그들에게 전해졌는가 19세기 이후 지금까지 일본의 권력은 아직들의 손아귀에 있다. 일본 역대 총리 62명 중 야마구치 현에서 8명 그중에 4명이 하기 출신이다. 아직도 명의 총리도 배출하지 못한 縣이 반이 넘는다고 한다.

 

 

박さん 일본 길 100選 상급 무사가 산책

 

 

丹政寺

다카스키 신사쿠(高杉晋作)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유년시절 면학소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의사에게 하얼빈 역에서 총 맞고 죽은 사람이다. 메이지 유신으로 혼란기의 국내 정세를 안정시킨 사람으로 총리대신(4회)과 조선 통감부 통감을 지내며 조선 찬탈의 주역이다. 메이지 유신 성공으로 국을 통일하고 그 결집된 힘을 외부 세계로 돌린다. 첫 대상국이 한국이다. 태평양 바닷길은 건널 수가 없고 만만한 동해를 건넌다. 대륙으로 진출하려며는 한반도를 거쳐야하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정한론은 항상 역대부터 금까지 그들의 숨은 야욕이다. 한반도는 그들의 국내 정세에 따라 항상 침략과 노략질의 대상이었다. 

   

 

담너머 우리 무궁화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1833,8,11~1877,5,26) 생가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구댁

본명 가쓰라 고고로(桂小五郞) 죠슈번 출신으로 요시다 쇼인의 쇼카손주쿠 문하생으로 입문하여 정치 지도자의 길로 나선다. 도사번의 사카모토 료마와 일본 최고의 검객 자리를 다투기도 했고 료마의 주선으로 앙숙인 사쓰와 샷쵸동맹을 맺으며 기도 다카요시, 오쿠보 도시미치, 사이고 다카모리( 메이지 유신 3傑)와 함께 메이지 유신의 중심에 선다. 막부 정권 종식, 왕정복고, 폐번치현, 애도 천도, 정한론 반대 등 굵직한 정사를 실현한다. 지병으로 사망했다.

 

 

 

관람료 (¥100)

 

 

그렇지만 부러운 것은 주변과 잘 어울리게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현장을 보는 것이다.

 

 

티끌 하나 없도록 열심히 청소하고 관리한다.

 

 

가쓰라 다로(桂太郞 1848,1,4~1913,10,10) 11,13,15대 총리대신 생가

야마구치 나가토 무사 집안 출신으로 독일로 유학하여 군사학 전공하고 돌아와서 군 편제를 확립하고 청일전쟁 참가 등 육군대신으로 군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오른 정치군인이다. 총리 재임시 한일합방 체결

 

 

다카스키 신사쿠(高衫晉作 1839,8,20~1867,4,14) 출생지

죠슈번의 번 청인 하기의 상급 사무라이 집안 출신 요시다 쇼인이 세운 쇼카손주쿠에 입숙하여 쇼인의 애제자가 된다. 존왕양이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존왕양이 운동은 막부 타도와 함께 메이지 유신의 시작이다. 양이로 불란서와의 일전에서 크게 패한 신사쿠는 서구 근대화 병기를 받아드려 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 유신을 성공으이끈 선봉장으로 죠슈의 군사 지도자가 된다. 신분과 관계없는 징병제 실시(사무라이 해체), 기병대(奇兵隊) 창설(일본 육군의 모태), 서양 신무기 도입, 샷쵸동맹으로 막부와의 전승을 큰 업적으로 꼽는다. 신사쿠는 28세의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죽는다.

 

 

萩城 城下町(하기성 성하마을) 세계유산 등록

 

 

 

 

무사가와 상인가 경계

 

 

菊屋家 住宅

 

 

다카스키 신사쿠 추모 공원

 

 

수국

 

 

다카스키 신사쿠(高衫晉作) 동상

 

 

쇼인신사(松陰神社)

하기시 마쓰모토 대교를 건너면 쇼인신사가 야트막한 산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입구에 넓은 주차장 도리이가 정문을 가리킨다. 신사 주변이 요시다 쇼인과 관련된 유적으로 꽉 찼다. 과연 성지답고 쇼인의 입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비는 우리 아픈 마음을 달래는지 슬슬 내리고 발걸음은 한없이 무겁다. 대한제국 五敵을 길러낸 사람 앞에 정면으로 선다. 오로지 민족사관만 있고 세계관은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신으로 성인으로 추앙하고 떠드는 일본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고는 역사의 업보를 짊어질 시대가 드시 올 것이다. 

   

 

명치유신태동지

사토 에이사쿠 39대 총리대신의 친필 '메이지유신태동지'라는 기념석 헌상

 

 

신사 참배도

 

 

松下村塾 (세계유산 등록)

1842년 요시다 가문에 의해 설립된 일반 사설 학당에서 요시다 쇼인에 의해 메이지 유신의 산실로 발전한다. 

 

 

 

쇼카손주쿠(松下村塾)

요시다 쇼인(1830,8,4~1859,10,27)은 야마구치 하기 죠슈번의 하급 무사의 아들로 출생하여 쇼카손주쿠를 개설하여 메이지유신을 완성하고 일본 근대화의 주역들을 기른 지도자로서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다. 당시 번주의 특별배려로 10년간 일본 전국을 답사하는 기회를 얻고 당대 지식인들과의 교류로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돌아온다. 그 후 번의 허락 없는 에도 여행과 미국 밀항 사건으로 막부 덴마쵸 감옥에서 번 청의 노야감옥으로 이감 다시 병을 이유로 하기 본가에 연금상태에 있으면서 제자들을 길러낸다. 이때 메이지유신의 기라성 같은 주역들이 배출된다. 쇼인은 막부 요인 암살 모의 주동자로 체포되어 참수당한다.  

  

 

吉田松陰幽囚ノ舊宅 (세계유산 등록) 쇼인의 연금 장소

 

 

쇼인의 生家

 

쇼인의 生家

 

 

쇼인의 實家

 

 

松下村塾

 

 

쇼인신사(松陰神社)

쇼인은 국수주의자이며 일본 우익사상의 창시자다. 나라가 어려워질 때 온 국민을 똘똘 뭉치게 하는 마술 같은 선동을 부린다. 현재 일본은 쇼인을 숭배하는 총리가 정권을 쥐고 있다. 한류는 험한론의 위세에 기가 꺾이고 일본의 한국 관광은 요커의 공세에 밀려 발붙일 곳이 없다. 지금 일본은 쇼인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우리는 본을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버르장머리 고친다며 허풍을 쳐서는 안 되고 삼성을 때려잡자는 좌파가 앞장서서는 더욱 안 된다. 일본을 이겨본 사람을 전면에 세워야 한다. 삼성전자, 여자골프 선수 등 쇼인이 아니라 그 할애비가 와도 안 된다. 찹찹한 기분에 말도 안되는 소리 지껄여 본다. 

      

 

 

 

 

 

 

 

2016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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