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쓰 현해탄이 한국과 일본을 건너는 그 바닷길인가?
여행 이튿날 잠 잘 자고 일어났다. 나이가 들어 초저녁잠이 많아서인지 저녁 먹고 방으로 들어가면 다들 두문불출
이다. 술은 각자 취향에 맞게 마시도록 약속했으니 술 안부는 서로 묻지 않는다. 부지런한 두 양반은 새벽에 일어
나 아침 산책을 한 모양이다. 여행은 하루종일 보고 걷고 하는 여정인데 아침부터 힘을 빼고 나면 진작 힘쓸 곳에
가서는 뒤처진다. 힘을 비축해 놓았다가 본론에서 화이팅 해야지. 평소에 안 먹던 아침도 여행길에 오르면 혹시나
때를 거를까 봐 챙겨 먹는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경양식도 괜찮았고 규슈 여행 마지막 날 1박도 예약했다.
(08:10) 도요타 렌터카 리스 (와타나베 도리)
배낭 여행한다고 떠나왔지만, 실제로는 배낭에다 여행용 가방까지 갖고 왔다. 거기다가 자동차까지 빌렸으니 배
낭여행은 무색해지고 자동차 여행으로 제목을 바꾸어야 할 형편이다. 운전할 것에 대비해 가까운 경찰서에서 국
제면허증도 발급 받았고 세 사람이 돌아가면서 하루씩 운전하기로 했다.
렌터카 직원 당부의 말은 문제(추돌)가 생기면 견인차를 부르지 말고 어떻게든 회사까지 끌고 오라고 한다.
(09:45) 후쿠오카 타워
후쿠오카시 시와라구 모모치 해변에 있는 후쿠오카 최고의 건물
1989년 건설된 이 건물은 송신탑(123m), 전망대(116m) 갖춘 8,000장의 반투명 유리 건물로 방송사의 전파
송신소로 주로 활용하고 있다. 후쿠오카에서 사가현으로 가는 후쿠오카 도시고속도로에서 운 좋게 촬영했다.
(09:40) 사가현 가라쓰 성(唐津城)
가라쓰 城은 사가 현 가라쓰 시 마쓰시마 산에 있다. 마쓰시마 산은 마쓰우라 강이 가라쓰 만으로 흘러들어 가는
강 하구에 산이라기보다 언덕배기 같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강과 바다를 끼고 있는 작은 언덕은 무엇을 올려 놓
아도 어울리고 그대로 두어도 아름다운 풍광이다. 일본 성은 천수각을 정점으로 성주의 위세를 대외적으로 나타
낸다. 가라쓰 성주는 미적인 안목이 탁월한 분 같다. 학이 춤추는 듯한 천수각의 처마는 마쓰우라 강을 건너는 무
학교 중간 쯤이 뷰 포인트 같다. 다행히 조수석에서 의미 있는 사진을 찍었다.
(09:55) 무학 공원 주차장
하이브리드 차를 몰아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렌터카에서 시동을 걸어 둔 차를 끌고 여기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왔다. 박상도 파킹은 한 번에 안 되고 몇 번 수정을 해야 정 위치에 놓인다. 또 마음에 안 드는지 위치를 바꾸려고
시동을 거는 순간 "아 시동이 안 걸린다." 즉 엔진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안 난다는 것이다. 김상과 나도 번갈아 시
동을 걸어봤지만, 계기판에 불만 들어오고 엔진 소리는 전혀 안 난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다. 마침 옆에 사람이
있어 도움을 청하니 카 센터에 연락하라고 하며 난감해 한다.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어찌
된 상황인지 모르겠다고 하니 이것저것 설명을 주고 받은 끝에 박상이 알았다는 시늉을 한다. 전기로 시동을 걸기
때문에 엔진 소리는 안 나고 계기판에 불이 들어오면 시동이 걸린 상태라고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이해 부
족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가라쓰 城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신 데라자와 히로타카가 이곳 영주로 부임해오면서 1602년 착공하여 1608년
7년에 걸쳐 성을 완성한다. 축성을 하면서 폐성이 된 히젠 나고야 성의 돌을 이용하고 주변 번주들의 도움을 받았
다고 한다.
무학 공원 가라쓰 성 입구
가라쓰 성을 포함한 일대가 무학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등나무
무학 공원 등나무
가라쓰 시 천년기념물, 수령 100년, 꽃송이 길이 1.5m, 꽃송이 5만, 보라색, 4월 하순에서 5월 상순에 꽃 핌.
가라쓰 성
석정石庭
우물
도리이
니노마루 다쓰이 망루
천수각 입구
천수각
혼마루 다이코 망루
천수각은 외형만 화려할 뿐 내부는 성을 소개하는 자료관과 성 전망대 등으로 사용하다 보니 단조롭다. 입장료
때문에 관람을 포기한다. 천수각은 오사카 성, 나고야 성, 기후 성을 다녀봐서 내부 구조가 비슷하다는 것을 안다.
가라쓰(唐津)
사가현 북서쪽 겐카이나다(현해탄) 해 가라쓰만 연안에 위치한 사가 현 제2 항구도시. 과거 일본의 중국과 한반도
와의 교류 거점 도시 역할을 했으며 조선의 서해와 해류로 인한 자연 뱃길이 열려 조몬 말기(BC500)에는 한반도
에서 벼농사가 건너오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전초기지로 사용하면서 임진왜란 때 조선 도공이 붙잡혀
바닷길이다. 도래인에 의한 도자기 마을도 생겨난다. 가라쓰는 한일간의 많은 역사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가라쓰만
東가라쓰만
가라쓰 만과 마쓰우라 강
천수각 니노마루에서도 가라쓰는 360도 파노라마 풍경으로 거슬림이 없이 조망된다. 해안이 어떻게 이리도 아름
다울 수가 있을까? 임진왜란 때 붙잡혀 오든 조선의 도공들도 가라쓰 항의 풍광에 나처럼 탄복하지는 않았을까
부질없는 생각도 든다. 만으로 면한 야트막한 산들은 해안선을 따라 바다를 넘나들며 고운 금빛 모래사장을 끝없
이 펼친다. 그 뒤로 제법 높은 산들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항구를 크게 감싸 안고 있다. 어디서부터 발원한
강인지 도심을 지나 바다에 이르러서는 그 폭이 바다처럼 넓어져 바다인지 강인지 구분조차 안 된다. 파란 하늘,
바다, 강, 숲의 푸르름에 눈이 시리다.
마쓰우라 강
(11:00)니지노 마쓰바라(虹の松原 무지개 송림) 주차장
城을 나와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자동차에는 한글 지원이 되는 내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다. 내비게이션은 검
색기능이 원활하지 못한 게 약점이다. 목적지를 명칭, 주소 등으로 정확하게 입력해야 한다. 불행하게 우리는 그
런 세세한 것까지 준비는 못 했다. 그래서 목적지 검색하는 것이 자동차 운전보다 더 힘들었다. 예를 들면 니지노
마쓰바라 같은 경우에도 5km가 넘는 솔밭을 어디서부터 구경을 해야 하는지 이럴 때는 차 안이 소란해진다.
무지개 송림은 가라쓰 성 주차장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우리나라에도 전북 부안군 변산면에 고사포 해수욕장에 비슷한 송림(300m)이 있다. 규모는 상대가 안 되지만
바닷가에 방풍림으로 심었다는 것은 같다. 이곳 무지개 송림은 1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규모는 길이 5km, 폭
1km, 소나무(곰솔) 100만 그루, 수령 400년 어마어마하다. 현재의 송림은 가라쓰 성의 번주로 부임해 온 당시
영주의 혜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솔밭은 400년인데 송림은 그렇지 못하다. 400년 묵은 소나무가 얼마나 있을까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니 이정도는
대야 수령 400년을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나무도 생명인데 자연재해도 입고 인간의 화도 입는다. 수령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죽고 살기를 거듭하면서 숲을 유지해 온 것이 위대한 일이다.
"우리 바닷물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자." 나는 산도 좋아하고 물도 좋아한다. 우시개로 '물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오
라 할 때까지 안 나온다'는 식이다. 두 양반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2대1이니 더 이상 보챌 수가 없구나!
가라쓰만을 배경으로 모처럼 셋이서
무지개 솔밭에서 가라쓰만 전망대가 있는 카가미야마(鏡山)까지는 차로 20분 거리
카가미야마 입구
이정표
카가미야마 정상에 올라왔다. 정상은 호수, 잔디광장, 철쭉동산, 전망대, 호텔, 절, 신사가 있는 아름다운 공원으
로 꾸며져 있다.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게으름을 피운다. 혼자 유난을 떠는 것 같아 조
심스럽다.
수국
호수(蛇池 뱀 연못)
전망대 휴게소(사요희매 찻집)
사요희매(일본의 3대 슬픈 전설)의 이야기
6세기 백제가 멸망하기 직전 왜에 원군을 요청한다. 원군으로 떠나는 한 청년과 이곳 처녀와 이별 이야기. 사랑하
는 사람을 전쟁터로 보내는 여인은 안타까움에 카가미산에 올라 입고 있던 옷을 벗어 흔든다. 슬픔을 참지 못 해
낭군의 바닷길을 쫓아가다 지쳐 망부석이 되고 만다. 산라 의상대사와 당나라 선묘낭자의 사랑 얘기와 닮았다.
카가미야마(鏡山 284m) 표지석
카가미야마 전망대
西가라쓰 가라쓰항, 가라쓰 성, 마쓰우라 강, 무지개 송림
가라쓰만, 겐카이나다, 대한해협, 쓰시마, 부산 順
東가라쓰 무지개 송림
카가미야마 신사
(12:45) 우동 웨스트 당진(가라쓰)점
그림 있는 메뉴판에 가격표시까지
가케우동*어묵튀김 ¥420
우동으로 몇 차례 끼니를 때웠는데 아직 질리지 않는다.
가라쓰에서 다음 목적지 히젠 나고야 성터까지 약 45분 거리 같은 시에 속해 있다.
(14:15) 히젠 나고야 성터 도착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와 히젠 나고야 성터 안내도
방문지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무대포로 달려 온 격이다. 현장의 안내도와 가지고 다니는 지도는 방향감각을 상
실한 경우에는 혼란만 더 가중시킬 뿐이다. 물어 보는 게 상책이다.
일본인 한국 유학생
부산대학교에서 고대 한일 관계사 박사 과정을 수료 중이며 방학을 이용해 히젠 나고야 성 유물 발굴 작업에 참여
하고 있다고 한다. 성터 올라가는 입구를 묻는 말에 한국말로 대답한다. 아래서부터 떠들며 올라오는 소리에 한국
사람이구나 하고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박상은 일본어가 고프고 일본 친구는 한국어가 고파 두 사람은 바뀐 언어
로 잘도 통한다.
성터 초입
입구에서부터 성곽은 중간중간 허물어진 상태로 잔해와 잡목으로 우거져 방치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정도라면
돌아가도 괜찮겠다는 마음을 누르고 성벽을 따라 본마루 쪽으로 올라간다. 니노마루를 들어서면서 분위는 반전이
된다. 城은 허물어진 그대로인데 잡초 하나 없이 말끔히 정비되어 있다. 인적이 끊어진 그 때 역사의 현장으로 끓
여 들어간다.
잔디
성곽 도로
고목
마장터
천수대 입구
천수대 마루
한 눈에 봐도 축구장 넓이다. 어디서부터 돌아봐야할 지 흥분 된 싱태에서 사방으로 왔다갔다 하기만 한다.
천수대 마루에서 보면 가카라시마 겐카이나다 대한해협 쓰시마 부산이 일직선 항로이다.
천수각 자리
천수대 마루
히젠 나고야 성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사이다. 명을 치기 위함이니 길을 빌려달라(征明假道)는
명분으로 조선을 침공하기 위한 전초 진지를 가라쓰 히젠국에 설치한다. 가라쓰 항은 지형적으로 조선과 가장
가깝고 해류가 흐르는 천혜의 바닷길로 수심도 깊고 굴곡진 해안도 갖추었다. 히데요시는 규슈를 중심으로 전국
다이묘가 참전하는 조선을 침략 위한 총 역량을 결집한다.
히젠 나고야 성은 그때 축성한 성으로 그 규모가 50만 평에 성곽 둘레가 5km 축성 시기는 임진왜란 전해 1591년
10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4월 6개월 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7년간의 전쟁은 양국에 많은 피해를 주며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 후 7년 막부 초기 히젠 나고야 성도 폐성의 조처가 내려진다. 혹자는 임진왜란을 히데
요시가 도자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일으킨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한다.
성하마을
전국 다이묘의 숙영지와 진영이 있던 곳
(15:15) 히젠 나고야 성 입구
박상과 1시간여 城 구경을 마치고 돌아왔다. 김상은 그늘에 쉬고 있다. "너거 쫓아다니려면 골병들겠다." 맞는 말
이다. 나 쫓아다니다가 죽을 뻔한 사람도 있다. 나는 책으로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다. 몸소 체험해야 직성이 풀린
다. 1시간이 아니라 하루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여행은 건강해야 한다. 건강은 걷는 것부터 시작이다. 걷는 것은
부지런 해야 한다. 부지런함은 타고난다. 그래서 사람은 다 다르게 살아간다.
다음 목적지는 이마리 도자기 마을이다.
2016년 7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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