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소문따라/대통령 기념관

노무현 대통령 생가 김해 봉하마을

안태수 2015. 5. 1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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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도 유명한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캠프에는 국내 진보적인 문화 예술인들의 참여가 대단하다. 글 쓰고, 그림 그리고, 노래하

고 춤추고, 영화 만들고, 곳곳에 그들의 재능 기부가 넘쳐난다. 사람들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노무현은 우리와 동년배다. 그를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지금 진보와 보수의 개념 차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경험하는 것 중에는 사람마다 가치관은 달라지는 것이다. 事案에

따라 진보도 되고 보수도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꼴통이라는 말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인 사고방

식의 부산물이다. 요즘 문화 예술은 홍수처럼 넘치는 인적 물적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극한투쟁의 시대

라 생각한다. 집에 아이와도 극단적인 반대 성향을 갖고 있으면서도 잘 지낸다. 나라도 그렇게 했으면 좋

겠다. 그 밑바탕에는 사랑이라는 본성이 깔려기 때문이다.  

 

노무현 하면 노란색이 떠오른다. 마케팅 전략의 기가 막힌 성공사례다.

노란 점퍼, 머플러, 플랭카드, 깃발, 심지어 바람개비까지 등장한다. 봉하마을은 온통 노란색 일색이다.

우리가 도착할 즈음은 햇빛도 황금빛으로 변하는 오후 시간 노란색의 봉하마을을 더욱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포항을 떠나 경주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양산을 나와 김해로 들어선다. 차가 언양 부근을 지날 때는

정겨운 영남알프스가 가지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을 거느리고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양산을 벗어날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 본산리로 들어서면서 오래된 공단지역을 통과하게 된다.

영상에서 보든 봉하마을 장면과 크게 상충된 곳으로 잠시 실망감에 빠지지만 이내 공단을 벗어나면 눈에

익은 노란 바람개비가 길가로 줄지어 바람에 돌고 있다. 배후엔 낙동강이 흐르고 야트막한 봉하산(140m)

이 마을 감싸 안고 제법 너른 들판이 앞마당 노릇을 한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

 

대통령 사전 전경

 

대통령 생가 전경

 

대통령 생가

 

생가 내부

 

대통령과 주민 혹은 방문객과의 대화 장소

 

야외 전시장

 

기념관(임시) 내부 전시물

김해시는 기념관 임시 건물을 철거하고 묘역 인근 대지 6,940㎡(2,100평)을 매입하여 지하 1층, 지

1층,  2,970㎡(900평) 규모의 기념관(추모의 집)을 168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2018년까지 준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세월이 지나면 한 줄의 서술로도 충분한 일생을 거대한 추모관 안에 어떤 전시물로 채울

 

대통령 묘역은 봉하산과 부엉이바위 아래 조성 입구를 제외한 삼면에 소나무를 심고 동쪽 머리부분에는

짙은 고동색을 칠한 담장설치 바닥에는 납작한 돌을 깔고 중앙 보도를 중심으로 하는 보도에는 화강석

판재(15,000개)에 각계각층의 추모 사연을 새겨 깔았다. 나라 안에서 처음 보는 형태의 묘지다. 죽은

자의 요구인지 산자의 상상인지 정녕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서 너무도 다르다. 국가원수를 지낸 분은 반

드시 국장 기준에 의거 장례를 치르게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일반인과 다름없이 엄격히 제한했으면 한다. 

 

묘역대

 

부엉이바위를 처음 대하는 순간 어릴 때 누가 제일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나 내기하던 생각이 났다. 간 큰 

놈이 대장 노릇 했으니깐 다리가 다치는 것 쯤은 안중에도 없었다. 저 바위에 서면 누구라도 한번 쯤은 뛰

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생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참배객이 있고

 

묘지에 봉분을 없애고

 

여러가지 돌로 눌러 놓았다.

새로운 묘지 문화의 효시인양 따라 할까 걱정된다.

 

묘역 뒤로 짙은 고동색 담장 처지고 납짝한 돌로 평탄 작업을 한 게 묘지를 쓴게 아니라 설치 미술품을

보는 듯하다.

 

삼각형의 묘역대여 영원 하여라

 

 

노무현 대통령

1946년 9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 본산리 봉하 출생

1966년 :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1972년 : 권양숙 여사와 결혼 1남 1녀를 둠

1975년 4월 : 제 17회 사법시험 합격

1978년 5월 : 판사 사직 (임용 5개월)

1988년 4월 26일 : 제13대 부산 동구 국회의원(통일민주당) 당선 정계 입문 

2003년 2월 25일 :  제16대 대통령 취임

2009년 5월 23일 : 사망  

 

 

 

 

 

 

                                                          2015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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