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때 행궁의 역할을 온전히 하다
조선 시대 1624년(인조 2)에 축성한 남한산성은 4 대문, 5개 옹성, 16개 암문, 성곽 둘레가 11.7km에 달한다. 산성 내에는 행궁을 비롯하여 수어장대, 연무관, 현절사, 사찰 등 역사 유적이 산재해 있다. 성곽은 험준한 능선을 따라 주봉인 청량산(497.9m)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연주봉(467.6m), 동쪽으로 벌봉(515m), 남쪽으로 남한산(522m)이 이어져 있다, 병지호란 때 인조가 이곳으로 피신하여 청나라군에 49일간 항전하였으나 강화가 함락되고 남한산성까지 포위당하자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나가 삼전도(서울 송파구) 수항단에서 청태종에게 항복의 예로 굴욕적인 삼배구고두례(三拜九敲頭禮)를 했다.
광주시 문화관광 해설사의 집
산성로타리에서 훤하게 보이는 누런 황토색 2칸자리 건물 휘이 둘러보면 금방 눈에 띈다. 달려가 남한산성 안내 자료를 요청했더니 행궁 매표소에서 제공한다고 한다.
바로 옆에 남한산성 행궁 이정표 (←0,2km)가 서 있다. 조선왕궁 답사 일환으로 그동안 미루어 왔던 남한산성 행궁 답사를 오늘은 작심하고 마칠 작정이다. 행궁은 임금이 도성을 벗어날 때 임시로 머무는 별궁을 말하며 1626년 (인조 4)에 건립되었다. 남한산성 행궁은 종묘와 사직단(미복원)을 둘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종각
남한산성 행궁(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731 일원)은 2007년 6월 8일 대한민국 사적 제480호로 지정되었다.
매표소
▶행궁권역
漢南樓
한남루는 남한산성 행궁의 정문이다. 1789년(정조 22)년에 광주유수 홍억이 2층 구조로 세우면서 행궁의 삼문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일제와 6.25 전쟁에 의해 훼손되어 오래동안 방치되어 오다가 2002년부터 상궐, 후궐, 단청 및 부대시설공사 순으로 3차례 걸쳐 10여 년 동안 복원공사를 실시한 끝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통일신라 건물터
외삼문과 남행각, 북행각, 연지
외행전(정전) 하궐의 중심 건물로 왕과 유수의 업무 공간으로 사용
내삼문
내행전(침전)은 왕의 생활 공간
일월오봉도(내행전)
▶관아권역
右솟을문 (일장각 출입문)
日長閣(광주유수의 개인 공간)
*유수(留守)는 조선 시대 수도 이외의 중요한 곳을 맡아 다스리는 정이품 외관직을 말한다.
擬淸門 (좌승당 출입문)
坐勝堂 (광주유수의 직무 공간)
在德堂(?)
하궐 남행각1, 2
*행각은 행전의 부속건물로 왕을 보좌하는 기관의 집무 공간이다.
경/반석(磬石) 경쇠 磬, 너럭바위 磐
느티나무
상궐 남행각
내행궁 후경
▶후원
후원 전경
明威門(후원 출입문)
以威亭(정자)
후원 정자에서 내려다본 행궁 전경
左殿(정전과 영녕전)은 종묘사직을 거행하는 공간이다.
남한루 후경
답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 공허했다. 마치 영화 촬영장 세트처럼 박제된 텅 빈 공간이었다. 신축 건물을 바라보며 애써 역사의 의미를 되짚어 보았지만 공염불로 마음은 허공만 가른다. 우전과 사직단은 아직 미복원이라고 한다. 앞으로 발굴조사가 더 진행된다고 하니 기록이 더 찾아내야 한다. 한 세대는 지나야 제구실을 할 것 같다.
2024년 0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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