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한양에 왕궁이 다섯 곳이라
서울에서 대구 초등학교 동기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47년 정해년생이니깐 70 후반을 막 넘기고 있다. 지금으로 봐서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로 일제로부터 해방, 6,25 남침 전쟁, 피해복구, 현대화 산업개발, 민주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이르기까지 70년 격동의 세월을 겪고 평생 많은 일을 한 사람들이다. 뒤로 하고 이제 하나둘씩 떠나고 있다. 떠날 차비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언제 떠날지 대기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모일 때마다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누군가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비원 얘기를 꺼냈다. 창덕궁과 후원을 구분하지 못하는 소리다. 후원 가 본 사람 손들어라고 하니 다들 멀뚱멀뚱 기억조차 희미하다. 그러면 올해 최고의 단풍시기에 창덕궁 후원 구경 가기로 약속을 했다.
◇돈화문 일원
敦化門은 창덕궁의 정문이다.
돈화문 안마당 모습이다. 중앙에 박석을 깔은 어도는 창덕궁에 거주한 순종황제의 어차가 지나다니기 위해 없애었다고 하고 왼편 행각, 맞은편 궐내각사, 북악산 매봉에서 흘러내리는 금천, 금천교 건너 진선문에 이르기까지 회화나무를 비롯한 갖가지 고목나무 群 계절마다 꽃과 녹음과 단풍이 충만한 궁궐의 나무 군락지다.
회화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궁궐의 대표 나무로 가지가 제멋대로 자란다고 하여 학자의 기개를 상징하여 학자수(學者樹)라고도 하며 양반 동네에 가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창덕궁 회화나무 群 (천연기념물 제472호)
돈화문 안 마당 양 옆으로 나란히 자라고 있는 회화나무는 총 8그루 나무 높이는 15~6m, 가슴 높이 줄기 직경 90~178㎝, 수령 300~400년 되는 노거수이다.
세계유산 조선왕궁 창덕궁(1997년 12월 06일)
회화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매화, 살구, 자두, 앵두나무
금천, 금천교(측면), 버드나무
錦川橋(금천교 보물 제1762호)
금천교는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 북악산 매봉에서 발원하여 궐 밖으로 빠져나가 청계천에 이르는 금천 위에 설치되어 있다. 상판 폭이 12m, 길이 12,9m 정사각형에 가까우며 태종 11년(1411) 창덕궁 창건 후 6년 뒤에 설치됐다. 현존하고 있는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인정문(외전) 일원
인정문과 숙장문, 정청, 어도
창덕궁 어도는 돈화문에서 금천교로 右로 90도 꺾이고 금천교에 와서는 진선문을 향해 삐뚜루미 놓이고 다시 인정문은 통하면서 인정전을 향해 좌로 직각으로 꺾인다. 경복궁의 3문이 일적선상에 놓인데 반해 창덕궁의 3문은 자연친화적이라며 삐뚤어진 금천교도 자연친화적 설계였다고 보면 되겠다.
聽政
이조 병조 銓官(파견)이 궁에서 정사를 보는 곳
仁政門(보물 제813호)은 창덕궁 인정전의 정문으로 순조 4년(1804)에 중건했다. 전면에 어도와 관람로가 무질서한 것 같아 인정전의 엄숙한 품위를 떨어트린다.
仁政殿 (국보 제225호)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이며 법전(法殿)이다. 법전은 왕의 즉위식을 비롯하여 결혼식, 세자책봉식 그리고 문무백관의 하례식 등 공식적인 국가 행사를 거행하는 중요한 건물이다. 태종 5년(1405)에 건립 광해군 때 중건, 순조 4년(1804) 화재로 인한 재건, 철종 때 보수공사를 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정 품계석은 조정의 위계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정조가 설치했다고 한다.
월대와 어계
인정전 내부는 구한말 1907년 순종이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 하며 용상, 병풍, 일월오악도, 유리창문, 커튼, 전구, 마루 등을 서구식으로 개조했다.
인정전 뒷담장
◇숙장문(내전) 일원
肅章門은 내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宣政門
宣政殿(便殿 보물 제814호) 창덕궁의 편전으로 임금이 신하와 함께 국사, 경전, 역사를 논하던 집무실이다. 선정전은 창덕궁에서 제일 오래된 전각으로 인조반정 때 소실된 것을 인조 25년(1647)에 중건하면서 광해군이 지은 폐궁으로 남아있던 인경궁 전각을 창덕궁 복원에 사용할 때 청기와도 딸려왔다고 한다. 선정전은 창덕궁의 여러 차례 화재에서도 살아남았다. 순조가 선정전을 정조의 혼전으로 사용하면서 이후부터 왕실에서 혼전(헌종, 철종)으로 사용하였다.
성정전 내부 용상 곡병 일월오봉도
희정당 일원
희정당 정문
熙政堂 (보물 제815호) 희정당은 내전에 속하여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부터 성전전을 혼전으로 사용하면서 임금의 편전으로 사용했다. 외부는 한옥 구조 내부는 양식으로 꾸며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시대에 임금님의 집무실과 외국 사신 접견 장소로 사용하였다.
宣平門 (대조전 정문)
大造殿 (보물 제816호) 창덕궁 내전에 있는 침전이다. 조선 태종 5년(1405)에 지었는데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불이 나 소실되어 재건, 중건을 거듭하였는데 1917년 또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한 것을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고 그 부재를 이곳에 옮겨 다시 지었다.
대조전 내부 현대식 가구
대조전 뒷마당 담장, 굴뚝, 화계, 석조물
후원 출입문
雜像群
성정각 일원
誠正閣은 동궁(東宮)에 속한 전각으로 정전인 중희당이 후원으로 통하는 길을 내면서 헐리고 남은 전각이다. 세자가 학문을 연마했던 곳이며 정자 남쪽에는 보춘정(報春亭)이라는 현판을 달았고
동쪽에는 喜雨樓라는 현판을 달았다.
관물헌
책과 문구가 있는 세자의 공부방
調和御藥 (임금이 드시는 약을 조제한다)
資始門 老梅
◇낙선재 일원
낙선재 전경
낙선재 입구 화계 소나무
낙선재 승화루
長樂門
樂善齋(보물제1764호)는 조선 24대 임금 헌종 13년(1847) 서재 겸 사랑채로 궁궐 안에 사대부집 주거형식으로 지어졌다. 그 후 영왕(영친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기거했다(1989년)
錫福軒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의 부인 경빈(후궁)의 처소로사용하다가 그 후 조선 27대 임금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가 기거했다(1966년)
壽康齋
조선 23대 임금인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가 기거했다.
창덕궁 현장수업 나온 학생들
낙선재 뒷마당 화계
낙선재 후경
무명정
자두나무
◇舊璿源殿
구선원전은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초상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로 궁궐 밖으로는 종묘를 두었고 궁 안에는 선원전을 두었다. 1921년 창덕궁 후원 서북쪽에 선원전을 새로 지어 왕의 초상을 옮긴 뒤부터 구선원전으로 불리게 되었다.
구선원전 일원
◇闕內各司
궐내각사 안내판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기 위해 궁궐안에 세운 관청들을 궐내각사라 한다.
궐내각사 출입문
玉堂(홍문관)
규장각은 궁궐에 설치한 도서관이자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규장각 내부
검서청
궐내각사를 관통하는 금천
冊庫
雲漢門 奉謨堂은 옛 선왕들의 유품을 보관하는 전각이다.
궐내각사 미로
내의원 藥房
느티나무
진설청
궐내각사 미로
憶昔樓(내의원)
正肅門
養志堂은 선원전에서 제사를 모실 때 제사 전날 임금이 머무시던 곳이며, 內察堂은 제관들이 의례를 준비하는 곳이고.
萬福門
재경대구동인초등학교 15회 졸업생
겉은 그럴싸해도 다 지병들을 하나씩 갖고 있다. 노인들끼리 뭉쳐 다니는 등산, 여행, 관람 등은 되도록이면 삼가라고 한다.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대처 능력이 떨어져 사고로 바뀌기 때문이다. 창덕궁 답사하는 시간을 전각 일원 2 시간과 후원 일원 2 시간을 예상하면 만 步 이상을 걷게 된다. 중복 관람을 피하기 위해 사전 답사가 필수적이다. 대로 답사를 하려면 임금님이 기거하시는 큰 전각부터 순서로 내려오면서 마지막으로 후원을 둘러보는 것이 좋지만 우리는 궐내각사부터 시작해 구선원전, 인정전,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성정각, 낙선재 순으로 돌아 나오며 마지막 후원 관람을 마치고 숙장문, 인정문을 끝으로 관람을 마쳤다. 무릎 관절로 고생하는 회장을 잃어버려서 한 동안 찾느라 법석을 뜬 것 외에는 무사하고 즐거운 창덕궁 관람이었다.
2023년 11월 03일
'길따라 소문따라 > 세계유산 조선왕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주 남한산성 행궁 답사 (0) | 2024.11.20 |
---|---|
세계유산 조선왕궁 창덕궁 후원 관람 (4) | 2023.12.21 |
조선왕궁 창경궁 답사 (3) | 2023.05.02 |
조선왕궁 칠궁 답사 (2) | 2022.12.28 |
조선왕궁 경희궁 (0) | 2019.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