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조선일보 선정 산/해남,완도,강진의 산

완도군 장좌리 장도 청해진 유적 답사

안태수 2022. 6. 17.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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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 장도의 사당과 당굿의 주인은 누구일까?

 

 

오늘 일정은 청산도 출발부터이다. 전날 깜짝 놀라게 했던 자동차 키도 예전처럼 순조롭게 잘 뽑혔다. 6시 50분 첫 배

를 타기 위해 일찌감치 도청항으로 나갔다. 배가 선적 준비를 마치고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배 안은 텅텅 비었다. 웬인

가 했더니 주말은 6시가 첫 배라고 한다. 부지런을 떨었더니 1 시간이 공짜로 생긴 셈이다.

 

(07:05) 완도항 하선

완도를 드나들면서 완도읍이 가까워질 무렵 길에서도 보이는 저 멀리 남해를 손으로 가리키며 서 있는 커다란 동상이

있다. 장보고와 완도의 청해진 역사를 알고 있다면 금방 장보고 동상임을 알아차릴 거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워낙 크게

보여 차라리 멀리서 보는 게 더 좋다.    

 

 

장보고 동상(장보고 어린이 놀이 공원)

장보고(張保皐 ?~846)는 신라 사람이다. 평민 출신으로 고향이 어디인지, 부모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는 친구  鄭年

과  당나라 서주로 건너가 장수가 되었다. 서주는 중국 제1의 무역항 양주와 가까워 중국의 해적들이 신라인을 잡아와

노예로 파는 것을 목격하고 고국으로 돌아온 후  왕의 허락을 받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수군을 양성하여 해적들

을 소탕하고 해상권을 장악했다고 한다. 청해진은 신라, 당,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요충지로 장보고는 번영을 누리는

세력가가 되었다. 그 후 왕위 계승과 관련된 권력 다툼에 휘말려 염장이라는 자객에게 암살당하고 청해진은 문성왕 13

年년(851)에 폐쇄되었다.    

 

 

장보고 기념관이다.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186 위치에 2008년 1월 31일 개관했다. 이 일대는 청해진 본거지로 법화사

터를 비롯해 장보고 공원 등 장보고 관련 유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방역 조치로 무기한 휴관 중이다.

 

 

청해진 유적지 주차장

아침 이른 시각 태양은 역광이다. 동쪽 바다는 모든 게 뿌연 햇살에 가려 눈부시다. 소라를 엎어 놓은 듯 하다는 장도가

갯벌에 웅크리고 있다. 청해진 본진이 머물던 자리 장보고의 아치트라고 한다.   

 

장도목교

하루 두 차례 썰물일 일어날 때 갯벌 바닥이 들어나 걸어서도 왔다갔다 한다. 현재는 목교(보행교)가 가설 되어 수시로

드나들 수가 있다. 

 

 

완도 청해진 유적 (사적 제308호)

淸海鎭은 신라 흥덕왕 3年(828)에 장보고가 왕의 허락을 받아 완도 앞 바다 장도섬에 해군기지겸 무역기지를 설치하

여 신라, 당,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청해진은 외성문, 내성문, 고대(高臺), 각 1 개소 치 4개소,  당집, 석축우물, 판축 계단식 성벽 890m, 성터 안에는 토

기와 기와조각 등이 발견되어 방사성 탄소연대측정 결과 장보고 시대의 유물임이 판명되었다고 한다.

 

 

외성문

 

 

 

고대(누각)

 

 

사당 울타리 동백 숲

 

 

사당

지금은 장보고가 신당 주인이며 초상화가 걸려 있다. 1997년 해양수산부에 해양문화재단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송징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송징은 고려 때 완도 사람이며 삼별초에 가담한 장수 무용(武勇)이며 활을 잘 쏘

아 활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완도민을 위해 열심히 살다가 비장하게 죽자 바다의 수호신으로 모셔 해마다 정월 대보름

날이면 장도 신당에서 밤새도록 제를 지냈다고 한다. 장도의 초가 굿당은 사라지고 기와 이은 전각이 버젓이 생겨났다.        

 

 

사당 뒤 참나무 숲

 

 

아침에 고요

 

 

탐방로

 

 

성벽을 걷다

 

 

상왕봉과 장좌리 일원 전경

 

 

우물

 

 

굴립주(堀立柱) 대단한 유물처럼 보이지만 건물의 기초를 나무 기둥으로 세웠다고 보면 된다.

 

 

목책 안내

방어시설이라고 한다. 청해진 앞바다를 제외한 주변 바다는 수심이 얕아 목책을 박았다. 외부 접근을 막는 방어용인지

접안시설의 기능을 감당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참나무(소나무) 기둥 열이 331m나 된다고 한다.

 

 

목책

 

 

남쪽해안 절벽

 

 

장도 목교

 

 

갯벌

청해진 옛 것은 땅속에 묻혀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으로 기억해 내고 역사는 일본과 중국에 것을 빼기고 삼국사기는 진

해장군을 궁복(장보고)이로 나오고 보이는 것은 다 현대식 전각과 조경뿐이니 무식한 나로선  이찌 옛 정취를 떠 올릴까

무심한 갯벌만이 알겠구나.      

 

 

 

 

 

 

2022년 04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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