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소문따라/세계유산 조선왕릉

서울 조선왕릉 선릉과 정릉

안태수 2019. 3. 3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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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 도심 속 빌딩 숲에 잠들다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두 달에 한번 만나 점심을 먹는다. 재경 동기회 형식으로 모임을 갖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빠지는 사람이 늘면서 뜻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계속하고 있다. 강남에서 점심 후 오후 시간, 하늘은 맑고 극

부리던 미세먼지도 사라졌다. 아무 생각 없이 강남대로를 걷다가 문득 지금쯤 꽃이 필 건 데 하는 생각에 치자

발길은 선릉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문을 남쪽에서 동쪽으로 옮겼다. 침수와 협소한 주차장 때문이라고 한다. 선

릉을 더나드는 정문도 풍수지리에 맞게 자리 잡았을 건데 누가 마음대로 옮겼는지? 침수는 어제오늘의 일

니고 주차는 배려할 가치가 없는 요소이다. 390m나 이동하려니 괜한 심술이 났다.

           


참전 유공자증을 제시하고 무료 입장권을 교부 받아 정문을 들어서는데 직원이 하루 두 차례 실시하는 해설사

함께가 2시에 재실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종합안내도

    

재대로 된 해설을 듣기로 하고 정문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들어섰다.


2시 정각이다. 해설사는 여자이고 내가 선착이다. 정문에서는 분명히 재실이라고 했는데 여기 안내에는 정문

발이라고 되어 있다. 해설사 보고 정문 출발이냐고 물어보니 자세히 보라고 한다. 공휴일 정문, 주중에는 재

실이라고 두 가지 경우가 표기되어 있다.  초장부터 뭔가 실수를 한 것 같아 찜찜했다.  


이후 젊은 남녀가 나타나 해설이 시작되었다. 재실 전경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해설자 曰 "제 사진은

지 마세요" 하며 정색을 한다. 클로즈-업 해서 찍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같은 말이라도 쌀쌀함을 느꼈다.


500년 수령 은행나무

은행나무와 옛날 정문과 거리는 100m가 안돼 보인다. 해설사가 은행나무를 소개하면서 암나무인데 작년에는

은행이 열리지 않아 그 이유를 舊 정문 지반이 침수가 잦아 지하에 빗물 저수조를 설치하는 바람에 물길이 바뀌

어 그런 것 같다고 한다. 그러면서 주변 은행나무에는 이상이 없었다고 하며 여기저기 은행나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가 한 마디 했다. "어딘가 할아버지 나무가 돌아가셨는 모양이지요" 웃자고 한 얘기인데 "그런 거

아니구요" 권위에 도전하는 줄 안 모양이다. 두 번째 씁쓸함을 느꼈다. 


역사문화관


세계유산 조선왕릉 표지석



◈선릉(宣陵)


선릉은 조선 제9대 임금 성종(成宗 1457~1494)과 계비 정현왕후(貞顯王后 1462~1530)의 능이다. 두 능은

같은 능원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형식이다. 성종은 추존

덕종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왕위에서 멀어졌으나 추존 덕종과, 예종(睿宗 1450~1469) 그리고 원자의 이른 사

으로 형(월산대군)을 재치고 왕위에 올라 25년간 재위했다. 정현왕후는 성종의 세번째 왕비로 책봉되어 중종

의 어미가 된다.  



홍살문(紅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


향로(香路)와 어로(御路)

제향 때 왼쪽길은 향과 축문이 들어가는 길이고 오른쪽 낮은 길은 임금이 들어가는 길이다.  


정자각(丁字閣)

제향을 지내는 건물로 '丁' 字처럼 지어졌다고 붙인 이름이다.


신계(神階)와 어계(御階)

향과 축문이 올라가는 계단과 임금이 올라가는 계단을 구분하고 祭主들은 별도의 나무로 만든 임시 계단을 사

하다.  


신도(神道)

능 주인이 정자각까지 걸어다니는 길


예감

축문을 태우는 장소 


수라간

제향때 사용하는 따뜻한 음식을 데우는 장소


수복방

능을 지키는 관리인이 임시로 머무는 건물


비각

능 주인의 신도비나 표석을 세워둔 건물


능침은 상계 중계 하계 삼계로 나눈다. 능 주인이 잠들어 있는 곳을 능상이라 하며 상계에 해당된다. 상계는 곡

장을 치봉분을 보호하기 위한 12支神像을 새긴 병풍석을 두르고 난간석으로 울타리 쳤다. 나쁜 기운을 물

는 석양능을 지키는 석호를 배치하고 망주석을 세우고 혼유석을 놓았다.  

  


중계는 가운데 장명등을 좌우 문석인과 석마를, 하계는 좌우 무석인과 석마를 배치했다.

 

산책로

사진 찍는다고 경계를 넘다가 해설사한테 주의받고 내 따나 법 없이도 살아간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서운한 감

이 앞서는 것은 이기심일까? 진달래가 흐트러지게 핀 산책로 따라 다음 왕릉으로 이동한다.     


정현왕후 능침


석물상


능침

병풍석이 없이 난간석만 두른 형식이다 .세조 때 백성들의 번거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무덤 만드는 일을 간소하

게 하라고 유지를 내려 예종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병풍석을 설치하지 않았다. 이후 실세 왕들에 의해 능의 형태

좌지우지되었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선, 정릉


도심 속 반 나절 산책로 훌륭하다.



◈정릉(靖陵)

 

정릉은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中宗 1488년~1544년)의 능이다. 중종반정으로 이복형인 연산군을 폐위 시키

왕위에 올랐다. 정릉은 원래 고양 서삼릉 희릉(장경왕후 중종의 제2계비)에 동원이강릉으로 세워졌으나

정왕후에 의해 현재의 자 옮겨졌다 후일 문정왕후도 이곳에 묻히기를 희망하였으나 풍수가 좋지 않다는 이

유로 서울 태릉으로 모셨다.    

 


홍살문


정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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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침


비각

재실과 수라간, 수복방 등은 선릉과 같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별도 마련되어 있지 않고 능침도 개방하지 않고 있

다. 동선은 갈 '之' 字로 홍살문도 재 구실을 못한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성역의 공간을 침범한 탓이다. 빙빙 돌

아 억지로 꿰맞추어 답사를 마쳤다.  






                                                       2019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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