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히말라야 앞에 서다
히말라야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내가 지금 네팔까지 날아와서 히말라야 설산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높고 파란 하늘 흰 뭉게구름은 조국의 여름 하늘을 연상시키고 먼 산은 초록으로 울창하다.
비포장도로, 무질서한 차량 행렬, 길가 노점상들, 까만 피부의 남루한 행인들은 정녕 60년대 우리나라를 보는
듯하다. 내가 히말라야를 향해 꿈을 키운 것은 친구가 건네준 '山書'이라는 연간지 때문이었다. 국내 글 쓰는 산
악인의 모임인 한국산서회에서 발간한 책인데 국내에서는 등산과 관련된 책은 초판 인쇄 후 사라지는 것이 보통
이라 도무지 무슨 책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山書는 산에 관한 좋은 책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어 다만 구하지 못함
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서점, 헌책방(알라딘)을 쏘다니면서 산에 관한 책은 무조건 구해서 읽으면서 번역서로
히말라야 등반기가 대부분이었다. 히말라야에 올랐다가 아직도 내려오지 못한 박영석을 비롯한 산악인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며 작은 정성이나마 그들 앞에서 명복을 빌어주고 싶었다.
(09:20) 포카라 출발
금년 7월 인터넷 히말라야 트래킹 코스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유재원의 세계오지여행정보」 사이트에서 10월
18일 출발하는 안나푸르나 생츄어리 코스 트래킹과 치트완국립공원 탐방 15박 16일의 여행 일정을 보고 참가
뜻을 댓글로 달고 유재원 대장과 한번의 통화로 참가를 결정했다. 유대장의 화려한 오지여행 경험과 네팔 히말
라야의 구석구석 탐방 경험은 신뢰하기에 충분했다.
(10:20) 칸데(Kande 1,750m) 도착
포카라(820m)에서 칸데까지 1시간에 걸쳐 2차선 비포장과 포장도로 산길을 오토바이, 승용차, 승합차, 화물차
와 위험하게 경쟁하면서 덜컹거리며 올라왔다. 가이드의 하이웨이라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안나푸르나 베
이스캠프를 이해하기 좋게 'ABC'라고 부른다. ABC로 향하는 모든 출발점은 포카라가 되며 포카라에서 출발하는
소위 하이웨이는 나야풀(1,070m)을 지나간다. 이 사이에 있는 페디, 칸데, 비레탄티, 3 곳과 푼힐(3,193m)을
거쳐가는 고라파니까지 합치면 4개 트레일 코스가 촘롱(2,170m)에서 만나 한 트레일로 ABC까지 간다.
우리팀 19명을 지원할 가이드 1명, 셀파 2명, 포터 요리사 23명, 총45명의 大부대가 원정길에 나선다.
「제주의 오름 368」의 저자 제주 한동호 선생
(10:40) 칸데 출발의 변
여러 날 준비물 챙기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웠다. 혹시 그 많은 외국의 명산들 가운데 왜 히말라야냐고 묻
는다면 백두대간도 무작정 시작한 것처럼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도 그렇게 시작하고 싶어서이다. 그림으로 혹은
먼발치에서 애만 태우는 것보다 직접 산 밑 설선까지 가서 정상을 올려다보며 만년설도 만져 보고 빙하도 걸어
보면서 내 체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도 하고 8,000봉은 아니더라도 6,000봉이라도 한번 올라봐야겠다
는 결의를 다진다.
어디든 서두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선두가 보이지 않는다. 트레일은 외통수의 길로 잘
다듬어져 있고 하루 평균 트랭킹 거리는 7km 안팎으로 3~4시간이면 다음 롯지에 도착하는 데 충분하다. 절
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히말라야를 즐긴다.
출발점 주변의 산들은 어림잡아 해발 3,000m 정도의 등고선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산지의 나라라고 부
른다면 네팔은 산악의 나라라고 부르고 싶다. 보이는 것이라 곤 산과 계곡 고개를 뒤로 젖혀야만 보이는 능선과
하늘이 전부이다. 트레일은 6부 능선을 기준으로 오르내리며 산줄기를 따라 굽이굽이 돌아간다.
네팔 히말라야는 위도 28도에 걸쳐 있는 아열대 지방이다. 산 아래쪽은 아열대 몬순기후 중턱은 온대기후 고산
은 고산지대 기후가 형성된다. 대채로 우리 여름은 그쪽 우기철이고 겨울은 건기로 나타난다. 우리 트래킹 기간
중 겨울 건기에 해당하여 비는 없고 기온은 영하로 떨어질 염려는 없다. 지금은 영상 26도 한여름 날씨다.
마을마다 있는 휴계소에서 간단한 스넥류, 초크렛, 탄산음료, 생수, 맥주 등을 팔고 있다. 우리 일행은 한국에서
먹는 것은 완벽하게 준비 해 온 듯 그냥 지나친다.
칸데를 출발한 지 40분경과 비교적 마을 길을 잇는 평탄한 길을 걸어왔다. 지금부터는 산 능선 정상부까지 올라
야 한다. 한눈에 봐도 버겁다. 다들 그늘에 모여 앉아 한숨을 돌린다.
경사도가 30도에 육박하는 비탈을 고도 300m 돌계단을 오른다.
슬리퍼를 신고 40kg(두 사람의 짐) 정도의 짐을 지고 산길을 오르는 우리 포터 일행.
드디어 첫 능선 마루에 올라섰다.
포터들이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는 곳
오스트렐리안 캠프
휴식 중인 외국인 트래커
(12:10~13:30) 오스트렐리안 캠프(Australian Camp 2,060m 기온 20도) 도착 점심
점심(오이뭍임, 파김치, 깍뚜기, 감자볶음, 김치, 미역국, 누룽지, 불랙티, 망고차, 온수) 후 휴식.
네팔 요리사의 첫 한국음식 식단은 훌륭했다. 오이뭍임, 감자볶음, 파김치를 넣고 비볐드니 집에서 먹는 거와 별
반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누룽지는 일품이었다.
오스트렐리안 캠프와 요산
포터들 오후 출발 준비
여행경비는 인천-카트만두 왕복 항공료는 본인이 부담하고 네팔 체재비용 일체 $1,150을 현지 가이드에게 지
급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소화하기로 약속되었다고 하고 포터들의 팁은 별도라고 한다.
포타나까지는 약 1km 약간의 내리막과 평지를 걷다 보면 금방 도착한다.
(13:50) 포타나(Pothana 1,890m)
포타나 Check-Post 통과
안나푸르나는 국가가 자연 보존 지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거머리의 행태
우기에 거머리를 조심하라고 한다. 풀밭. 돌, 바위에 붙어 있다가 사람이 지나가다가 잠시 멈춘 사이 달라붙는
다. 실처럼 가는 거머리는 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와 신발, 옷, 양말 등 작은 틈으로 침투하여 흡혈을 한다.
대처는 장화를 신고 퇴치는 소금을 뿌린다.
비탈길을 걷다가 넓은 평지를 만나니 숨이 탁 트이며 웬 떡인가 싶다. 고원 습지로 초지를 일구고 있다. 한 바퀴
휙 돌아보고 다음 목적지인 데우랄리까지 약 250m 고도를 높인다.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 '데우랄리'는 네
팔어로 고갯마루라고 하며 우리말에는 재, 고개, 嶺, 峙 등이 있다.
히말라야 원시림
안나푸르나 연봉과 첫 조우
모든 게 살아 움직인다. 그림이나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감회가 다르다. 지금 히말라야는 오전은 맑고 오후는
흐리다. 밤의 찬 공기가 산 아래로 내려왔다가 낮 동안 따뜻해진 기온이 상승하면서 오후부터는 안개, 운무, 구름
으로 하늘을 가린다. 지금 시각 구름이 한창 모여드는 때 한 조각 파란 하늘이 남아있는 사이로 갑자기 흰 설산이
나타난다. 우주에 떠 있는 행성처럼 흰 산은 지구의 땅이 아니었다. 넋을 놓고 바라보면서 내가 히말라야에 와 있
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데우랄리 직전 히운출리 안나푸르나 남봉, 전망처
(14:55) 데우랄리(Deurali 2,142m) 통과
데우랄리는 오늘 운행 구간 중 제일 높은 곳에 롯지가 있는 고갯마루다. 히말라야 전망이 나오는 곳은 어김없이
사람이 살며 트래커를 위한 식당, 쉼터, 숙소가 마련되어 있다. 다음 롯지가 눈에 빤히 보여 길 잃을 일은 추호도
없다.
데우랄리부터 톨카, 란드룩까지는 약 4km, 600m를 하강하는 내리막 길이다. 돌계단과 임도, 계곡을 건너는 브
릿지와 산사태 지역을 통과한다.
(15:15) 베리카르카(Bherikharka) 통과
산 전체가 한 눈에 보이니 원근법이 없어지고 입체감이 사라진다. 종이 위 그림을 보는 것처럼 거리 짐작이 안
되며 모든 게 작고 가마득하게 보인다.
지금 우리는 해발 3,000m 정도의 산속에 갇혀 있다. 6부 능선 정도에 산길이 나 있으며 그 길을 걷고 있다. 우측
에 보이는 산 모퉁이가 빤히 보이지만 3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다.
산을 하나 내려오고 있다.
임도를 만난다.
우리는 데우랄리, 포타나, 담푸스 지름길로 내려왔다.
산사태 지역 출렁다리를 건너서
실폭포
경사면을 흘러내리는 폭포는 발원지가 어딘지 도무지 짐작이 안 된다. 물이 흔하면서 물 부족으로 허덕이는 나라
물 관리가 안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산에는 물이 없다. 백두대간을 하루종일 걸어도 물을 만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는 물 천국이다. 물은 깨끗하지만, 석회 성분이 있어서 외지인들은 정수하든지 끓여서 마셔
라고 한다.
(16:05) 윗 톨카(Tolka) 통과
중간 톨카
지름길을 피하고 임도 따라 걷는다.
지름길과 임도 갈림길
(16:35) 아랫 톨카(Tolka 1,700m) 통과
가마득하게 내려간다.
출렁다리 건너기
간드룩 조망
란드룩과 간드룩은 모디콜라(발원지가 안나푸르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콜라(Khola : 강 江)
동물의 천국 우리 보기엔 한심한 견공
네팔은 축제의 나라, 10월은 축제가 몰려 있는 달, 가장 긴 '디사인' 축제는 14일간 계속된다고 하며 우리가 트
래킹 하는 중에는 '티하르'라는 축제가 시작되었다. 축제 중에 소년 소녀들이 길을 막고 돈을 행인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행사가 있는데 앗 불사 트래킹 중에 이들을 만난 것이다. 꼬마들이 손에 손을 잡고 길을 막으며 한 아이
는 꽃이 담긴 바구니를 지나가려는 사람 앞에 막무가내로 내민다. 나머지 아이는 네팔 민요 '래삼삐리리' 흥겹
게 불러댄다. 통행료를 내야 한다. 준비한 돈이 없어서 간신히 피했지만, 마음이 영 찜찜했다. 가이드한테 물어
보니 축제기간에는 흉이 아니며 100루피/1달러/천원 정도 기부하면 된다고 한다.
(17:25) 란드룩(Landruk 1,565m 기온 17도) 도착. 운행거리 7.5km/ 소요시간 6시간 55분(점심시간 1시간
30분 포함) 어디서나 산속은 일찍 해가 진다. 골짜기는 이내 어둑어둑해지고 곧추서면 구름 사이로 석양이 간간
이 하늘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저녁은 생각지도 않은 돼지고기 수육이다. 소금과 김치를 올린 것을 보며 요리
사의 솜씨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진다.
해질 무렵 안나푸르나 연봉 히운출리, 안나푸르나 남봉 감상
숙소
방은 2인실, 3인실, 4인실, 6인실이 있으며 나무 침대와 매트리스에 하얀 시트가 깔렸다. 이불은 없고 각자 준비
한 침낭으로 가름한다. 방 배정은 롯지 도착순이다. 어른(내가 세 번째)이고 뭐고 없다. 약삭빠른 친구들이 먼저
와 좋은 방을 선점해버린다. 경쟁은 피곤한 일 한발 물러서면 여유가 생긴다. 샤워와 화장실 이용도 마찬가지다
전원이 다 사용하고 난 후가 내 차례다. 수건에 물 적셔 마른 땀을 닦아내는 정도로 끝낸다. 공기가 좋아서인지
땀냄새도 안 나고 뽀송뽀송하다. 면으로 된 잠옷으로 갈아 입고 체온을 유지하니 피곤한 줄 모르겠다. 히말라야
첫밤을 맞이한다.
2016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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