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소문따라/문경 선유계곡 진남교반

문경 진남교반 토끼비리~고모산성 일원 탐방

안태수 2020. 11. 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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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 이름 같은데 경북 8경 중 1경이라!

 

이번 문경 산행길에 김룡사, 대승사, 진남교반은 별도로 메모해 온 답사 예정지이다.

시간이 많이 남아 세 곳 다 방문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진남교반은 진작부터 들어왔지만 '뭐 하는 곳이지'하는 이름이 주는 선입감 때문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출발 전 날 지도를 펼쳐 놓고 동선을 짜다가 진남교반이 돌아오는 길목에 있었다. 

 

진남교반 주차장

김용사에서 내비에 진남교반을 입력하고 차를 몰았다. 진남교반 휴게소를 지나쳐 마을로 안내한다.

이렇게 가는 모양이지 하고 가는데 어떤 소나무 아래에서 내비를 종료한다.

똑같은 코스를 두 번 돌고 나서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두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가까스로 찾았다. 

   

진남교반(鎭南僑畔)안내도

 

오정산 등산 안내도

개 눈에 x밖에 안 보인다고 내 눈에는 등산 안내도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운달산~조항령~단산~배나무산~오정산 코스 산행기를 본 적이 있어 눈이 번쩍띄었다. 

 

고모산성 안내도

 

오정산 등산로 입구 이정표

 

문경 오미자테마터널 

문경선 석현터널 540m 거리에 문경 특산품 전시, 홍보,  판매하며 동시에 문화 공간을 조성하여 여가 활동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문경선 영강철교 

옛날 광산업이 한창일 때 문경 일대 질 좋은 석탄을 채굴하여 실어 나르던 철길이다.

문경선(가은~진남~문경~점촌)의 한 구간으로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석탄에서 관광으로 탈바꿈한 고장이다.

   

고모산성, 토끼비리 방향 팻말

 

소나무 숲길

 

토끼비리 가는 길

영남대로 옛길 문경 조령천과 영강의 합수지점에 고모산이 끝자락 비리 지형 당시 고려 왕건이 길을 잃고 헤매다가 兎선생을 만나 兎遷'한 길, 조선 시대 과거길, 관료들의 임지 행차, 시인 묵객의 유량길, 보부상 등이 이용하던 험준한 벼랑길이었다.

'비리'는 벼루의 방언인데 벼루는 강이나 바다와 통하는 낭떠러지를 말한다.

 

잠시 성벽 따라 걷다가 성벽이 끝이나면 

 

토끼비리(串岬棧道)가 시작된다. 편도 500m, 왕복 1km 정도가 된다.

 

산허리 비탈진 아슬아슬한 길을 잔도라고 한다. 튀어나오고 들어가는 곳은 안전로프에 의지해 통과 하고

 

조선 초기 문신 면곡 어변갑(1380~1434)이 토끼비리를 지나며 읊은 詩의 일부를 소개하면 빨리 가려고 하다 넘어질 것 같아 기어가니 늦다고 나무라지 마소. 

  

바위를 깎아 길을 내고

 

오르막은 계단과 데크를 깔았다.

 

영남대로 옛길과 오정산(4,0km), 삼태극 전망대(1,1km) 갈림길에서

 

벼랑톱을 따라 잠시 가면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토끼비리 구간이 끝난다. 진남교반 일원이 잘 보이는 곳이다. 다시 갔던 길을 되돌아 나와 석현성, 고모산성, 고분, 주막 ,성황당이 있는 곳으로 간다.

 

진남교반 일원 전망

 

석현성

조선 시대에 들어와 쌓은 성으로 축조 연대가 미상으로 고모산성과 붙여 있어 혼선이 왔다.

 

鎭南門

 

석현성 전경

 

고모산성 안내문

신라가 축성한 산성으로 삼국 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격전지였고 후삼국 시대에 들어와  고려 왕권과 후백제 견훤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으며 조선 임진왜란 때는 의병의 주둔지였다.

   

고모산성 南門

 

고모산성

 

고모산성에서 삼태극 전망

 

꿀떡고개 주흘산 전망

 

주막

 

새마을사업 이전 모습의 주막

 

성황당

유원지로서 갖추어야 할 재료가 많아 한나절 관광하기에는 벅찰 정도이다.

구 철길 터널을 이용한 문경 특산품 오미자 홍보와 판매장, 역시 진남역을 중심으로 구 철길을 이용한 철로 자전거 타기, 산과 강이 잘 어우러진 곳에 영남 옛 사다리 병창길 토끼비리 걷기, 한결같이 아름답고 훌륭한 명소이었다. 

'僑畔'은 지형을 말하는 것 같은데 사전을 뒤져봐도 지체 높으신 양반이 쓰는 귀한 말이라 아무리 단어를 조합해도 해석 불가하다. 에라 모르겠다. 작명 당시 강변 진남마을이나, 강가 벼랑을 두고 한 말은 아닌지...           

 

 

 

 

 

2020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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