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조선일보 선정 산/보령 오서 성주 만수산

보령 성주산 성주사지 탐방

안태수 2020. 4. 1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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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산 갔다가 하산길 떡 본 김에 제사 


우리나라에 이름난 절터가 몇 있다. 경주 황룡사지, 보문사지, 양주 회암사지, 서산 보원사지, 선산 죽장사지가

그렇다. 전각들은 사라졌지만, 석물이 남아 절터임을 알려준다. 다시 오기는 먼 길 어떻게든 답사를 하고 가겠

다는 일념에 하산 길 해갈 질 무렵 성주산 장군봉 아래 있는 옛 산사 성주사지를 찾았다. 인적이 끊어지고 찬바

이 부는 가운데 혼자 방문의 예를 갖추어 일주문부터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어느새 금당 앞마당 중문지까지

어섰다. 좌우 회랑을 사이에 두고 석등과 오층석탑이 줄지어 섰고 이어 금당 올라가는 석계가 나타나고 금당

을 알리는 주춧돌이 놓였다. 금당 뒷마당은 강당지 앞 뜰, 삼층석탑 3기가 나란히 있고 좀 떨어진 우측에 석불

입상이 좌엔 국보인 낭혜화상탑비가 서 있다. 두서없이 주인 없는 절터 한 바퀴 돌아보고 나왔다.  



성주사지 관광안내소 9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성주사지(聖住寺址) 안내문과 가람배치도(추정)



성주사지 (사적 제307호) 全景

삼국 시대 백제 법왕 때 세운 오합사(烏合寺)란 절이었다. 통일신라 시대 당나라에서 선종 불교를 공부하고 돌

아온 무염대사(낭혜화상)크게 중창하여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한 파가 되었다. 종(禪宗)은 언어나 문자를

통하지 않고 수양만으로도 불성을 깨달을 수 있다는 불교의 한 종파, 당시 성주사 주지 무염대사는 당대 최고의

선종 승려였으며 성주사는 17세기까지 사찰의 명맥을 이어오다가 조선 후기에 폐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령 성주사지 석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3호)

통일신라시대 후기 제작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보물 제19호)

통일신라시대 후기 제작


오층석탑


오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석계단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0호)

통일신라시대 후기 제작


금당지터


보령 성주사지 삼층석탑 全景

보령 성주사지 (西)삼층석탑 (보물 제47호)

통일신라시대 후기 제작


보령 성주사지 (中央)삼층석탑( 보물 제20호)

통일신라시대 후기 제작


보령 성주사지 (東)삼층석탑 (보물 제2021호)

통일신라시대 후기 제작


보령 성주사지 석불입상 (문화재자료 제373호)

통일신라시대 후기 제


낭혜화상탑비 비각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국보 제8호)

통일신라시대 승려 낭혜화상의 비석이다. 낭혜(郎慧)시호이고 이름은 주천(周川)이며 법명이 무염(無染)이

다. 신라 애장왕 2년(801)에 태어나 13세에 출가하여 20세에 당나라 유학 가서 문성왕 7년(845)에 귀국하여

오합지주가 되어 절을 크게 번창시킨 공으로 왕이 성주사라는 절 이름을 내려주었다 그 후 89세로 입적하자

진성여왕이 낭혜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문은 최치원이 짓고 글씨는 그의 사촌인 최인곤이 섰다. 통일시라시

중에 가장 크고 조각 솜씨가 화려하여 걸작이라고 한다.     


성주사지 전경

답사를 마치고 다음 산행지가 있는 계룡산국립공원이 있는 대전 유성으로 간다. 호텔도 예약 해 놓았고 온천이

문을 닫기 전까도착하면 된다. 성주리를 출발하여 부여, 공주, 유성까지 동쪽으로 약 100km 1시간 30여분

려 목적 장소에 잘 도착했다.     





                                                       2020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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