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이정표가 온 산을 헤매게 하네
원거리 산행을 하려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 7~8시간 산행을 한다고 보면 산 밑 발치까지 9시 전에 도착
해야 해지기 전에 무사히 하산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준비물은 전 날 머리맡에 다 챙겨놓고 선잠을 자다가
자명종이 울리면 후닥딱 일어나 배낭에 주어 담는다. 내용물을 여러 번 확인하면 그 과정에서 또 빠트리기 때문
에 1회 확인으로 끝낸다. 교통편은 현지 사정에 따라 결정한다. 여러 봉우리를 잇는 종주인 경우 대중교통을 이
용하려고 노력하는데 보령 성주산은 교통이 불편하여 차를 가지고 간다. 아이고! 24시 김밥집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구나.
(09:20) 성주산자연휴양림 매표소 주차장
서울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대천 IC를 빠져나와 보령시 외곽 도로를 달려 170km를 3시간 여만에 도착했다.
대천 휴게소에서 잠시 화장실 이용하고, 내비게이션 잘 못 판독한 죄로 성주리 주변을 잠깐 방황한 시간이 포함
되어 있다.
휴양림 도로
'우환폐렴'으로 휴양소가 잠정 폐쇄조치가 내려진 상태이다. 먼수산 경유 성주산 등산로가 휴양림 안에 있는 것
으로 알고 왔다. 휴양림이면 이정표 하나는 국민학생도 알 정도로 끝내주게 만들어 놓는데 왠지 팻말 하나 세워
두지 않았다. 사람이 나타날 때가지 기다렸다가 "만수산 등산로가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 만수산이 없는데
요" 이 시간에 주민 같은데 들려온 대답은 기가 막힌다. 좀 젊은 사람에게 지도를 펼쳐놓고 물었다. 7~800m 휴
양림 도로를 따라 가면 관리사무소가 나오는데 거기 등산로가 있습니다. 휴양림 일대가 화장골이구나.
관리사무소 광장
광장의 용도가 뭔지? 전체가 보도불럭으로 깔렸고 가장자리에 관리사무소가 있다. 우한페렴 때문에 사회적 거
리 두기, 부득이한 경우 2m 이상 떨어지기 등의 지침으로 관리사무소 방문을 생략하고 반대편에 있는 이정표
로 다가가 살펴보니 팻말에 등산로라고 막연하게 적혀있다. 이곳 지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몰라도 외지에서 온
사람들에겐 도움이 안 되겠다.
성주산 자연휴양림
등산로 입구 안내도와 이정표이다. 두 표시판 다 오늘의 등산코스 만수산, 비로봉, 문봉산, 장군봉(성주산) 표시
가 빠졌다. 이정표에는 생뚱맞게 전망대 2.9km란 팻말만 달랑 붙었다. 전망대가 만수산이겠지 하며 속으로 궁
시렁거리며 출발한다.
침목계단
100 여미터 올라온 지점 아정표에는 전망대와 광장(3.2km) 팻말이 붙어있다. 내 지도에는 두 곳의 표시가
없고 인터넷 지도에도 없다. 사전 인지가 안 된 상태라 황당하여 길조심 하며 진행한다.
보령시 구조표시목도 길 찾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
첫 진달래
평의자 두 개가 놓여 있는 쉼터
화장골(花藏)은 출발한 지점이고 숲속의 집은 휴양림 內에 있고 전망대는 이정표마다 붙어 있는 팻말이고 정작
만수산 팻말은 없다.
썩은바위길
소나무길
너설길
(10:30) 만수산(萬壽山 조루봉 575m) 도착
하산 후 집에 돌아와서 성주 면사무소와 성주산 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에 따지기 위해 전화했다가 안 사실이지
만 만수산은 성주와 경계인 부여 산이라고 한다.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말에 더 이상 추궁할 수 없어 참고하라고
일러만 주었다.
만수산 정상석과 기념촬영
폐광으로 인한 지반 침하지역
차령산맥 끝자락 산악지대인 보령 성주산 일대는 한때 국내 제2석탄채굴광이었으며 1950년부터 1980년까지
무연탄을 년간 15만 톤 생산하는 탄광지대였다. 점차 매장량이 줄고 채산성이 떨어져 폐광이 잇따르자 1989년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조치에 의거 폐광 조치가 내려졌다. 성주리 일대가 탄광촌이었다.
(10:55) 궁금했던 전망대에 도착했다 만수산에서 0.5km 떨어진 거리다. 그동안 우려했던 만수산도 무사
히 지났다. 다음은 비로봉 갈 차례이다. 맨 먼저 코스부터 확인하고 구경하고 먹고 쉰다.
성주산 전망대
오늘 등산의 개고생은 전망대부터 시작되었다. 이정표가 두 개 있는데 무량사(부여 외산면 만수리), 심원동(물
탕골)성주1리 마을회관, 화장골(산림욕장)과 다른 하나 장군봉, 비로봉(0.9km) 심원골 지명이 6개나 등장한다.
비로봉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무량사 가는 길이다. 무량사는 반대로 넘어간다. 사실 비로봉은 무량사 가다가 왼
쪽 능선으로 빠진다. 궁리 끝에 성주산을 벗어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심원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전망대를 내려서자 마자 등산로는 임도로 바뀐다.
(11:10) 모퉁이를 돌아서니 광장이 나타났다. 제법 넓어 산 행사도 너끈히 치를만한 장소다, 그늘집, 벤치, 평
의자가 놓여있는데 여기가 광장이란 표시도 없고 어디로 가라는 이정표도 없다. 산모퉁이로 등산로가 보였다.
광장 전경
화장골매표소 3.5km, 심원동 1.5km 이정표다 화장골 하다가 느닺없이 화장골에 매표소가 붙는다. 일관성을
의심할 지경이다. 예감이 비로봉 가는 길을 놓인 것 같았다. 다시 돌아서기엔 먼 길을 달려왔다. 되돌아가긴 자
존심도 상했다. 지금부터 비로봉을 찾는 길을 만들자고 다짐한다.
이정표에 심연동(1,0km)과 심원동주차장(1.2km) 팻말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걸렸고 편백나무숲(0.5km)은 비
탈을 트래버스 한다. 갑자기 심연동이란 지명이 나타났다. 지도에 없는 표기다. 내가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있
는 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집에 돌아와 성주면사무소와 통화하여 심원동이 맞는 지명이라고 확인했다.
편백나무숲
갱도 함몰지역이다. 주변 산비탈에 석탄 잔해가 수두룩 깔렸다. 경사지역을 무작정 위로 비로봉 찾아 올라간다.
길 같은 거 없고 약초는 말할 것도 없고 잡초 조차 말라 붙었다. 약초꾼, 동네 사람, 심지어 짐승들도 피해 다닐
판이다.
(12:10) 임도 접속
광장 임도 기점에서 현 지점(0.5km)까지 가지능선과 탄광지역을 돌고 도는 바람에 1 시간 여 결렸다. 임도는
주릉 8~9부 능선을 따라 뻗었다. 능선이 하도 가팔라 도저히 진입할 방법이 없다. 하마나 하며 얕은 골짜기를
찾다 보니 본의 아니게 주릉과 나란히 걷게 되었다.
홍매
백매
청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鑛山 봄의 전령 매화가 지키고 섰다. 누가 심었는지 홍, 백, 청매화가 앙증맞구나. 세월이
흘러 노매가 돼도 내가 지난 간 것을 알기나 할까? 바람에 실어 우주로 날려 보낸다. 우주의 시간은 찰나이짆아.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주능선을 놓칠세라 자주 고개를 쳐드는 바람에 목이 다 뻐근했다. 이정도 거리를 지
나왔으면 비로봉은 잊어버려야 한다. 다음 문봉산이나 잘 챙기자.
철갑소나무
주릉은 아무리 돌고 돌아도 맞은편에 서 있다. 임도 위로 잘룩한 안부를 사이에 두고 장군봉(좌)과 문봉산(우)
이 마주섰다.
전망대에서 5.1km 지나온 지점
점심 장소
날은 따뜻한데 바람이 좀 세게 불어 움직이지 않으면 바로 한기를 느낀다. 바람막이와 양지를 찾다 보니 점심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그나마 바람이 막히는 지점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1회용 수프, 치즈빵, 쑥떡, 바나
나, 딸기가 메뉴이다.
(14:10) 상수리재 도착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와 부여군 지산리 시계 고갯마루이다. 드디어 비로봉 2.8km 이정표 발견, 성태산(부여)
팻말은 붙었는데 성주산 장군봉과 문봉산은 없다. 부여군에서 세운 이정표 같다. 만수산 전망대에서 8~9부 능
선 임도 따라 5.7km 이동했고 장군봉(성주산) 등산로 입구 임도까지 5.2km나 남았다.
상수리재 모습
道有林 內 臨道網 표지석
한문을 우리말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나열하여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돌에 새긴 지도는 임도망이 주된 표
기이고 산은 대략의 위치며 등산로는 없다. 참고는 돼도 도움은 안 됐다. 상수리재에서 마자막 실수를 했다. 불
안한 등산로를 피해 확실한 임도를 선택하는 바람에 문봉산을 놓치고 약 6km 돌아갔다.
사방사업지역 삼나무 조림지
삼나무 조림지
(14:40) 정자
문봉산과 장군봉 사이 안부로 올라서고 심원동 정수장으로 하산하는 삼거리이다 조금 후 이길로 내려오지만
이정표가 있을 법한 위치인데 대책이 없는 산 관리이다.
(15:30) 장군봉 등산로 입구
임도를 벗어나 이정표 같은 거 없이 산길 따라 산악회 리본만 나부끼고 벼랑 쪽으로 안전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직감으로 장군봉 능선임을 알았다. 드디어 목적지를 확인한 순간 지루함에서 깨어났다.
온통 벌거숭이 산에 아직도 사방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탄광, 갱도, 도로, 폐광, 함몰 위험지역 등을 정비하
고 각종 나무도 많이 심었다. 특히 오래된 지역에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잘 자라 보기 좋았다.
백운사 갈림길
당초 계획은 이 길로 하산할 작정이었는데 알바하는 바람에 다 틀어졌다.
마지막 오르막
(16:20) 성주산 장군봉(677m) 도착
첩첩산중이라 산 말고는 전망은 없으나 화장골과 심원골 같은 깊고 깊은 계곡을 낳았다. 주릉을 사이에 두고
동, 서로 성주산 휴양림과 만수산 휴양림 두 휴양림이 들어설 만큼 산세가 아름답고 숲이 울창하다. 산 아래 성
주리에 백제가 창건한 사찰, 임진왜란 때 폐사가 되었다는 성주사지가 있다. 보령에서 오서산 다음으로 명산이다.
장군봉 정상석과 기념촬영
장군봉 전망대
정상에서 문봉산 가는 길이고 절벽에 밧줄이 매여 있다. 이정표 또한 심연동이 아니라 심원동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성주산 만수산 종주 능선
만수산에서 이곳 성주산까지 말굽 형태의 능선이다. 만수산 광장부터 성주산 아래까지 8~9부 능선에 임도가
개설 되어 있다. 구불구불 임도를 걸어오느라 죽을 고생을 했지만 끝나고 나니 금세 힘든 감정은 사라지고 감개
무량하다.
역암층
이 지역은 과거 선상지였거나 하천, 혹은 호수였다는 얘기다. 각종 퇴적물이 뒤섞여 암석화된 퇴적층이 조산운
동으로 다시 융기한 것이다. 수억만 년의 세월 동안 일어난 지질 활동의 산물이다.
역암
차돌(석영), 큰자갈, 작은자갈, 모래, 진흙, 점토 등 다양하게 섞였다.
절벽 내려서기
장군봉과 문봉산 사이 안부, 이정표에 심연동(심원동) 팻말 따라 하산한다.
(17:10) 정자를 기준으로 임도를 따라가다 장군봉을 오르고 다시 반대 방향 능선을 타고 정자로 내려섰다. 정
자를 한 바퀴 도는데만 2시간 반이 걸렸다. 정자에서 삼나무 숲 사이로 심원동 하산 길이 있다.
삼나무 숲을 지나
너덜겅을 통과하고
심원동 장군봉(2.0km) 등산로 입구와 만났다. 이제 산은 다 내려온 것이다. 상수원 보호지역이라는 팻말이 곳
곳에 붙었고 철책을 둘러친 시설물도 눈에 띈다. 인간은 아직도 못 만났다.
(17:35) 상수도 정수장 이정표 장군봉(1.8km) 다 지나고 나니 들머리를 잘못 선택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여기
서부터 시작했으면 임도로 알바할 일이 없었을 테고 문봉산, 비로봉도 빠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보니 인
터넷 검색 때 휴양림을 들머리로 종주하는 기록은 없었다. 자세히 살피지 못한 불찰로 사서 고생한 셈이다. 빤
히 정수장 관리 건물이 보이고 흰색 SUV 차 앞에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저 차를 좀 빌려 타야지 하고
부지런히 걸어갔다. 정수장 직원아 휴양림까지는 약 6km, 택시도 잘 오지 않는다고 한다. SUV 차주에게 사
정을 얘기했더니 지금 막 나갈 참이었다며 흔쾌히 승낙한다. 의정부까지 간다고 한다. 도중에 커피값이라며 억
지로 떠다밀어 넣었다. 할레루야, 나무관세음보살...
트랭글 GPS 운동정보 기록이다. 파란색이 등산코스이며 굵은 색이 궤적이다. 등산로는 오르락내리락 한 길로
바로 가지만 임도는 능선 마다 감아 돌고 계곡마다 파고 도니 두 배 이상의 거리 차가 났다. 15km 예상 거리를
23.3km 8시간 43분이 소요됐다.
2020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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