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이야기/경북중고사칠회

태안 천리포수목원~두웅습지~신두리해안사구 답사

안태수 2014. 5. 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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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月이 뒤숭숭한 가운데 치러진 행사

 

행사 날은 가까워져 오는데 세월호 사건은 날이 갈수록 증폭되어 가는 양상이다.

국가 차원의 대형사고이지만, 이 문제가 언제까지 국민의 일상을 붙들고 우리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할

지 염려된다. 며칠 전부터 매일 일기예보를 체크한다. 행사 당일 오전까지 적은 비 소식이 있고 낮 최고

기온은 15도 안팎이다. 비상으로 우산을 준비한다면 가벼운 비는 행사에 도움을 주고 또 멋진 추억을 만드

는 데 도움도 된다.

우산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꼼짝꺼리다가 결국 제일 작은 걸로 가방에 담았다. 현지에 전화를 해보니 비는

오는리가 도착할 때 되면 그칠 것 같다고 한다. 양재에서 25명 죽전에서 4명 태우고 29명이 태안으로

봄 소풍 간다.  

 

 

(09:00) 외교안보연구원 입구(지하철 3호선 양재역 12번 출구)에서 출발한다.

서초구민회관 앞은 셔틀버스들이 승객을 승하차 하는 곳으로 혼잡하며 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장

시간 주차가 어렵다.

 

(12:00) 천리포항 수산물 판매장내에 있는 "관해수산"에서 점심

자연산회라고 하면서 90,000/4인분이다.

여자분들은 일찌감치 회접시를 비우고 메운탕을 끓이는데 남자들은 회가 영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술도 많이 마시는 것도 아닌데 여기저기 옮겨 담아 균형을 맞춘다.

 

 

회장님 건배사는 기억 안 나고 허리 통증을 걷기 교정으로 치유한다는 얘기는 기억난다.

가르치는 데로 해서 효과가 없으면 책임진다고 했으니 우리 따라 해 봅시다. '밑져봤자 본전인데'

팔자걸음 걷는 사람이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팔자걸음을 11자 걸음으로 바꾸고 걸을

발끝이 안쪽으로 모이게 하게 걸으면서 발뒤꿈치를 땅에 먼저 닿게 하고 다음 발가락 쪽에 힘을 주어

는다는 것이다.

 

 

♣천리포수목원

 

(13:30) 천리포수목원은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1길 187에 있다.

천리포수목원 설립자 민병갈은 1921년 미국 펜실베이니야주에서 출생하여 1945년 미 24군단 정보장교로

한국첫발을 디디면서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1962년 사재를 투입하여 벗은 태안의 토지를 매입

하고 식재 심고 산림을 가꾸며 40년 동안 14,000여 종의 식물 種이 서식하고 있는 세계적인 수목원으로 만

들었다. 1979년 민병갈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인으로 귀화, 2002년 81세로 별세하기까지 수목원은 그의

혼백이 묻혀있고 영혼이 머무는이다.

살아 있는 생물은 다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사랑의 실천력에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수목원정문 앞에서 기념 촬영 (총 29명 중 사진사 제외 2명 없음. 빠진 사람 찾아 댓글 달아 보십시오) 

 

서정도 동기가 "임산 민병갈 박사"에 대한 이력을 간단히 설명한다.

정도형님은 야생화에 조예가 깊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물 만난 고기처럼 처음부터 실력을 발휘하는군요

해설사가 있으면 좋은 점이 많다. 많은 인원을 통제하기가 용인하고, 할당된 시간을 지켜 전체 일정에 차질

발생하지 않으며, "아는 것만큼 본다"고 이름과 설명을 들으면서 기억과 교감하다 보면 산만한 마음이

사라지고 집중하게 되는데 무언가 남는 듯한 기분에 빠진다. 이곳은 민간 소유 수목원이기 때문에 해설사를

쓰는데 따로비용 (30,000원)을 부담해야 한다. 해설사 예악을 대기했다가 차례가 돌아오지 않아 우리끼리

우왕좌왕 마쳤다.   

 

수생식물원 배경으로 성진원 은종서 김익성 홍의근

 

김익성 은종서 부인 한때는 저 꽃보다 더 예뻤는데 지금도 좋다.

 

민병갈 기념관

 

층층나무

 

목련 종류가 하도 많아 비슷한 것은 다 목련이라 부르기로 했다.

 

다정큼나무집은 4~6인용으로 방2, 거실주방, 욕실이 있으며 준 성수기 기준 1일 숙박비가 210,000원

정도. 수목원 안에 힐링하우스가 다양하게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탐방로에는 나무를 잘게 썰어 보도에다 깔았다. 오전에 내린 비에 촉촉히 젖어 먼지 하나 없이 발끝에 닿는

감촉은 깊은 산속을 걷는 기분이다.

야생화보다 키 큰 서양 화초들이 이름을 달리하며 군락을 지어 서식하고 있다.

 

이복자 김태수

 

중간중간 사람이 많이 모였다 싶으면 홍총무의 호령이 바로 떨어진다. " 단체 사진 찍읍시다."

 

서정도 무빙 중 벚나무 종류도 하도 많아 비슷하면 벚꽃이라 이름 붙여도 틀리지 않음.

 

동백꽃

 

해송집 (4~6인용)

 

류정선

 

윤진 배상호 김익성

 

김익성 부인

 

조현호 부부

 

임산 민병갈 박사 흉상 (1921~2002)

 

민병갈 박사의 나무

 

이것도 벚나무 종류 연못가로 늘어지게 꽃 피었다.

 

無題

 

수생식물원

 

수목원 해안전망대

젊은 아가씨보고 방 빼라고 했더니 외국사람처럼 멀뚱하다.

어른들이 들어서면 발딱 일어나야지 옳지 일행들이 하나 둘 모여드니깐 금세 자리를 뜬다. 서해바다, 낭새섬,

갈매기, 해송, 파도, 모래, 바닷바람, 구름 낀 하늘은 늙은이 차지다.

 

아가씨를 쫒고 난 뒤 다들 흐뭇한 표정

 

덕분에 언니들 폼 다 잡고

 

 

  만리포해수욕장

 

만리포 사랑 노래비

 

누군가가 만라포 사랑 노래를 선창하니 주변에 있던 사람 다 따라 부른다. 가사를 끝까지 외는 사람은 박용식

형님.

 

만리포 사랑은 서정도 부부

 

 

두웅습지

 

신두리 두웅습지는 사구 배후습지로 해안 사구지대와 산지 골짜기 경계 부분에 담수가 고여 생김, 규모는

20,000평으로 최고 수위는 3m 정도,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아 습지 동식물(금개구리)의 서식지, 

두리 일원은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는데 사구지대 지하에 규모를 알 수 없는 담수가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설명을 끝내고 머뭇거리는 해설사를 앞장 세워 습지 한 바퀴 돌기로 한다. 

 

전망대까지는 데크가 깔려 있고 나머지 반은 두렁길이다.이런 길을 여기 아니면 어디서 걸어보나 하고 부

지런히 자.

 

전망대

 

 

 

 

신두리 해안사구(海岸沙丘)

 

신두리 해수욕장은 곳곳에 이런 작은 모래 구릉이 만들어져 있다. 유심히 보니 어제 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

세월이 꽤나 오래된처럼 보인다. 바다가 한 짓이 아니라 바람이 날른 것 같다.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일원 해안사구는 바다에서 해류나 파도에 의해 운반된 모래가 바람에 날려

해안 곡 진 쪽으로 퇴적하면서 생긴 구릉처럼 생긴 지형을 말한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해안선을 따라 길이 약3.4km, 폭 0.2km에서 1.3km 사이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김시국 부부가 항상 앞장을 선다. 두분이 같이 많이 다닌 것 처럼 보인다.

 

가랑비는 수목원 입장할 때부터 그쳤다. 바람도 기가 막히게 살랑살랑 시원하게 분다.

하늘은 구름 천지에 보일락 말락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민다. 모래 위 흙과 씨앗이 바람에 실려와 비가

내리면서 생명을 자라게 한다. 초록색 풀은 자라서 억새가 된다. 누군가 감탄사를 자아낸다. 여름 한창 시즌

에도 이런 풍광을 연출할까?

해안 따라 조금 가다가 모래가 집중적으로 쌓인 곳이 제일 높은 지대이며 그곳까지는 두웅습지 쪽에서 오는

길로 입구부터 데크가 깔려다. 넓은 테크를 깔아 놓은 곳이 전망대다.

   

사구 전망대

 

파도가 한 짓이 아니고 땅이 내려 앉은 것이다. 우리가 가고 나면 불도자가 와서 폐인 곳을 되메우고 낮은

땅은 돋굴 것이다.

 

사구 십리 안 초지에 달랑 집 한채  해송으로 빽 둘러친 울타리 갈색 벽에 빨간 지붕 얹인 주인은 아마 부자

일거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 (천년기념물 제 431호)

 

또 홍총무가 불러 세운다. 여자분들이 "이번에는 남자들 끼리 찍의소"

 

만리포에서 학암포가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다가 신두사구 해수욕장입구를 살짝 지나면 두웅습지 가는 비포

장 도로가 나온다. 소형차로는 신두리 일원을 돌아봤지만, 대형버스는 자신이 없다 .해설사가 큰 차는 다닐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한다. 두웅습지에서 모퉁이만 돌면 신두사구 입구이고 곧장 가면 사진의 길과 만나며  

신두리 해수욕장으로 통하는 길이다. 

   

행담도 휴게소 (김태수 성진원)

행담도 저녁식사는 총무의 아이디어로 단체 매식이 아니고 개별 매식으로 바꾸면서 인당 6,000원을 저녁

값과 30분의 시간을 주고 각자 기호대로 매식을 하라고 했다. 잠시 30명의 끈을 놓으니 해방감이 찾아왔다.

알밥을 시켜 열심히 비비고 있는데 태수 형님이 큰 일 난 것 처럼 나를 부른다. '중섭이가 왔나' 숱가락을

놓고 뛰쳐 나가니 중섭이는 없고 행담도 서해대교 너머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나를

찾은 마음을 생각하니 울컥했다.

 

행담도 낙조

돌아오는 길은 편안 했다.  차안에서 술을 나르는 친구도 가끔 있었지만 예전만 못했다. 남은 술을 총무가

챙겨서 방이나 배낭를 메고 온 친구들에게 넣어 주고 회장님의 덕담을 끝으로 잠시 짧은 휴식에 들어가

면서 눈도 붙인다. 또 세월호 때문인가 고속도로가 훤히 뚫려 30분 일찍 죽전, 양재 도착한다. 

 

 

 

 

 

 

 

                                                            201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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