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소문따라/대관령 삼양목장

대관령 삼양목장 탐방

안태수 2023. 5. 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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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돋아야 풍치가 살아나는 초원

 

마누라 한데 잘 보여야 편하게 살아갈 나이다. 잘 보이는 여러 가지 잘 보이는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해마다 벚꽃이 필 무렵 자동차 투어를 서비스한다. 길게는 일주일 정도 걸릴 때도 있다. 여행 일정을 꼼꼼히 작성한다. 코스, 장소, 숙박, 음식 등 평소 산행 때 빠트린 명소를 중심으로 엮어나간다. 마누라의 승인이 떨어지면 호텔 예약, 맛집 확인, 등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다. 부부와 같이 여행을 하다 보면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툴 때가 종종 있다. 즐거워야 할 여행이 지옥행이 되는 경우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사전에 충분한 설명과 의견을 교환하여 출발한다. 마누라는 아직도 내가 등산 마니아로만 알지 여행 전문가라는 것을 모른다. 

      

 

대관령 삼양목장 목장마트

오전 일정을 삼양목장 목책길 투어로 잡았다가 주차장에 도착하니 그 넓은 광장이 휑하니 비었다. 두 번 와 봤지만 그때마다 차량이 북적거렸는데, 매표소로 차를 몰았다. 비수기에는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는다고 하며 몰고 온 차로 직접 구경하라고 한다. 원래는 차를 주차장에 두고 셔틀버스로 전망대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걸어서 목책을 따라 내려오는 코스가 권장하는 산책 코스이다. 걷기에 차질이 생겼다. 

   

 

카페 & 푸드

 

 

동해전망대 주차광장

입구 광장에서 전망대까지 약 4,7km 비포장 도로이다. 도로를 따라 초지 경계에 목책을 쳐 놓고 트레일을 만들어 놓았다. 셔틀버스를 운행할 때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운행했기 때문에 먼지가 날아다닌 것을 못 느꼈는데 각자 몰고 온 차로 전망대까지 오르게하면서 먼지 때문에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지경으로 변했다. 

 

 

동해전망대 (1,140m)

전망대 볼거리로는 바다와 일출 뒤로 돌아서면 東高西低 지형 고산 청정지대에 600만 평의 동양최대의 목장과 화훼단지, 풍력발전단지, 대관령에서 진고개까지 백두대간, 연애소설나무, 태극기 휘날리며, 등 영화촬영지, 양몰이 공연, 소방목지, 즐길거리로는 해발 850m~1,470m 사이 목책로 풀 코스 산책, 송아지 등 동물 먹이 주기, 먹거리는 삼양식품에서 제공하는 자연식품이 있다.

 

 

와!~ 바다다~ 망망대해 일출장관 희망의 전망대

 

 

대관령 고개를 넘어서 다음고개 선자령에 올라서면 해발 850m~1,470m 사이 600만 평의 삼양목장이 전개된다. 더 넓은 초원에 대단위 풍력단지가 돌아가고 소 방목지가 끊임없이 펼쳐진다. 알프스 어느 산자락에 올라선 기분이다. 동해전망대에서 백두대간은 멈춰 선다. 삼양목장에서 국유림을 임차하여 사용하고 있으니 출입을 삼가달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백두대간에 눈이 뒤집혀있는 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조처이다. 단 숨에 월장을 하여 매봉, 소황병산, 노인봉으로 달려 나갔다. 옛 생각이 떠오르는 곳으로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걷고 싶다.      

 

 

백두대간 매봉~소황병산~황병산 전망

목책로 풀 코스를 소개하면  버스로 동해전망대 이동→바람의언덕(550m)→숲속의 여유(930m)→사랑의 기억(650m)→초원의 산책(1,470m)→마음의 휴식(900m)→광장 = 4,5km 약 2시간 걸어 내려온다. 

 

 

자연을 조성하는 靑淵園 표석 (1972년 2월 24일)

 

 

청연 주목원 전경

 

 

人間百懷千歲憂(사람은 하루를 살아가더라도 백 년을 살 계획을 세워야 한다. 靑淵)

 

 

靑淵亭

 

 

청연과 청연폭포

 

 

고사주목①

죽은 나무이다. 직경이 2m, 수령 2,000년 이상 추정, 아시아 최대의 주목으로 삼양목장 개발당시 발견되어 보호하고 있다. 

 

 

주목②

 

 

주목③

 

 

살아 300년 주목 모습

 

 

연리목

 

 

생뚱맞은 동상 제목(?)

 

 

괴석 (거북바위)

 

 

신라 고려 조선 시대 국보, 보물급 석탑 전시

 

 

청연가옥

라면 하면 삼양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다. 하루 세 끼는 해결됐지만 만족하지는 못했다. 잘 사는 친구집에 놀러 가면 라면을 대접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신기하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라면을 삼양식품이 1965년에 출시를 하며 라면의 원조가 된 것이다. 그 주인공이 삼양그룹의 以建  이건(以建) 전중윤(全仲潤 1919, 8, 30~2014, 7 10 향년 94세 별세) 회장이다. 강원도 철원 출신으로 1961년 삼양식품 창업하여 전후 한국 사회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과 기술제휴를 맺고 라면을 생산하며 라면에 쇠고기를 듬뿍 넣자 그래야 하루를 한 끼로 해결하는 사람들의 영양실조를 막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생전을 식품업과 축산업에만 올인했다고 한다. 

 

 

포토 존 

마누라 눈에는 삼양목장은 먼지밖에 안 보인 모양이다. 초지는 새싹이 돋기 전이라 소와 양은 축사생활을 하고 있어 방목지에는 동물 한 마리 눈에 안 띄고 동해는 미세먼지가 앞을 가로막아 바다는 온통 흐릿해 상상 속의 목장과는 거리가 멀었던 모양이다. 청연 주목공원에서 생기를 찾아 이곳저곳 주목 숲을 홀로 거닌다. 일찌감치 목장을 빠져나와 정동진으로 간다.         

 

 

 

 

 

 

2023년 04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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