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소문따라/안동 문화유적

[스크랩] 안동 하회마을, 병산서원 그리고 도산서원

안태수 2012. 2. 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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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화의 중심 안동

 

영하15~6도의 날씨가 몇일째 계속된다.

북쪽의 찬바람 때문에 구름은 다 사라지고 하늘만 맑고 푸르다.

창밖으로 비치는 따사한 햇살은 계절을 착각 한 듯 졸음도 불러오고 어디론가 가고 싶은 충동도 불러 일으

킨다. 년초에 잡아 논1박2일 일정을 치르기 위해 날씨불문, 사정불문 하고 짐을 꾸려 약속 장소로 간다.

회장께서 기사를 동반한 차를 준비하여서 편안한 여행이 시작 되었다.

 

◇ 河回마을

하회마을은 두번째 방문이다.

첫 번째 방문은 무더운 여름이었다. 낙동강 바닥에 조성된 마을은 바람도 없었고 나무 그늘도 변변 찮았다.

각종 매체에서 앞 다투어 소개해 온 홍보 내용들이 뇌리에 꽉차 무엇을 보고 가야 할지 그저 벙벙하기만 했

다. 450여동이나 되는 집들을 다 기웃거릴 수가 없어 큰 기와집만 찾아 다녔드니 대부분의 집들이 대문을 

꼭 걸어 잠가 놓아 높은 담장 넘어로 기와 지붕만 보고 다녔다. 후에 알고보니 지정문화재 이외의 가옥은

사유재산이라 주인의 동의가 없으면 관람 할 수 없다고 한다.

요즈음은 고택과 절을 포함한 문화재와 관련된 건물들이 관계된 사람들의 안일함과 업자들의 획일적인 시

공으로 전국 어디서나 다 비슷하게 지어진다.

이번에는 볼 집을 미리 골라서 집중적으로 보기로 한다.      

 

하회마을 입구 주자장에 차를 세워두고 1km 남짓 거리를 버스로 이동한다.

금년부터 문화유적지를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니 건강하시라는 인사까

지 덧 붙여 준다. 내친김에 버스도 공짜인 줄 알았드니 500원을 받는구나...

 

養進堂(보물 제306호)

조선 명종시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立巖 류중영과 맏아들 류운룡이 살던 종택으로 풍산 柳씨의 종가다. 양

진당이란 당호는  류운룡의 6대손 류영우의 雅號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양진당

 

양진당

立巖古宅 이란 현판은 류중영의 고택이란 뜻이다.

 

忠孝堂(보물 제414호)

조선 중기에 세워진 건물로 西厓 柳成龍의 生家

 

충효당

 

충효당

 

엘리자베스여왕이 기념 식수한 주목 앞에서

 

느티나무

 

莩蓉臺(부용대)

하회마을 서북쪽 강변에 절벽처럼 솟아 있는 해발 65m 되는 산봉우리를 말한다.

부용대에 오르는 방법은 하회마을로 들어와서 만송정 솔밭 강가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 가거나 하회마을

들어 오기전에 풍천면사무소 삼거리에서 부용대 도로 표시판을 쫒아 화천서원으로  해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謙菴精舍

겸암정사는 류성룡의 형 겸암 류운룡이 지은 집으로 부용대 서쪽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어 여름에 녹음이

울창하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玉淵精舍

부용대 동쪽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으며 서애 류성룡이 거쳐 하던 집

 

花川書院

겸암 류운룡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건립한 서원.

 

부용대는 하회마을 들어오기전에 풍천면사무소 삼거리에서 부용대 도로 표시판을 따라가다가  풍천교 건

너 화천서원에 차를 주차하고 야산길 100m 정도 올라가면 된다.

 

부용대

하회마을은 꼭 부용대에 올라와서 봐야 한다.

낙동강이 병산서원쪽에서 흘러오다가 마을을 S자 혹은 태극 모양으로 감싸고 흐른다 하여 河回라 하였는

데 부용대에 오르니 물이 돌아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인다.

 

만송정 솔숲 (천년기념물 제473호)

하회마을 북서쪽 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넓은 모래 퇴적층에 겸암 류운룡이가 조경수로 소나무 만구루를 심

어 소나무 숲을 조성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 여름에는 홍수를 막아주고 겨울에는 북서풍 세찬 바람을 막아

주는 구실을 한다.

 

하회마을

 

謙巖精舍(1)

겸암 류운룡이 세운 정사

 

겸암정사(2)

 

겸암정사(3)

 

겸암정사(4)

 

 

 

◇ 屛山書院

하회마을에서 강 상류 쪽으로 십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이가 풍산 읍내에 있는

풍악서당을 이곳 병산에 옮겨 지은 것이다. 철종 14년에 세째아들 수암 류진이 배향하여 병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 됨

 

屛山書院

 

復禮門

 

萬對樓

 

만대루

만대루는 병산서원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만대루 정면 7칸 기둥 사이로 펼쳐지는 병산과 낙동강의 절경은 7폭 병풍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장관을 연

출한다.

 

立敎堂

입교당은 병산서원에서 가장 핵심적 건물인 강당이다.

 

입교당

 

베롱나무

 

까치구멍집은 헛제사밥 전문이다.

차라리 집에서 제수용 나물 몇가지 볶아서 조선간장에 참기름 타고 깨소금 넣고 비비면  그게 더나을 것 같

다. 간고등어도 집에서 굽는 만도 못하다.

 

처가가 의성 초밭이라 경북 북부 지방을 다닐 경우가 종종 생긴다.

안동을 처음 방문 했을 때도 처가에 들려 서울로 돌아오는길에 안동에가서 그 유명한 안동 칼국수나 먹어

볼 요량으로 무작정 찾아 들어갔다가 끝내 본고장 칼국수 집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대신에 안동 한우갈

비집을 소개 받아 안동역 앞 갈비골목에 있는 "구서울갈비집"으로 갔다. 안동역 앞 거리 한 블럭이 갈비 타

운이다. 입구 부터 갈비 굽는 냄새가 코를 진동한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간판을 헤집고 겨우 찾아 들어가

니  연기속에 사람들이 꽉차 있다. 벽마다 유명인사들의 방문 기념 사진과 사인들로 꽉 채우고 있다. 운 좋

게도 주인 할머니의 서비스를 직접 받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먹어본  갈비가 생각이 났다.

맛이 떠오른다. 밥과 같이 나오는 된장은 찌그런진 양은 냄비에 씨레기와 갈비가 섞여 끓여진 국 같은 된

장이다. 옛날 생각나는  맛이다. 어떤 때는 그 맛이 생각나 일부러 안동까지 가는 일거리를 만든다.

       

 

◇ 聾巖宗宅

    농암 이현보는 조선 연산군, 중종 때 문인이며 학자이다. 연산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으로 있을 때

정치를 논하다 연산군의 노여움을 사 안동으로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 때 다시 등용되어 호조참판까지 지

낸다. 만년에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 예안으로 돌아와 산수와 더불어 독서와 시작으로 여생을 보냈다.  

낙동강변

 

愛日堂과 江閣

 

肯構堂

 

汾江書院

 

明農堂

 

명농당에서 하루밤 숙박

잠자리로 처음엔 퇴계종택으로 구두 예약 했는데 송금이 이루어지지 않아 취소가 되는 바람에 대안으로 농

암종택으로 정하고 안동시내에서 저녁 식사하고 도산로를 따라 청량산 자락에 있는 농암종택에 밤 9시경

도착 했다. 칠흑 같은 밤 수많은 별들이 겨울 찬바람을 타고 종택이 있는 낙동강 강변에 사정 없이 쏟아 진

다. 안내를 받아보니 잠자리가 추운 것은 당연하니 즐기면서 하루밤을 지내보란 뜻이다. 화재 위험 때문에

불은 사용 할 수 없고 전기 장판으로 아랫목만 덮히고 있다. 오래간 만에 겪어 보는 추위다. 화장실에 온수

가 나오지만은 손발 씻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군에 있을 때 생각이 났다. 고양이 세수하고  옷 입은 채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현재기온 영하16도 창호지 한장으로 낙동강 찬바람을 막으며 좋은 생각하며 잠을 청

한다.   

 

 

◇ 陶山書院

    퇴계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선조 7년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으며 선조 임금

은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의 현판을 사액함으로써 영남 유림의 본산이 되었다. 

 

 

 낙동강은 서원 앞을 지나며 강폭을 넓이고 유속도 느리게 한다.

 

 天光雲影臺

서원 경내를 중심으로 양쪽 기슭의 절벽을

동쪽은 天淵臺 솔개는 하늘 높이 나르고 물개는 연못에서 뛰노네 

서쪽을 雲影臺 빛과 그림자 함께 돌고 돈다

자연의 심오한 참뜻을 사색하며 깨우치기 위한 장

 

 

試士壇

조선시대 영남지방의 과거시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물.

 

도산서원 전경

 

왕버들

 

 

進道門

 

典敎堂(보물 제210호)

조선시대의 서원 건축물, 도산서원의 부속 건물로 유생들을 가르치던 강당이다. 선조 7년에 세웠으며 전교

당에 걸린 편액은 한석봉이 쓰고 선조 임금이 하사 한 것이다. 

 

전교당

 

常德祠 및 三門 (보물 제211호)

상덕사는 퇴계 이황 선생의 위폐를 모신 사당으로 선조 7년에 정문 三門과 함께 지은 건물이다.

(사진 옮겨옴)

 

상덕사 정문삼문

 

                                                          2012년 1월25일

 

 

 

 

 

출처 : 경북중고 사칠회
글쓴이 : 안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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