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08 사찰/양주 천보산 회암사지

양주 천보산 회암사

안태수 2018. 6. 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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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암사지 복원을 기다리는 檜巖寺


천보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양주 들판이 오밀조밀한 산들과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구릉지 같은 산이라

사람이 드나들지 않으면 깊은 산처럼 보일 건데 지금은 이 모든 게 도시화되어 아파트가 군상을 지어 산을 누

있다. 자연으로 보면 재해 현상이다. 회암사지는 그 가장자리 천보산 기슭에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얼마 전

해도 잡초에 묻혀 세상과 등지고 살았는데 좋은 시절 만나 그 터전만이라도 세상에 알리게 되었으니 다

다. 만여 평땅 위에 많게는 70여 동의 건물과 3,000여 명의 반승이 기거했다니 감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연대가 미라고 하니 웃을 일이다. 흔히 우리나라를  5,000년 역사를 가졌다고 자랑하지만 다분히 대외

적인 외침이고 내실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천보산 회암사 (天寶山 檜巖寺) 일주문

고려 말과 조선 초에 국가가 지원하는 대찰이었다고 한다. 당시 나라 안에서 최대의 사찰임을 증명하고도 남는

다. 그런 절이 조선 중기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시련을 겪다가 드디어 유생들에 의해 불타 사라고 말았다니 이데

오르기는 예나 지금이나 감당이 안된다. 뿌리를 같이하지 않는다는 절대 명제를 우리는 영원히 지울 수는 없는

걸까?

      

일주문을 뒤돌아보면

고려 충숙왕 15년(1328)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이 창건한 절이다. 동시대 이색의 '천보산 회

암사 수조기'에 지공의 제자 나옹이 절을 크게 지었다고 한다. 조선이 건국하고 무학이 주지로 주재하고 세조가

왕위를 물려주고 말년에 회암사에서 수도하며 지냈다는 얘기와 성종 3년(1472)에 김수온의 '회암사 중창기'가

남아 있는 이 유일한 역사 기록이라고 한다. 나머지 몫은 잡초더미에서 유물과 유구를 가려내어 역사학자들이

짜 맞추고 지어내낼 일만 남았다.     


천보산 가는 길


삼대화상(三大和尙) 지공, 나옹, 무학의 수행지


회암사 숲길


천보산 숲길, 등산로 안내판


회암사 전경


회암사는 고려 충숙왕(1328)때 지공(指空)이 창건하여 조선 순조 때인 1800년대에 폐사된 사찰이다.

고려말 인도인 승려 지공선사가 창건하고 나옹선사가 크게 중창하고 조선초에 무학대사가 지주로 있던 절 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주고 수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조사전, 대웅전, 관음전


대웅전


석가모니 좌우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협시.


회암사 후경


삼성각


삼성각


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 시도유형문화재 제51호)

고려말, 조선초 승려로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공신


무학대사 묘비와 귀부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 탑(楊州 檜巖寺址 無學大師 塔 보물 제388호)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 탑 앞 쌍사자 석등(楊州 檜巖寺址 無學大師 塔 앞 雙獅子 石燈 보물 제 389호)


무학대사 탑(부도)


쌍사자 석등


쌍사자 석등


무학대사 탑과 쌍사자 석등


무학대사 탑과 쌍사자 석등


지공선사부도및석등(指空禪師 浮屠및石燈 시도유형문화재 제49호)


지공선사비와 귀부


지공선사 부도및 석등

회암사를 창건한 인도인 승려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두 작품 모두 고려 공민왕 21년(1372)에 세운 것이다.


나옹선사 부도및석등(儺翁禪師 浮屠및石燈 시도유형문화재 제50호)


나옹선사 부도및 석등


나옹선사 부도및 석등


나옹선사 부도및 석등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楊州 檜巖寺址 禪覺王師碑 보물 제 387호)


선각왕사비(모조품)는 나옹선사의 추모비이다.


귀부(龜趺) 거북이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대.

선각왕사비는 1997년 화재로 파손되어 불교중앙박물관에 눕혀서 보관 중이고 현재 있는 것은 모조품임.


천보산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며칠 있으면 사월 초파일 석가탄신일이다. 종교와 무관하여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편하게 보고 느끼고 마음

에 담는다. 가족 세대별로 연등이나 하나씩 달아 잠시라도 산속 어두움을 밝혀볼까 해서 이미 달아 놓은 연등을

꼼꼼히 살피며 접수처까지 내려갔다. 접수처엔 보살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끝이 없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잠시

옛날 생각 한다. 오대산 적멸보궁에서는 보시만 하고 등은 알아서 달아달라고 맡기고, 일 년에 한 번 개방하는

문경 가은 봉암사에서는 공짜로 달았다. 시주를 받은 셈이다. 이런저런 생각 다가 발걸음은 절을 벗어나고 있었다. 







                                                       2018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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