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08 사찰/양주 천보산 회암사지

양주 천보산 회암사지

안태수 2018. 5. 2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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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榮華는 다 어찌하고 주춧돌만 남았느냐


불곡산 산행을 끝내고 백석읍 무태안 대교아파트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양주역에 도착하여 대합실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아가 회암사지 가는 교통편을 알아봤다. 역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90번 버스가 간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오늘 중으로 답사를 마쳐야 하는 생각에 미치자 급해져 택시를 탔다. 불곡산 산행을 하면

서 산행 내내 천보산 자락에 길게 잔디가 깔려 있는 절터를 보면서 양주역 방향과 어느 정도의 거리인짐작을

해 두었다. 친한 기사의 도움으로로 옥정지구 신도시 소개와 회암사지 발굴 설명을 들으며 박물관 입구에 잘

도착했다. 택시비는 15,000원이 왔다.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현대식으로 지은 새 건물에 오래된 유물 전시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발길이 가지 않는다. 내려오는 길에

시간 남으면 들리기로 하고 패스한다. 


회암사지 복원도

사찰부지가 10,000 여평에 이르고 법당을 비롯하여 정전, 승방, 노전, 요사가 36개소, 승려 250 여명, 절 도우

미 1,000 여명이 기거하는 당대 최대 규모의 사찰이다.


회암사지 전경

양주시는 회암사지 부지 10,000 여평을 포함해 전체 부지가 약 100,000 여평을 확보하여 유적지 정비와 공원

사업을 끝내고 시민의 휴식공간과 관광산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관광안내소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잔디밭을 지나 가나 아니면 보도를 따라 가나 옛날에는 잔디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잔디밭에 못 들어가게 했

다. 요즘은 말리는 곳이 없다. 우리는 아직도 잔디를 보호해야 한다는 관습이 남아 피해 다닌다.    


화엄사지 전경 파노라마 사진

여기가 어디인가? 허허벌판에 돌만 나뒹구는 공터를 바라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것도 엊그저께까지

에 묻혀있었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형체가 제대로 남아 있는 거라곤 당간지주와 괘불대. 부도탑이 고작

다. 말로만 듣던 회암사지 우리나라에 그만큼 큰 절이 어디에 있말인가? 건물이라도 남았으면 몰라도 멘땅에

가 집터이고 마당인지 헷갈려 어떻게 구경해야 할 지도 막막하다. 입구에서 머릿속으로 절을 복원해 본다.

도(중앙도)를 따라가면서 門을 기준으로 층을 나누고 좌우 늘어선 건물터를 확인하면서 단계로 올라간다. 일

문, 사천왕문(사문), 금강문(중문), 불이문(정문), 법당(보광정), 노전, 정전 구역으로 8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회암사는 고려말 조선초 나라의 지원을 받는 왕실 사찰로 별궁 같이 왕의 정무와 거처가 최상단에 마련해 두었다.



당간지주

돌기둥으로 사찰의 깃대을 거는 지주, 깃대를 걸어 집회을 알리고 사찰의 종파를 나타낸다.


당간지주


괘불대

법당 밖에서 큰 법회를 열때 사찰에 있는 대형 탱화를 거는 돌기둥을 괘불대라 한다. 탱화는 대형천에 그린 불화

를 말한다. 두개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는 도망 간 모양이다. 


배수시설


일주문 (1단 권역) 화강암 장대석으로 쌓은 계단  


御道(어도 參道 참도)


회랑(回廊) 건물의 일정 부분을 덮고 있는 복도  


사문(寺門 2단 권역) 2,3,4단 권역은 생활영역으로 조성되어 있다.


석축을 쌓은 화장실


석조(石槽)

큰 돌을 파서 만든 물을 담아 쓰는 돌그릇.  


종각터


석물


맷돌


석조


중문 (3단 권역)


우물


정문 (4단 권역)


보광전(寶光殿 5단 권역)을 중심으로 5,6,7단 권역은 종교영역을 구성하여 좌우로 서승당, 지장료, 천랑, 중료

를 배치하다. 


설법전(6단 권역) 좌우로 수좌료, 조사전, 영당 ,향하료, 서기료


사리전(7단 권역) 좌우로 시자료, 입실료


정청(8단 권역)은 정치영역으로 왕의 정전을 좌우로 대장전, 서방장, 동방장, 나한전이 있고 언덕 위 부도탑이

있다.


부도탑


회암사지 전망대


회암사지 후경


회암사지 파노라마 사진

답사 동선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문을 기준으로 단계별로 모서리를 기준으로 좌에서 우로 한 바퀴

아 다시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순서를 밟았다. 건물이라도 있었으면 구분이 쉬웠을 건데 바닥에 놓인 기단

따라 이동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건물터를 넘나들게 되는 우도 범했다. 답사를 마치고 회암사지 전망대 정자

앉아 한참 쉬었다 왔다. 이렇게 큰 절이 그것도 王寺가 유생에 의해 불 질러져 폐사가 되고 창건 연대가 미상

라고 하니 역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답답하다. 그나마 김시습의 유수기와 1565년 (명종 20)에 크게 중창을

한 기록이 있다니 다행이었다.            







                                                       2018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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