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경주권역의 신라 문화재를 답사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불국사, 석굴암, 토함산, 문무대왕릉, 감은사, 보문단지, 양동마을, 최씨고택, 남산 일원 등을 돌아보려면
4~5일은 필요할 것 같다.
먼 길 와서 경주 山만 보고 돌아가려니 서운한 생각이 든다. 경주로 오는 버스에서 시티투어 예악을 한다.
시티투어는 가이드와 함께 하며 4개 권역으로 나누어 실시하고 있는데 그 중 세계문화유산 코스를 선택한다.
모집인원이 5명 이하가 되면 취소된다고 한다.
경주역을 중심으로 몇 차례 버스로 이동하면서 古都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을 보기란 쉽지 않다. 군데군데
고분군만이 고적지임을 알리느라 고군분투하는 인상이다.
(9:30) 분황사 정문
오전11시부터 저녁 6시까지 투어 시간이다.
모처럼 아침 시간이 여유가 있어 평소 집에서 처럼 늦장을 부린다.
9시에 모텔을 나와 투어 일정에 빠져 있는 분황사, 황룡사지 두 곳을 선택하여 출발 전 틈새 답사를 한다.
약속 시간이 정해진 경우 남은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이동할 때는 택시를 이용한다.
분황사(芬皇寺)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분황사는 신라 634년(선덕여왕 3년)때 지은 절.
분황사 모전석탑 (芬皇寺 模塼石塔 국보 제30호)
기단 위 네 모서리 石 사자상
쌍여닫이 돌문과 불법을 지키는 神將 '仁王像'
분황사 모전석탑 (芬皇寺 模塼石塔 국보 제30호)
현존하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탑이며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탑을 모전석탑(模塼
石塔)이라 한다. 원래는 7층 내지 9층 탑으로 추정되나 몽고의 침략과 임진왜란 등으로 모두 유실되고 3층
만 남았다. 현재의 모습은 일제가 허물어진 탑을 해체 수리한 모습을 복원한 상태.
분황사 보광전(普光殿)은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
대원심 보살 사리탑
불도에 지극 정성 정진하다가 치아에서 부처님 모양의 백옥 사리가 나온 보살을 기리기 위해 사리탑에 봉
안하여 분황사에 모심.
분황사 마당 한 곳에 석탑 잔해와 벌판에 나뒹구는 석물을 모아 두었다.
삼룡변어정(三龍變漁井)
우물 안에 세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는데 당나라의 사신이 이 우물 속에 사는 용을 세 마리의 물고기로 변
하게 하여 가지고 가는 것을 되찾았다는 전설이 있는 우물.
구황동 당간지주(분황사)
황룡사지(皇龍寺址)
황룡사지 발굴 조감도
분황사와 담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 황룡사지는 그 넓이가 하도 넓어서 절터 인지 믿기지 않는다.
황룡사 부지는 25,000평, 축구장(120m×90m÷3.3=3,272평)의 약 7.6배 크기. 당시 절 규모만 보아도 신
라가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 짐작이 간다.
현재 황룡사는 복원사업을 위한 사전 단계로 '황룡사연구센터'가 설립되어 센터가 2015년 준공 예정이다.
서울시민 코앞에서 일어난 잘못된 숭례문 복원사업을 거울삼아 시간을 정하지 말고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
하기 바란다. 내 나이 완성된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복원하는 과정이라도 보고 싶다.
발굴시 매립지로 확인
금당지(金堂址)
목탑지(木塔址)
가람은 남북으로 일탑식으로 목탑지 금당지 순으로 배치
황룡사 9층 목탑은 진흥왕 14년(553) 왕궁을 짓다가 9마리 황룡이 나타났다는 말에 왕궁을 황룡사로 고
쳐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선덕여왕 14년(645년)에 백제인 기술자 '아비지'를 초빙하여 9층 목탑을 세우고
93년에 걸친 사찰 공사를 마무리함. 그 후 고려 때 몽고의 침입을 받아 불타버렸다고 한다.
황룡사탑 건립 '아비지' 기념비
(11:50) 포석정지(鮑石亭址)
투어 버스는 몇 군데 승차장을 정하여 손님을 태우고 내리게 한다. 나는 터미널 천마관광 앞에서 탄다.
버스는 마지막 손님을 태우기 위해 10분 거리인 신경주역(ktx)까지 간다.
신경주역은 경주, 울산, 포항, 영천까지 수용하는 광역 ktx 역이다. 지역마다 환승버스가 ktx 시간표에 맞혀
운행하고 있으니 ktx의 위력을 실감한다.
9명(싱가포르 4명, 처녀 총각 각 1명, 광명시 부부, 나)의 손님을 태우고 일정을 시작하여 첫 답사지인 포
석정에 도착한다.
신라 왕실의 별궁으로 임금들이 연회를 배풀던 곳인데 정자 등 건물은 없어지고 수구(水溝)만 온전이 남아있다.
경애왕(4년 927)은 이곳에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최후를 마쳤다고 함.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은 수로를 굴곡지게 만들어 물을 흐르게 하여 술잔을 띄우고 잔이 자기 앞에 올 때
시를 읊은 후 다시 다음 사람에게 잔을 띄워 보내는 옛 선인들의 풍류놀이.
포석정
(12:15) 동궁과 월지(안압지 雁鴨池)
신라 문무왕 14년(674) 동궁 안에 인공 못을 파고 생태계(섬, 구릉, 나무, 화초, 짐승 등)를 조성하여 후원
으로 사용하면서 나라 안 경사 때나 외국 귀빈을 모실 때 연회장으로 사용. 동궁은 태자가 거쳐 하던 곳이다.
신라가 망한 후 고려, 조선 시대에 폐허로 방치되다가 근대에 들어와 일부 복원됐다.
안압지는 조선시대 때 붙인 이름으로 기러기(雁), 오리(鴨)가 많이 찾아들었다고 한다.
전각 명칭(현판)이 없음
월지(月池)
월지는 야간 개장을 위한 조명시설로 수면에 비친 건물들이 환상적인 야경을 연출한다.
동궁 복원 예정지
천마고속관광 투어버스
가이드에게 옛날에는 최씨가 경주 제일 부자였다면 지금은 하고 물어보니 단숨에 천마관광 사장이라고 한다,
(13:00) 대릉원(大陵苑)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황남대총, 천마총, 23여기의 능이 모여 있는 고분군.
황남대총(黃南大塚)
황남대총(黃南大塚)은 무덤 2기가 남북으로 연결된 형태로 南墳은 남자의 묘, 北墳은 여자의 묘로 부부 합장 묘.
무덤 크기는 남북으로 120m, 동서로 82m. 높이 23m로 대릉원에서 제일 큰 고분임.
천마총(天馬塚)
금관, 금제허리띠, 천마도 등 출토물 재현, 천마도는 자작나무로 만든 말다래에 그린 말 그림.
'말다래는 말을 탄 사람에게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양쪽에 다는 장식'
우측 나무에 가려져 있는 무덤이 미추왕릉?.
경주시내에서 각종 공사를 하다가 발굴된 석물들을 한 곳에 모아고 있는 현장.
법장사(法藏寺)
대릉원 정문과 마주보고 있는 절은 도심 도로변에 위치하면서 주민과 공간을 같이 하는 모습이 신라 천년
불교의 성시(盛時)를 반추케 한다.
2014년 2월 3일
'길따라 소문따라 > 경주 불국사 등 유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 토함산 불국사 (0) | 2022.01.22 |
---|---|
경주 세계문화유산 (불국사~석굴암) 답사 (0) | 2014.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