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소문따라/경주 불국사 등 유적

경주 토함산 불국사

안태수 2022. 1. 2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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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와 보물로 전해온 신라 최고의 사찰

 

토함산 불국사 하산 끝이 불국사 담장이 끝나는 지점이다. 현재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시장끼가 끓어오르지만 어

디서 해결할 만한 곳이 없다. 점심은 답사 후로 미루고 눈에 익은 광장, 일주문을 지나 탐방로를 따라 경내로 들어간다.

경주 불국사 하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을 거다. 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지로 또 국내 최고의 관광지로 누

구나 한 번쯤은 다녀갔을 것이다. 천년 고찰답게 각종 수목과 꽃나무들이 연못을 중심으로 잘 자라고 있다.

       

 

佛國寺 일주문

기둥이 한 줄로 서 있어 일주문이라고 한다. 부처님 세계로 들어서는 산문 중 첫 관문으로 이 문을 기준으로 육계와 선

계로 나누어진다. 여기서부터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잡상을 내려놓고 들어서야 한다

     

 

觀音松

 

 

모과나무

 

 

반야연지와 해탈교

 

 

전나무

 

 

天王門

사천왕은 천상계 수미산 초미 사천왕천에 사는 천신으로 제석천왕의 지시를 받아 동서남북 지역을 관장하는 불법을 수

호하는 사천왕을 모셔 놓은 전각이다. 사찰의 산문 중 하나이다. 

 

 

다문천왕(北 비파, 흑색), 지국천왕(東 검, 청색)

 

 

증장천왕(南 용, 여의주, 적색) 광목천왕(西 삼지창, 보탑, 백색)

 

 

백송

 

 

불국사 안내소

 

 

기념품 가게

 

 

해우소 유구

遺構는 인간의 활동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파괴되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 없는 잔존물을 말한다. 

 

 

당간지주(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46호)

 

 

梵鐘閣

법구 사물 중 법종이다. 천상과 지옥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불국사 전경

佛國寺古今創記에는 582년 신라 법흥왕 때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寺跡은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

으로 되어 있으며 삼국유사에는 경덕왕 때 재상이던 김대성이 경덕왕 10년(751)에 불국사를 세우기 시작하여 혜공

왕 9년(774) 대성이 죽자 나라에서 공사를 마쳤다고 하며 김대성이가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사(석굴암)를 세웠다고 한다. 

 

 

불국사 전경(2021년)

佛國寺는 통일신라 8세기 중엽 이후 임진왜란 전까지 아홉 차례의 중창 및 중수를 거쳤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창

건 당시 사찰 앞 석축, 연화·칠보교, 청운·백운교, 석탑 2기, 석등, 사리탑, 당간지주, 석조, 각 건물의 기단과 초석 등

석조물만 남았는 것을 1604년(선조 37)부터 1805년(순조 5)까지 40여 차례 중수를 끝으로 기록이 없다. 1924년

일제 때 대규모 개수공사와 1970년 전면적인 불국사 복원공사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가구식 석축(架構式 石築 보물 제1745호)

불국사는 산지 사찰로 북고남저(北高南低)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으로 지형에 따라 석축을 쌓아 건축 공간을 구성

했다. 불국사 석축은 조선 후기를 지나면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크게 훼손된 것을 일제가 1924년에 불국사 개수

공사를 실시하여 더 이상의 훼손을 막았으며 1970년 정부에 의해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불국사의 수난(1914년)

구한말 國運이 쇠퇴하면서 거찰의 寺運도 퇴락하며 승려 2~3명이 기거하는 폐찰로 방치되었다.

 

 

▶불국사 전경(1924년)

일제 때 보수 공사 후 불국사 모습 

 

 

연화교 칠보교(蓮花橋 七寶橋 국보 제22호)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경주 불국사 극락전으로 통하는 안양문을 오르는 다리로 전체 18계단 중 하단 10단이

연화교, 상단 8단이 칠보교이다.

 

 

安養門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전으로 통하는 문으로 연화교, 칠보교를 올라 들어간다. 

 

 

汎影樓

당초는 범종각이었으나 樓閣 모양을 하여 범영루라 부른다. 현재 법고가 매달려 있다.

 

 

 法鼓 는 四物의 하나로 법을 전하는 북으로 네 발 달린 짐승을 비롯해 육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紫霞門

석가보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으로 통하는 문으로 백운교 청운교를 올라 들어간다.

 

 

청운교 백운교(靑雲橋 白雲橋 국보 제23호)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경주 불국사 대웅전 자하문을 오르는 다리로 전체 34계단 중 상단 16단이 청운교, 하

단 18단이 백운교이다. 

 

 

좌경루(左經樓)

經을 수장하는 누각으로 현재는 四物 중 목어 운판이 걸려 있다. 

 

 

四物 (목어, 운판) 木魚는 수중 중생을 雲板은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불국사 전경

 

 

다보탑(多寶塔 국보 제20호)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8세기 때 조성한 경주 불국사 불교 석탑 

 

 

다보탑②

 

 

다보탑③

 

 

석가탑(釋迦塔 국보 제21호)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8세기 때 경주 불국사에 조성한 불교 삼층석탑

 

 

석가탑②

 

 

석가탑③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744호)

석가보니부처를 모신 전각으로 左로 미륵보살(미래불)과 가섭, 右로 갈라보살(과거불)과 아난을 협시불로 모셨다. 임진

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영조 41년(1765)에 창건 당시 것으로 남아 있는 기단과 석조물 위에 건물을 세우고 단청한 기

록으로 보존되어 있다.  

 

 

영산회상도, 사천왕벽화(靈山會上圖, 四天王 壁畵 보물 제1797호)

조선시대 1769년에 영조의 딸(화완옹주) 등이 시주하여 제작한 불화(영산회상도)1폭과 벽화(사천왕) 2점이다.

가섭, 제화갈리보살(과거), 석가모니(현재), 미륵보살(미래), 아난이 모셔져 있다.

 

 

無說殿

스님이 대중을 상대로 경(經)이나 계율을 강설하는 법당으로 講院 혹은 강당이다.

 

 

비로전 중문

 

 

비로전

 

 

毘盧殿 현판

 

 

금동비로자나불조상(金銅毘盧遮那佛坐像 국보 제26호)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8년(750)에 조성된 금속조 불상으로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에 들어간다. 

 

 

사리탑(舍利塔 보물 제61호)

고려 시대 전기 불교 탑이다. 부처님의 사리탑인지 승려의 광학부도인지 확실치 않으나 1905년 일본 우에노 공원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1933년 불국사로 반환되었다.  

 

 

극락전 전경

 

 

極樂殿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법당이다. 이 법당에 모셔져 있는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국보 제27호이다.

 

 

금동아미타여래좌상(金銅阿彌陀如來坐償 국보 제27호)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0년(751)에 조성된 금속조 불상으로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에 들어간다. 

 

 

관음전 중문

 

 

觀音殿

조선 초기(1400년)건축 양식으로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이다.

 

 

십일면관음보살상

 

 

관음전 모과나무

 

 

나한전

 

 

羅漢殿 현판

 

 

나한전은 부처님의 16 제자상을 모신 전각으로 16나한전 또는 16응진전이라고도 한다.

 

 

불국사 회랑

廻廊은 임금이 사는 궁궐에만 있는 것인데 신라시대에는 왕이 곧 부처라 하여 절에도 궁궐처럼 전각에 회랑을 둘렀다. 

 

 

불국사 전각 배치도

전각들을 오밀조밀 아기자기하게 배치하여 내원이 협소한 듯 하지만 전각마다 회랑을 둘러 불보살님들의 독립된 영역

을 확보해 줌으로 무한한 크기로 느껴졌다. 강원 구역은 먼발치로 보고 박물관은 코로나 감시망(미접종자)을 뚫기 힘들

어 포기하고 나왔다. 대략 1시간가량 소요한 관람이었다. 천년고찰답게 국보와 보물급의 건축물과 석조물이 즐비하며

이들을 보호하고 가꾸기 위한 노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3대 아름다운 절집에 그냥 뽑히는 게 아니라

는 생각이 들었다.   

 

 

 

 

 

 

 

 

2021년 1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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