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구미 금오산
인동면 진평동 308번지가 원적이니깐 고향이 되는 셈이다. 인동 진평동 뒷산에 증조부 산소가 있다. 추석
에 대구 큰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선산이 있는 천평을 거쳐 인동면 진평동 증조부 산소까지 다녀오는 일이
연례행사가 된 지 오래다. 차를 가지고 다니던 때에는 구미대교 구미공단 고속도로 해서 서울로 돌아오곤
한다. 고속도로 좌측으로 금오산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줄기가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하면서 구미 방향으로
낮춘다. 구미에 큰 인물이 많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옛낱부터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구미선산에 있다고 했다.
금오산 도립공원 안내도 앞에서 차를 세운다. 공원으로 들어오면서 둘레가 4km 나 되는 저수지에 물이 꽉
찬 모습, 어린이 놀이동산, 넓은 주차공간, 식당가, 잔디공원, 야영장, 광장 등을 보면서 등산하러 온 게 아
니라 놀러 온 기분이 난다. 차도와 산책로가 나란히 가는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금오산을 유명하게 만
드는 것들이 많다.
채미정(採薇亭)
고려말기 조선초기 성리학자 야은(冶隱) 길재(吉再)가 나라가 망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금오산에 은거하면
서 후학을 가르치고 득도도 하였다.
고려말의 충신 길재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조선 영조때 세운 정자.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메타세콰이어 길과 솔밭 길 중 마음에 드는 길을 선택해서 안으로 들어간다.
자연보호운동발상지비가 나오고
탐방안내소에서 등산지도를 챙기는 일을 잊지 말자.
케이불카 탑승장
키이불카는 해운사 사천문 앞까지 805m 거리를 15분에 운행한다. 금오산 주요 경승지 해운사, 도선굴, 대
혜폭포가 한 곳에 몰려 있어 여기까지 왔다 가는 사람이 많다.
금오산성 사적비
고종 때 대원군의 지시로 세운 '금오산성 중수 송공비(金烏山城重修訟功碑)'
케이불카 광장에서 케이불카를 이용할 사람과 등산할 사람이 나누어 진다. 차도 여기까지는 올 수 있다.
등로가 넓은 것은 등산 인구가 많음을 의미하며 잘 꾸며 놓은 것은 공원관리사무소에서 신경을 쓰고 있다
는 얘기다.
21세기를 맞이하여 돌탑 21기를 조성했다는 광고문
우리나라 산 도처에서 돌탑 쌓기와 허물기가 반복되는 상황을 구미시에서는 알고 있는가?
돌탑 쌓느라고 고생 많이 했지만 혹시 혈세가 들어간 것은 아닌지
바위를 깍아 만든 길
금오동학(金烏洞壑)이라고 바위에 새겨진 글씨
조선 중종때 孤山(고산) 黃耆老(황기로)가 쓰다. 각 글자의 크기는 가로, 세로 약 1m 정도.
금오산의 깊고 그윽한 절경이란 뜻
대혜문(금오산성문)
금오산성은 산 정상부(외성)와 계곡(내성)에 이중으로 축조한 산성이다
고려 시대부터 성터가 있던 곳으로 조선 초에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여러 차례 고쳐 쌓은 성.
규모는 외성이 약 3,700m, 내성이 약 2,700m
영흥정
지하 168m 암반층에서 솟아나는 물
나옹선사 시비가 해운사 담벼락에 서 있다.
海雲寺 전경
해운사는 근대에 창건된 절
도선굴 200m
해운사 뒤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암벽 한가운데 움푹 페인 구멍 바위굴, 절벽을 따라 바위를 오르면 쇠말
뚝을 박고 쇠사슬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한사람이 겨우 지나 다닐 수 있도록 바위를 쪼아 길을 만들었
다. 천길 낭떨어지를 내려다 보며 비나 눈이 오고 바람이 심하게 불면 어떻게 다녔을까 지금 생각해도 걱
정이다.
도선굴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참선하여 도를 깨우치고, 고려말 조선초 야은 길재가 득도 한 곳.
대혜폭포
대혜골 중간 해발 400여m 지점에 있는 높이가 28m 되는 물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
폭포 주변으로 공간이 넓어서 많은 사람이 함께 구경할 수 있다.
대혜폭포에서 할딱고개까지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할딱고개
금오산 등산 코스 중 가장 숨이 차는 구간, 할딱고개에 올라서서 잠시 숨을 고르며 주변 경관을 감상한다.
도선굴 조망
금오저수지, 구미시 조망
정상 조망 (사람의 누운 얼굴 모습과 닮았나?)
마애석불 갈림길 이정표는 마애석불 다음 지명에 대한 표시가 없다. 마애석불을 본 후 정상을 가기 위해 이
곳까지 되돌아온다면 마애석불을 보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겠다. 실제로는 여기가 순환 지점이고 어
떤 쪽으로도 정상을 가는데 정상 쪽을 먼저 가는 게 힘이 덜 든다.
할딱고개에서 숨을 고른 후 한 번 더 가파른 경사면에 올라서면 철탑이 서 있는 능선을 만난다. 금오산을
고위평탄 지형이라 한다. 해발 800m 지점에서 정상까지는 평지를 이루고 있다는 얘기다. 城(금오산성) 안
마을도 그래서 이곳에 생긴 것이다. 여기서 900m 가면 정상이다.
금오산성
정상 헬기장은 운동장처럼 넓고 각종 공사용 장비들이 쌓여 있다. 약사암 불사도 이곳 때문에 가능했지 않
나 생각된다.
정상에는 통신용 시설물들이 즐비하다.
칼다봉 조망
정상 직전 50m
금오산 현월봉(976m)
1970.5.18 국내 최초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금오산은 기암괴석과 절벽, 계곡, 폭포, 수림으로 절경을 이
루고 있다.
약사암 일주문
약사봉 바로 아래 약사암은 천길 낭떨어지에 메달아 놓은 듯 하다.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금오산 동쪽 바위 밑에 암자를 지었으니 곧 약사암이다.
약사암에는 약사여래(藥師如來)가 주존불로 계신다.
약사암 범종각은 약사봉에서 떨어져 나가 앉은 바위에 앉히면서 출렁다리로 길을 만들었다.
약사암 이정표에는 법성사가 2.4km 거리
법성사 2.4km 갈림길
석간수
토속 신앙을 숭배하는 곳
마애보살입상 (보물 제490호)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높이 5.5m 마애보살입상은 솟아오른 듯한 화강암 바위 모서리 부분
에 불상을 조각한 특이한 구도로 광배(光背)와 좌대(座臺)를 갖추고 있으며 머리에는 삼면보관(三面寶冠)
을 쓰고 있다
너덜바위 지대
등산로가 심하게 훼손된 현장
하산 길에 대혜폭포를 다시 보다.
금오산 케이불카
애초에는 정상에서 약사암 지나 마애석불을 보고 다시 약사암으로 돌아와 법성사로 하산할 예정이었으나
대혜골 코스가 훨씬 볼거리가 다양해 계획을 변경하면서 천천히 한 번 더 보기로 한다.
좋은 그림이 많아서 산행기와 합쳐 게재 하려니 지면이 부족해 금오저수지, 광장, 대혜문, 해운사, 도선굴,
대혜폭포, 약사암, 마애보살입상을 따로 묶어 게재할 작정이다.
얼마나 훌륭한 경승지인가 확인하는 방법은 사진 소재가 얼마나 풍부한지가 결정한다.
일기예보대로 오후 3시부터 국지성 소나기가 내린다.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구미역으로 이동하여 1시간여 동안 역 중심으로 중앙시장까지 한 바퀴 돈다.
시장 안 좌판대에서 파는 떡볶이집의 막대기오뎅, 양념장에 찍어 먹던 맛이 그리워 기웃거려보는데 좀처
럼 자리가 나질 않는다.
2013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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