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08 사찰/해남 달마산 미황사

해남 달마산 미황사

안태수 2021. 8. 1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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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땅끝 마을의 아름다운 절집

 

3박 4일 남도 산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다. 이틀은 비와 안개가 시야를 망쳤고 나머지 두 날은 화창했다. '하루 해를 가다 보면 중도 보고 소도 본다'는 속담이 있듯이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생겨나니 잘 대처하라는 선각자의 가르침이다. 오전에 완도 상왕산 등산을 마치고 완도읍으로 돌아와 목욕하고 냉면으로 점심 먹고 길가 편의점에서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완도 도심 풍경을 즐겼다. 산자락과 바다와 맞닿은 여분의 평지에 길을 내고 포구를 조성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세월이 흘러 나라가 발전하고 살림이 풍부해지는 바람에 새로운 문화 창조에 열을 올려 세상을 몰라보도록 바꾸어 놓았다. '헬조선' 이라고 부르짖던 사람들을 무색게 한다.         

 

 

달마산에서 내려다본 미황사(2018,04,01)

완도에서 현산면 북평리 땅끝기맥 달마산 코스 들머리가 있는 큰딱골재(닭골재, 달골재) 13번 국도 고갯마루를 면서 3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달마산에 올라 내려다보던 미황사 전경이다. 오늘은 그때 미황사를 찾아간다. 월송리 지나 송지면 서정리 미황까지 28.7km 30분이 걸렸다. 

 

 

미황사 입구 달마산 달마고도 등산로 안내도이다. '개 눈에 똥 밖에 안 보인다'고 내 눈에는 이런 것들이 먼저 들어온다. 달마고도, 남파랑길, 달마산 등산로, 나라안에 벌서 걷기 길이 1,500개소, 이름 있는 산봉우리가 5,800개나 된다고 한다. 앞으로 이런 숫자는 개소 늘어날 전망이다. 

 

 

달마산미황사(達摩山美黃寺) 일주문

널러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코로나 검진 기록부에 서명하고 일주문을 들어섰다. 기둥이 보조기둥까지 4개다. 2개의 기동보다 일주문 맛이 떨어진다. 일단 마음속 여러 가지 상념을 내려놓고 합장 반배의 예를 올린다.

  

 

탐방로가 단정했다. 좌, 우 낙엽활엽수와 바닥은 판석으로 계단을 평석으로 바닥을 깔았다. 초파일 연등은 일 년 내 매달아 두는 모양이다.

 

 

탐방로

 

 

天王門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 사천왕천에 사는 천신이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복을 하여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거듭난 호법신장이다.

 

 

사천문 안 중앙에 윤장대가 있다. 윤장대는 불경을 넣어 두는 상자 모양으로 회전하게 되어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이 윤장대를 잡고 한 바퀴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과 같다고 하였다. 네팔 티베트 불교 지역을 지나다 보면 마니차와 윤장대가 곳곳에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천왕(증장천왕(南) 지국천왕(東) 다문천왕(北) 광목천왕(西)

사천왕 하면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눈이 부리부리, 손에 창과 검을 들고 악귀를 밟고 아래로 내려다보는 험상궂은 상을 연상하게 되는데 미항사 사천왕은 그런 전통을 뛰어넘어 2020년 4월 28일 온화한 미소년과 노년 남성상을 불신으로 조성하였다. 왜 그랬을까? 난 모릅니다. 다만 달라지는 악마의 모습에 대처하는 모양새 같다.

 

 

천왕문 후문 편액 輪藏(윤장)

 

 

천왕문

 

 

자하루(紫霞樓)

 

 

수국(右)

 

 

수국(左)

 

 

달마대사(達摩大師)

남인도인으로 528년 중국 광저우로 건너가 양나라 무제에게 선한 행위를 쌓는다고 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설파하여 양 무제를 당항케 한 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이다. 

 

 

 

달마산 자하루

 

 

자하루 뒤 편액 만세루(萬歲樓)

 

 

범종각

 

 

미황사

신라 시대 경덕왕 8년(749) 달마산 아래 사자 포구에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닿았다. 소식을 들은 의조화상이 달려가 맞이했는데 금 옷을 입은 사람이 노를 잡고 배 안에는 경전과 불상이 가득했으며 검은 소 한 마리가 돌을 가르며 나타났다. 인도 우전국  왕이 경상(經像)을 모실 곳을 찾아다니다가 달마산에 이르러 이곳에 머물기로 정하고 소가 눕는 곳에 미황사를 짓고 경을 안치했다. 여기서 '美'는 소의 울음소리 '黃'은 사람의 色에서 취했다고 한다. 미황사는 달마산 기슭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 육지 가장 남쪽에 위치한 절이다.

 

 

달마산 대웅보전

미황사는 신라 시대 경덕왕 8년(749에 의조화상이 창건하고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조선 선조 31년(1598)에 중창하고 영조 30년(1754)에 개창하였다.

 

 

 

大雄寶殿 (보물 제947호)

 

 

대웅보전 삼존불 아미타불(右) 석가모니불(中) 약사여래불(左)

 

 

冥府殿

지상보살은 명부에서 중생이 죽어 다음 생애 어디로 갈 것인지를 관장하며 시왕(十王)이 이를 심판한다. 생전에 업을 잘 쌓아야 죽어 좋은 데 간다.

 

 

명부전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상

 

 

응진전 전경

부처님 제자 가운데 나한를 모신 전각이다. 아라한(나한)은 더 배울 것이 없어 생사의 과보를 받지 않고 일체의 번뇌를 다 끊고 깨달음을 얻어 진리와 상응하여 공양을 받을 자격이 되기 때문에 응진이라고 한다. 

 

 

應眞殿(보물 제1183호)

 

 

석가모니불과 나한

 

 

16나한

 

 

三聖閣

 

 

칠성 .독성, 산신을 함께 모신 전각

칠성여래는 자손에게 만덕, 재난, 업장, 소원, 장애, 복, 수명을 관장하고 독성은 나반존자로 부처님의 제자이며 말세 중생을 구제하고 산신은 토속신으로 우리의 산야를 수호하는 신이다. 

 

  

대웅전(北)

 

 

대웅전(南)

 

 

미황사 전경

전국 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웬만한 산에 절 하나쯤은 다 있고 도시와 가까운 산은 골짜기마다 경쟁적을 절집이 있다. 서울 북한산과 관악산은 산행 중 받치는 게 절이다. 관악산 둘레를 한 바퀴 돌며 절집을 헤아려 본 적이 있다. 30 개소에 가까웠다. 이 정도면 절은 생업의 수단으로 그 본연의 가치는 형편없이 추락한다. 미황사는 여러 차례 답사를 계획했다가 비켜가곤 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단숨에 완도에서 달려왔다. 해남 대흥사 말사이고 그 유명한 도솔암이란 바위 속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으며 달마산 일만 불을 병충처럼 머리에 이고 있다. 다만 석축이 주변 환경에 미치지 못해 마음에 걸렸다. 

 

      

 

 

 

 

 

 

2021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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