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소문따라/파주 이이 유적지

파주 율곡 이이 선생 유적지 답사

안태수 2021. 6. 2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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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가족과 함께 답사

 

코로나 사태가 언제 종식될는지 그 끝이 안 보인다.

세계적인 영향이니깐 어느 한 나라 억울할 것 도 없지만 나라 안은 그렇지 않다.

카카오처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업체는 승승장구하고 사람을 일일이 대면하는 오프라인 업체는 죽을 맛일 거다. 우리처럼 경제활동이 끝난 은퇴자들은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않고 방역수칙 지키며 남에게 폐가 가지 않도록 주의하면 된다. 그래도 5월은 어린이날을 비롯하여 어버이날, 손자 생일 등 가족들과 만나야 하는 소중한 행사가 많은 가정의 달이다. 가족관계 증명원을 발급받아 지참하고 다녀야 한다. 아들 둘 한 명씩 장가가며 집안의 행사를 아들에게 다 넘겼다. 편한 백성이 되었다. 둘째 아들과는 파주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만났다. 간단한 점심과 선물 교환 후 파주 유적지 한 곳을 돌아봤다. 

       

 

 

파주 이이 유적지 주차장 (파주시 법원읍 자운서원로 204)

신세계 아울렛에서 북동쪽으로 약 30km, 40 여분 달려 도착했다. 넓은 주차장에 파란 하늘과 자운산 짙푸른 녹음이 잘 정돈 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이 유적지 정문

매표소 겸 안내소가 문을 들어서서 있다. 사람 수도 확인 않고 내가 부르는 데로 표를 끊어 준다.  귀찮은 건지, 믿는 건지. 

 

 

이율곡 이이 선생상과 신사임당상

정문을 들어서면 우측 잔디 마당에 두 분의 동상이 서 있다. 동상은 1969년, 1970년에 서울시에서 사직공원 내에 건립했던 것을 사직공원 정비계획에 의거 2015년 10월 10일 이곳으로 옮겼다. 

   

 

잔디광장

조선왕릉 다 돌아봤지만 이이의 묘지는 왕릉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만약에 한양 도성 백리 이내에 이런 묏자리가 있었다면 왕릉으로 쓰였을 풍수를 지녔다. 

 

 

율곡기념관은 휴관 중

 

 

이이 선생 신도비

정문 좌측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음.

 

 

연못

 

 

 

 

◈가족 묘역대

 

如見門

이이 선생과 사임당 신氏를 비롯한 11基의 자족묘가 조성되어 있다.

 

 

숲이 울창한 참배로

 

 

노송과 돌계단

 

 

德水李公諱景臨 (子 합장)

 

 

德水李公諱元秀, 師任堂平山申氏 (부모 합장)

師任堂(1504~1551) 申氏는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문인, 화가, 시인이며 이이의 어머니다. 신사임당은 1504년 강원도 강릉 죽헌리 북평촌 오죽헌에서 신명화라는 선비의 둘째 딸로 태어나 1551년 48세의 나이로 죽었다. 1522년 (중종 17) 한양에 거주하는 이원수와 결혼, 당시 결혼 후 사위가 처가에 머무는 전통에 따라 강릉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하며 강릉과 서울을 오가며 살았다. 슬하에 5남 3녀를 두었는데 셋째 아들이 율곡이다. 예술가의 자질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고 아버지의 배려로 이원수와 결혼하고 시댁과 떨어져 살 수 있게한 남편의 도량도 그녀의 예술에 한몫했다. 

  

 

德水李公諱璿 (형 합장)

 

 

文成公栗谷李先生 貞敬夫人谷山盧氏 (상,하묘)

栗谷 李珥(1536~1584)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며 경세가였으며 1536년 (중종 31) 사헌부 감찰 이원수와 사임당 신 씨의 셋째 아들로 외가인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나 1557년(명종 12) 성주목사 노경린의 딸과 결혼하고 1584년(선조 17)에 49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의 총명함은 13세 때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고 1564년부터 아홉 차례나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호조, 병조, 형조, 이조판서 등 국가의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주요 업적으로 십만양병설 주장 등이 있고 생애와 깊은 연관이 있는 지역으로 그가 태어난 외가 강릉 오죽헌과 처가가 있던 황해도 해주 석담 그리고 세거지 파주 율곡리가 있다.     

 

 

석물(비석, 혼유석, 망부석, 문인석)

 

 

묘역 전경

뒤로 자운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산 줄기 세 갈래가 자연스럽게 진산과 좌 청룡 우 백호로 자리 잡고 연못이 임수 역할을 담당한다. 늘 푸른 소나무가 묘역대를 감싸 신성함을 자아낸다. 

 

 

 

 

◈자운서원(紫雲書院)

 

자운서원은 조선 중기 1615년(광해군 7)에 대학자 李珥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에 의해 창건되었다. 이어서 1650년 (효종 원년) '紫雲'이란 사액이 내려져 선현 배향과 후학 양성을 위한 지방교육기관의 일원을 담당하여 왔다. 1869년(고종 5) 대원군의 전국 사원 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한국전쟁 때 완전히 파괴된  것을 1970년 이후 유림의 기금과 국가 지원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紫雲門

 

 

강인당(講仁堂)

 

 

東齊(입자재), 外三門, 西齊(수양재)

 

 

자운서원묘정비

 

 

內三門

 

 

文成祠

율곡 이이의 사당으로 영정이 모셔져 있고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제향을 올린다. 

 

 

이율곡 선생 영정

조선 유학계의 2대 거두 영남학파 이황(李滉)과 기호학파(畿湖學派) 이이(李珥)가 쌍벽을 이루며 조선의 성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으며 그의 선견은 후기 실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1584년(선조 17)에 49세의 나이로 죽어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자운산 기슭 선영에 안장되었다. 

 

 

 

 

 

 

2021년 05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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