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흙산이 막상 들어서면 암골이
금산은 우리나라 3대 인삼 산지의 한 곳이다. 평생 건강을 챙기는데 藥補보다 行補를 더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
으로써 인삼에 관심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여름 복날 삼계탕에 넣어주는 인삼 한 뿌리가 인삼을 먹어 본
유일한 기억이다. '개삼터'란 어떤 이상한 지명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금산에서 인삼을 처음으로 재배한 곳
이라 한다. 기사에게 하산 때 개삼터공원으로 내려올까 한다고 했더니 "거기 뭐 볼 거 있습니까?" 서북릉 암릉
을 타고 수리넘어재로 하산하시면 전망 좋고 금산 읍내도 가깝고 택시비도 적게 들건대, 다 내려오면 전화하기
로 약속하고 보석사 주차장에 내려주고 돌아갔다.
숙소에서 바라 본 진악산
(07:35) 보석사 주차장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689)
보석사 일주문
의병승장 기허 영규대사 순절비각
전나무 그늘이 너무 좋아 한참 서성거렸다. 나라 안 내소사,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 좋다고 소문났지만, 키만 크
고 썰렁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는데 이곳 보석사는 다복하게 자랐다. 개천에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가 다소 짧은 게 아쉬웠다.
보석사
국보도 보물도 없는 작은 사찰이다. 구통일신라 885년(헌강왕 11)에 조구(祖丘)가 창건하고 그 후 여러 차레
중창도 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환전히 불타버린 것을 고종 때 명성황후가 개축하여 왕살의 원당(願堂)으로 삼았
다고 한다. 의병승장비와 은행나무가 고찰임을 알린다.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65호)
수령 1,100년, 수고 34m, 가슴높이 둘레 10,72m, 마을에 큰일이 생길 때라치면 소리 내어 미리 알려줬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예를 들면 대한제국 광복, 6,25 동란, 극심한 가뭄 때 소리 내어 울었다고 한다. 주의의 참나
무가 천 년의 위용을 가리지만, 가을 노란 단풍이 들면 장관이겠다.
(08:10) 아치목교
은행나무 뒤로 사찰 구역을 벗어나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작은 자갈과 마사토가 깔린 차가 다닐만한 너른
등산로와 떨어져 계곡을 건너뛰며 영천암 입구까지 이어간다.
보석천 상류에 나딩구는
샘물바위
암각으로 새겨진 초서 거북이 '龜'字는 알겠는데 다음 字는 묘연 거북바위란 이름 붙여봤다.
왜 세웠는지 궁금한 육각정
(08:30) 영천암 갈림길이다.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고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을 세워 놓았다. 등산로는 숲속으로
이어진다.
국가지점번호판이 서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른 곳과 달리 현위치 고도(312m) 와 현위치 (진악 3-10)가
같은 부호가 적혀있다. 더 욕심을 내어 이정표 기능을 추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비스듬히
올라왔는데 지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이다.
등산로가 희미한 곳엔 안내 팻말이
너설인지 너덜인지 분간하기 힘든 바위들
침목계단을 한참 올라가서
성곡리 갈림길 이정표
(09:30) 도구통바위에 다달으면 잔악산 주릉에 올라선다.
도구통바위
아무리 살펴봐도 도구통 연상이 안 됩니다. 가끔 이렇게 막힐 때도 있죠. 그냥 넘어갑니다.
누가 땅 쳐다보고 있으면 땅나리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바윗길 로프 잡고 침목계단 오르기
물굴봉까지 나무계단 오르기
(09:55) 물굴봉(735,7m) 도착
진악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다. 정상의 표면은 흙으로 덮였지만 기반은 암봉이다. 동쪽 사면은 절벽인데 그
어딘가에 굴 입구가 있고 굴속엔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굴까지 길 안내가 없어 확인 불가.
물굴봉 표지판과 기념촬영
'요산의하루'
덥고 땀이나 옷이 다 젖었다. 갈아입으려면 여러 벌 준비해야 하는데 등산을 호강하려고 하는 짓이 아니지 않느
냐 그냥 벗고 젖은 옷은 나무 가지에 걸치고 산 마루에 부는 바람을 맞으며 간단한 요기를 한다.
싸리꽃
돌탑
물굴봉에서 진악산 가는 등산로이다. 지도에 돌탑이 표기되어 있길래 잔뜩 기대했는데 초라한 몰골에 그냥 지
나칠 뻔했다.
소나무 우거진 등산로
진악산 정상 모습
너덜겅
산비탈에 잘게 부서진 바위가 집중적으로 쌓였다. 위를 쳐다봐도 아무것도 없고 옆으로는 남 몰라라 하듯이 멀
쩡하다. 하늘에서 바위가 쏟아졌나 암봉 하나가 제자리서 사그라진 모습이다.
너설
삐죽삐죽 바위가 솟아나고 부수러 진 바위가 돌멩이 되어 나뒹구는 길
리지①
너덜 너설 다음 드디어 암릉이다. 물굴봉과 진악산 정상 간 1,8km 중 약 1km가 암릉이다. 연속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암봉 사이 약간의 안부를 제외하면 암릉이라 부르기 충분하다. 바위가 우람하게 돋아났지는 않지만 그래
도 흙을 밟지 않고 이동한다.
동쪽 사면 벼랑톱
리지②
리지③
리지④
리지⑤
리지⑥
벼랑톱 안전로프 설치 구간
산마루에 큰 바위는 대부분 전망처이다. 비슷비슷한 전망에 갈길을 제촉한다. 벼량톱 안전로프에 의지해 진악산
의 전망을 즐긴다.
물굴봉 모습
개삼저수지, 인삼밭, 마을, 공원 전망
(11:00) 진악산(進樂山 732.3m) 도착
더 오를 곳이 없는 정상은 산불감시초소, 태양전지판, 헬기장까지 갖추고 있어 제법 넉넉하고 사방으로 확 뚫렸
다. 진악산 줄기와 금산의 인삼밭, 시가지는 몰론이거니와 멀리 무주 덕유산부터 시작하여 보령 성주산, 영동
천태산, 충남의 제1봉 서대산, 대전의 계룡산까지 훤히 나타나 진악이 왜 명산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진악산 정상석
진악산 정상석과 기념촬영
진악산 정상 조망 안내판
점심시간
정상 아래 그늘 받이에 평의자가 두 개가 가지런히 놓였다. 아침에 숙소 부근 24시 김밥집의 김밥과 온수로 커
피를 타고 집에서부터 싸들고 다니는 오렌지로 후식을 남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아 여유를 부렸다.
멍석딸기
기린초
수리넘어재 진악산 광장 하산로 모습이다. 리지와 암봉은 서울 북한산, 관악산보다 젊은 화강암이다. 인수봉처
럼 온통 바위로 뒤집어 써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릴까?
전망바위
진악산 정상 모습
관음굴은 약 100m 아래 절벽에 뚫린 바위 구멍이다. 가는 길에 잠시 들르는 코스이다. 그냥 지나치기 찝찝해서
내려가 보기로 한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서
절벽에 돌출한 바위를 안고 도는 통나무 계단 구간을 지나
폭 30cm 정도 테라스 난간에 설치된 안전 와이어로프에 의지하여 이동한다.
진악산 동쪽 절벽에 빤한 구멍 하나 조심하며 닥아서니
수행 흔적이 남아 있는 기도처이다. 눈에 띄는 것은 3평 남짓 공간에 가부좌용 바위와 물웅덩이다. 정면은 끝없
는 산들의 풍경이다.
계속 바위와 시름하다 보면 얼굴바위 같은 것도 놓치기 십상이다.
암봉과 암릉 구간의 연속이다. 그다지 험하지 않으며 벼랑 쪽으로 안전로프를 설치해 놓아 등산은 순조로웠다.
리지
오늘따라 바람이 많고 시원하다. 적당한 숲을 지나며 바위를 걸으니 상쾌한 기분에 즐거움이 넘쳐난다. 저절로
일어나는 흥이다. 이는 진악산에 갖고 있는 매력이 나에게 전해졌다는 얘기다. '마누라가 이쁘면 처갓집 말뚝
보고 절한다'고 이 코스를 추천한 택시기사가 고마웠다.
금산 시내 전망
소나무 숲길
쉼터
장승
광장 0.7km 남음
등산로 보수작업 중이다. 때가 점심시간이라 인부들은 보이지 않고 작업 도구만 가지런히 놓였다. 등산 도중 내
내 등산로에 신경을 쏟았다. 불필요한 시설물이 있는지, 각종 표지판의 위치와 정보가 적정한지, 등산로가 확실
하게 구분되어 있는지 등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길을 닦고, 다지고, 계단을 놓고, 경계석을 쌓고, 배수
로를 파고 하는 일련의 공정이 훤하게 드러났다. 산을 관리하는 주체의 식견을 보는 것 같아 기뻤다.
작업 도구
(12:55) 수리넘어재, 광장, 진악산휴게소 한 장소에 딸린 명칭이다. 아침에 택시기사를 불렀다, 지금 장거리 운
행 중이라며 다른 기사를 보내왔다. 한낮의 기온이 30도가 넘었다. 산 꼭대기는 시원했지만 내려오니 찜통이다.
산기슭에 큰 집들이 즐비하다. 인삼 부자의 별장들이다. 금산은 부자 마을이라는데 택시 기사도 동의한다. 숙소
인근에서 목욕과 점심을 마치고 금산과 영원히 하직하고 다음 산행지인 장령산 옥천으로 떠났다.
2020년 6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