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소문따라/세계유산 수원화성

수원 화성 성곽길

안태수 2016. 1. 15. 17:50
728x90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華城 탐방


화성에서 조선왕릉 융건릉 답사를 마치고 수원 화성으로 간다. 수원을 비롯한 주변 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기 때문에 왕년에 다던 길은 골목길이 되든지 아니면 아예 사라졌다. 내비게이션을 따라면서도 

인터체인지를 놓치고 엉뚱한 길로 달린다. 경기 남부 지역은 아파트 단지와 이를 도심과 연결하는 도로로

꽉 차 있어 내비게이션도 버벅거린다. 겨우 병점을 찾아 1번 국도로 북상하며 수원 시가지로 접어든다.    

수원 화성은 수원시 팔달구와 장안구에 걸쳐 있는 길이 5.744미터 넓이 약 39만여 평의 성곽이다. 1794

(정조 18)에 착공하여 1796년(정조 20)에 완공됐으며 정조를 비롯하여 남인 정승 채제공, 실학자 정약용,

그림 설계 엄차욱, 시공 수원부사 조심태의 작품으로 1997년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문화유산이다.

어디서부터 답사를 시작할지 막연하다, 차를 서문으로 몰아 성곽 내부 도로를 주행하며 적당히 주차할

곳을 찾다가 화성행궁 주차장까지 왔다. 평일 오후 시간이라 주차장은 텅텅 비어 다. 주차 요금소의 안내

에 따라 서장대로 먼저 오른다.



화성행궁 주차장


팔달산 순환 도로


화성열차


화성행궁에서 서장대 오르는 계단 서장대가 있는 곳이 팔달산 정상 부근이다.


화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390,000평)로 동쪽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산성

의 형태 성의 시설물로는 문루 4, 수문 2/1, 공심돈 3/2,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咆)루 5, 각루

4, 암문 5/4, 봉돈 1, 적대 4/2, 치성 9, 은구 2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성곽을 이루고 있다.


서장대 이정표는 세계 주요 도시와의 거리 표시를 해 놓았고


서노대(西弩臺)

노대弩臺(2개소)는 화살 여러 잇달아 있도록 만든 활(다연발)을 쏘는 곳.


서장대(西將臺 華城將臺)

장대(2개소)는 성곽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세워 전시 장군이 상주하면서 군사를 지휘하는 곳.


서일치西一雉

稚치(9개소)는 꿩'치"字로 성벽을 밖으로 돌출시켜, 좌우로 접근하는 적을 막기 위한 시설물.

서포루西砲樓

포루砲樓(5개소)는 성벽 밖으로 벽돌로 지은 3층 건믈로 성내로는 1층 누각만 보임 포병 진지


성벽은 지형지물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였으며 지형에 따라 4∼6m 정도 높이로 돌로 쌓 내벽은 흙으로 성

토하여 성벽 위 1m 정도의 여장女牆을 만들고 여장에는 총구를 뚫었다.


화성 이정표


서북각루(西北角樓)

각루(4개소)는 성곽 높은 구릉에 누각을 세워 주위를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정자처럼

은 건물.


화서문(華西門, 西門 보물 제403호)은 화성 4대문 중 서문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보물 제1710호)

공심돈(2개소)은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지은 초소와 같은 곳. 속이 텅 비어 있다.


성곽안 도심 풍경


북포루北鋪樓

포루鋪樓(5개소)는 치稚위에 지은 건물로 보병용 진지


장안문(長安門, 北門)은 화성 4대문 중 북문


북동적대北東敵臺

적대는 성문과 옹성에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설치한 치稚와 비슷한 시설물.


내부 성곽길


화홍문, 용연, 방화수류정, 동북각루, 順


도심 관통도로


화홍문華虹門 북수문은 광교산에서 발원하는 수원천이 도성을 지나면서 장마철 홍수를 조절하기 위한

수문 역활.


북암문

암문暗門(4개소)은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설치하여 성밖과 군수물자 이동 등 비밀스러운 통로로

이용


동북각루(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보물 제1709호)

방화수류정은 용연龍淵 위에 세워진 각루 정자를 일컬음. 


장안위좌부(관활구역 표시석)

 

연무대 쪽 성 밖 모습


연무대(동장대)는 장군의 지휘소이며 평상시 군사훈련 장소로 사용.


동북공심돈


창룡문(동문) 성곽 내 공터는 도심의 허파 노릇을 하고 있다. 이 넓은 공간을 호시탐탐 노리는 무리가

한둘이 아닐 텐데 언제까지 지켜낼지 흥미롭다.


창룡문에서 동북공심돈 방향 공터


창룡문(蒼龍門, 東門)은 화성 4대문 중 동문


수원제일교회


烽墩봉돈(봉화대, 봉수대)


성곽 유실된 현장

봉돈을 지나 동이포루 동삼치 동남각루 남수문을 건너 이곳까지 성벽이 이어오다가 뚝 끊긴다. 초행길이

라서 길을 물어야 할 형편이다. 팔달시장으로 통하는 재래시장 골목 끝 100여m 앞에 시장통이다. 거기서

팔달문이 보인고 한다. 


재래시장 통과


팔달문로 팔달문 東 측면까지 성곽이 유실된 현장이다. 복원은 어렵겠고 요즘 잘 그리는 벽화를 바닥에다

그리든지 타일을 붙이든지 시늉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팔달문(八達門, 南門보물 제402호)은 화성 4대문 중 남문에 해당 좌우 성벽은 도심의 도로가 생기면서

유실 됨. 


화성 성곽길 표시판


팔달문 서쪽으로 이어지는 성곽길은 팔달산을 보고 올라간다.


성벽 구간 중 제일 가파른 구간이다. 일직선으로 곧장 올라가도록 되어 있어 숨이 차다.


서남암문


서남각루(길 없음)


팔달산(八達山 145.5m)


세계문화유산 화성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효원의 종각

수원은 정조 임금 덕분에 효孝의 고을로 이름났다. 정조는 양주 배봉산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수은묘)

영우원으로 올렸다가 화산으로 이장하면서 현릉원으로 고쳐 불렀다. 용주사를 세워 현릉원을 관리하게 했으

며 화성행궁을 창궐하고 수원화성을 축성하여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영원한 안식처로 제공했다. 재임 중 12

차례나 현릉원을 찾아 백성들에게 효심의 감동을 주었다.  


서장대


화성행궁 신풍루


華城行宮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 수원 팔달산 아래 화산 이주민을 위한 신읍치(관아가 있는 마을)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화성 완성시기(1796년)에 맞혀 건설하였다. 화성행궁은 임금님의 행차 시

거처하던 임시 궁궐로 모두 576칸이나 되며 평상시에는 화성유수부 유수가 근무하는 관청으로도 활용했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으로 일부는 훼손되고 다른 용도로 사용되어 오다가 1996년부터 복원 공사를 시

작해서 2003년 현재모습으로 완공했다.


화성행궁 광장

화성 안으로는 도심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주상복합건물, 아파트, 빌딩 고층건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

건축물 고도 제한 조치가 있는 모양이다. 해가 완전히 지고 불빛이 거리를 밝힌다. 화성행궁 광장 너머로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진다. 오랫만에 느끼는 평화로움과 안정 감정이다. 두 시간여 성곽 길을 걸으면서

성 안이 크게 변하지 않으면서 옛 모습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심심찮게 본다. 오늘은 성곽 내부 길을 걷고

가지만 다음에는 성곽 외곽 길을 걸어 볼 작정이다.






                                                      2015년 12월 16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