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30 피재~덕항산~댓재

백두대간 피재~건의령~구부시령~덕항산~큰재~황정산~댓재

안태수 2014. 9. 1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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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에 물집이 생기고 빨간 속살이 드러나다.

 

 

어제 비에 젖은 우의, 바지, 신발, 배낭을 밤늦도록 에어컨을 쏘이면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말

고 신발은 새 양말을 신고 걸어보니 걷는 데 큰 불편은 없다. 새벽 5시 30분 모텔 앞에서 예약된 택시

만나 피재로 간다. 요금을 주려고 하니 저녁에 함께 주시죠. 한다. 피재에서 댓재로 내려오면 삼척이나

태백으로 가야 서울 가는 교통편과 연결되는데 거리상으로 비슷한 모양이다. 택시요금을 떼어먹었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면 무사히 하산해서 아침에 이용한 택시를 불러야 한다.  

 

 

(05:30) 피재(936m)에 도착한다. 

태백역에서 피재까지는 약 10km, 택시로 한 10분 정도 걸리며 요금은 15,000원 정도. 피재에는 휴게소,

소공원, 정자, 삼수령 조형탑, 주차장(유료)이 있고 피재에서 바람의 언덕 입구까지 30분 간격으로 탐방객

을 위한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피재 삼수령 조형탑

 

(05:40) 피재를 출발해서 백두대간 탐방로를 찾기 위해 공원을 둘러보고 있는데 새벽 운동 나온 주민과

마주친다. 공원 한쪽 모퉁이 백두대간 해설판과 숲 속으로 개구멍처럼 뚫린 곳을 가리키며 건의령 가는

길이라 한다, 그곳엔 대간 리본이 잔뜩 매달려 있다. 

백두대간 안내책자에는 이 구간 도상거리 25.21km를 둘로 나누어 소요시간 17시간으로 소개하고 거리상

중간지점인 구부시령에서 끊어 외나무골로 등산로가 있다고만, 명시되어 있다. 지도의 등고선을 살펴보면

피재를 출발한 능선은 해발고도 950m에서 1,050m를 오르내리며 댓재까지 거의 지평선처럼 보인다. 내심

17시간 소요시간은 잘못 표기된 것으로 잘하면 뛰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노루메기

백두대간 피재 댓재 구간은 함백산과 두타산 두 산 사이에서 구부린 듯 능선을 낮추며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간 능선을 따라 35번 국도가 나란히 가며 424번 지방도와 연결하여 삼척으로 간다. 

 

태백 공원묘지가 보이고

 

아침 햇빛이 숲 속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건의령 3.7km 남음

 

424 지방도 삼척 도계에서 태백 상사미동을 잇는 도로에 터널(건의령 터널)이 생기면서 건의령을 넘는

舊도로는 폐도가 되었고 현재 고개는 백두대간 마루금 생태계 복원사업으로 도로의 모습을 지우고 있다. 

 

(08:10) 건의령(巾衣嶺 887m) 도착 

피재에서 출발하여 노루메기, 961봉, 945봉, 960봉, 956봉을 지나면서 고만고만한 봉이 자주 나타나 

귀찮으서도 조그마한 언덕을 넘는 기분으로 쉽게 한 걸음으로 달려왔는데     

 

아침 식사 

태백 상사미동으로 넘어가는 도로는 형태조차 알 수 없고 고갯마루에는 잡초가 무성한 가운데 이름 모를

야생화가 만발하고 있다.

  

(08:30) 건의령 출발하여 잣나무 숲을 다 올라가면 902봉을 만나고

 

푯대봉 삼거리에서 100m 정도 직진하면 푯대봉이고 대간은 다시 푯대봉 삼거리로 되돌아와서 좌측 동쪽

으로 크게 꺾어지는 길이다.

 

(09:00) 푯대봉(1,009.9m) 정상석과 기념촬영

 

951봉

 

고랭지 채소밭과 삼밭골

 

980봉

 

석희봉(994m)이라고 gps가 알려주고

 

太古의 숲

 

1,012봉이라고 적은 흰종이를 비닐로 씌어 나무에 걸려 있고

 

사슴머리 닮은 나무

 

東高西低 현장 우측은 천 길 낭떠러지

 

 

1,055봉

 

참좁쌀풀

  

새며느리밥풀꽃 군락지

 

(12:30) 구부시령(九夫侍嶺)

건의령에서 구부시령까지 고개(봉우리)를 세어 보니 아홉 구비, 6.5km 거리를 3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4시간에 걸쳐서 왔다. 한마디로 죽을 고생을 한 것이다. 지도상의 평지 같은 능선은 실제로는 톱날 같은

봉우리의 연속이며 낮은 봉우리도 여러 번(9회) 자주 넘으니깐 순발력과 복원력이 떨어지는 나이에는 감

당하기 힘든 고통의 연속이었다. 드디어 발가락이 까져 걸을 때마다 통증이 온다. 그동안 백두대간을 종

주하면서 발에는 굳은살이 박여 까지고 상처가 난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갈수록 더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구부시령은 옛날에 대기리란 마을에서 주막을 하던 여인이 서방이 자꾸 요절하는 바람에 아홉

서방을 맞았다는 얘기 때문에 생긴 말 그 여인의 서방들도 나처럼 힘든 고개를 넘다가 큰일을 당한 모양이다. 

 

참나무 군락지

 

드디어 나타난 댓재 표시판에는 12.5km 남았다.

발가락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 오르막을 걸을 때는 체중이 발 뒤꿈치에 실리니 견딜만하다가 내리막에서는

정반대가 되니 돌 같은 데 부딪치거나 미끄러지면 자지러진다. 아직도 상처는 확인하지 않았다. 신발을 벗

어 보면 걱정이 더 커질까봐 덮어 둔 상태, 배낭에 연고가 있지만 하산 후 처치하기로 하고 계속 걸으니 상

처가 점점 커지는 느낌. 댓재는 12.5km 남았고 어둡기 전에 도착해야 하고 상처를 돌 볼 겨를이 없다.   

 

덕항산 직전 안부

 

(12:30) 덕항산(1,070.7m)

대간 길을 걷다가 만나는 명산 100은 왜 명산에 들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김천 황악산이 그랬고 지금

덕항산도 그렇다. 지나는 길에 반대편에서 마주친 사람은 우리 명산 100을 답사 중이라며 지금 덕항산을

가고 있다고 한다. 나는 덕항산이 명산 100에 들어있는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구부시령에서 1.1km 떨어진

평범한 봉우리에 동해가 보이고 고랭지 채소밭뿐이지 않은가? 사방이 나무에 가려 보이는 것이라곤 하늘

밖에 없다. 뒤에 알고 니 덕항산에서 시작하는 12km 무릉계곡은 오십천의 발원지며 동쪽으로 깎아지른

경사면은 암벽, 암봉, 괴이한 바위들로 꽉 찼고 심장부에는 아직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동양 최대의 석회

암 동굴인 환선굴이 자리를 잡고 있다. 얼떨결에 우리 명산 100을 답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쉼터↔환선굴↔골말 구간 등산로는 폐쇠

 

東으로 크게 휘는 능선에 고랭지 채소밭과 풍력발전단지가 보인다.

 

삼척 대이리군립공원 주차장 

 

(14:20) 환선봉(지각산 1,081m) 중턱 해발 800m 지점에 환선굴이 있다.

환선굴은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동양최대의 석회암 동굴로 유명하다. 동굴 규모는 길이

총 6.2km 중 1.6km 개방으로 입구는 폭 14m 높이 10m, 내부는 폭 20~100m, 높이 20~30m 정도의 크

기며 동굴 내부에는 다양한 종유석, 석순, 석주가 있으며, 희귀한 동물화석 등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현재

는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주차장에서 환선굴까지 모노레일 운행하고 있음. 

 

헬기장

 

 

(15:10) 자암재에서 환선굴은 1.7km

 

(15:40) 귀네미 마을은 1988년 삼척시 하장동 광동댐 건설로 인해 발생한 수몰지구 주민들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생긴 마을이다.

 

큰재 이정표 1.8km 남음

 

배추밭과 산자락 사잇길이 대간이다. 대간은 배추밭 가장자리를 끼고 숲으로 들어갔다가 배추밭과 나란히

가다가를 반복하다가 배추 재배단지 전체가 다 내려다 보이는 북쪽 끝 마을 외곽 길에서 헤어진다.

 

   

이정표가 있어 다행이지만 불행하게도 채소밭과 먼 산을 가리킨다.

 

고랭지 채소밭과 산등성이 경계선으로 난 길이 백두대간이다. 무턱대고 채소밭 길을 가다간 고생 좀 한다.

락을 타고 크게 한바퀴 돈다고 생각하면 된다.

 

고랭지 채소밭 가장자리를 따라가는 백두대간

 

풍력발전단지

 

풍력발전기

 

(16:45) 고랭지 채소밭을 벗어나 차 바퀴가 선명한 임도를 만난다.

 

백두대간 등산 안내도가 임도 입구에 크게 서 있다. 큰재는 어느 방향인지 임도를 따라가나 숲으로 들어

가나 잠 망설인다. 먼저 임도를 따라 내려가 보니 일반산악회 리본만 몇 개 보여 다시 되돌아와 숲으로

들어간다. 싸리나무, 가시덩굴이 뒤얽힌 곳을 억지로 밀치고 나가다가 팔뚝 여러 군데를 할퀴여 핏자국이

섰다. 짐승이 다닐듯한 길을 조금 나아가보니 사람이 다닌 흔적은 영 보이지 않는다, 다시 되돌아와 임도

를 따라 내려간다. 산모퉁이 하나를 돌아서니 이정표가 보인다.  

 

(17:00) 큰재는 귀네미 마을 고랭지 채소밭이 끝나는 북쪽 424 지방도와 연결하는 임도상에 있다. 큰재

를 찾느라 금쪽같은 시간 20 여분을 허비한 것이다. 댓재까지는 5km, 7시까지 도착하려면 쉬지 않고 걸어

야 한다. 

 

1,058봉

큰재부터 댓재까지는 평탄한 길이라고 했다. 어떻게 하든 큰재까지 참고 오면 그 다음부터는 쉬울 줄 알

았는데 "아니올시다" 이다. 마지막에 힘은 달리고 발가락까지 아프고 남은 봉우리는 다섯에 해는 지려고

하니 쉬고 뭣할 겨를이 없다.    

 

1,105봉

 

(18:50) 황장산 (1,059m) 통과

 

댓재에 도착하니 몸이 파김치처럼 축 처진다. 어둡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 큰재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얼

마나 빨리 달려왔는지 무사히 도착한 기쁨에 발가락 아픈 것도 잊고 도로변에 아무렇게 배낭을 팽개치고

퍼지고 앉아 어둠이 깔리는 고개와 산 넘어가는 황혼 박명(薄明)을 멍하니 본다. 스마트 폰 gps를 중단하

고 비행기 탑승모드를 해제하여 태백 개인택시로 지금 막 하산했음을 알린다. 30분 이내에 도착한다고 하

고 기다리는 사이 댓재 휴게소(010-8797-7960)에 들러 댓재까지 교통편과 숙박 여부를 알아두고 두타산

들머리도 확인해 둔다.  

 

(19:10) 댓재

산에서 내려오면서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면 즐거울까? ①다리가 몹시 아프고 허리도 뻣뻣하니 나무나 바위,

벽 등에 기대앉아 푹 쉬고 싶다. ②한여름 종일 흘리고 말리기를 거듭한 땀에 찌든 옷을 벗고 찬물에 들어가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기. ③초코를 듬뿍 올린 요거트아이스크림. ④곰탕 종류를 깍두기 국물 타서 얼

큰하게 밥 말아 먹기. ⑤서울 가는 차편. 등이 순서를 바꿔가면서 머릿속을 휘젓는다. 택시기사가 "태백서

댓재까지 차로 와도 한참 걸리는데 걸어서 넘어오셨다니 대단합니다."라고 경탄한다. 내가 왜 이 나이에 혼

자 산을 다니는 걸까? 수 없이 자문했지만, 아직 답을 못 얻은 상태다. 하산하려면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다가 산에서 영 못 내려오는 것은 아닌지 택시가 낯익은 목욕탕 앞에 세우고 신발을 벗어 보니

새끼발가락 두 개가 피범벅이다.        

 

 

 

 

 

                                                         2014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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