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과 폭설속에서 무사 귀환
12월이 이렇게 추운 것은 5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란다
눈도 벌써 서 너차례 왔고 영화 10도 이하로 떨러지는 날도 매주 찾아온다.
이러다간 금년 겨울은 눈과 추위에 고생하지 않으런지 걱정이다.
산에 가는 일도 따라 걱정이다.
서울 근교 산 같으면 아무때나 그냥 나서면 되는데 백두대간이나 명산 100순례는 사전에 많은 준비가 필
요하다. 그 중에서 특히 신경써야 할 대목은 날씨 관계다. 여름에는 폭우로 인한 계곡 물조심, 겨울에는 폭
설로 인한 조난사고 등을 대비하여 일기예보를 꼼꼼히 챙겨야 한다.
금년 말까지 백두대간 천왕봉에서 육십령까지 97.99km를 북진하기로 계획하고 있다.
복성이재에서 육십령까지 남은 거리 약 30km를 해가기 전에 마치기로 하고 이틀에 걸쳐 길을 나눈다.
3일은 날씨가 좋아야 한다. TV 날씨정보 챙기고, 인터넷 기상청 일기예보 검색하고, 현지 주민들에게 지금
날씨 상황도 물어보고 해서 드디어 12월23일~24일로 날짜를 정한다.
동서울에서 남원시 인월까지 심야고속버스가 운행된다. 인월은 지리산과 덕유산을 잇는 중간에 위치한 마
을로 백두대간 하는 사람이나 봄철 봉화산, 바래봉 철쭉을 보기 위해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듯
하다. 차 안은 겨울 산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복장이나 베낭이며 완전 무장을 한 모습이 비장
하게까지 보여진다. 다들 이런 산행길이 익숙한 듯 기사는 출발과 동시에 차내 소등을 하고 승객들은 의자
속으로 깊숙히 몸을 숨긴다.
차는 밤새 한번도 쉬지 않고 달려 함양에서 서고 그리고 인월에서는 나를 내려 놓고 종착지인 백무동을 향
해 추운 밤길을 내닫는다.
새벽 3시 인월시외버스터미널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할 수 없는 초행길 여행객에게는 황량할 정도로 쓰잔하다.
골목마다 불어 나오는 겨울바람, 오후 늦게부터 온다는 눈은 약속을 어기고 강한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흣
날린다.
터미널과 붙은 24시 편의점이 불을 밝히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차임벨 소리가 먼저난다. 카운터에서 꼬부라져 졸고 있던 젊은 직원은 통상적인 듯힐
끗 쳐다보고는 본체만체한다. 6시까지 있을 만한 곳은 있느냐?, 택시는 언제부터 운행하느냐? 여기서 기
댜려도 괜찮느냐? 등을 물어보니 성의 없는 대답에 더 이상 말을 걸기가 싫었다.
종업원은 계속 졸고 있고 혼자 덩그러니 남의 집 가계안에 있을려니 좌불안석이다. 도둑이 되어 가는 과정
과 그렇지 않은 사이를 번갈아가면서 공상한다. 중간중간 컵라면도 사서 시간을 벌고 생수를 사서 물통에
도 채우고 밧테리를 싸서 해드램프에 끼워 작동을 시켜보고...
새벽 6시 지역번호+114로 전화해 인월 개인택시 호출을 부탁한다. 응답이 없어 메세지를 남기니
10분 쯤 뒤 연락이 온다. 복성이재까지 12,000원으로 정하고 추운 겨울산을 향해 출발한다.
복성이재 (06:40)에 도착했다
인월과 번암을 잇는 751번 지방도 사이에 위치 해발 470m. 번암쪽에서 매서운 바람이 몰아친다.
택시는 이런 황량한 곳에 나를 팽개치듯 내려놓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번암쪽에서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며 길 옆으로 쌓인 눈들을 밤바람에 날려 얼굴을 사정없이 때린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동이 틀려며는 아직 1시간 가량 더 있어야 한다.
편의점을 출발할 때 스틱을 열고 해드램프를 부착하여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진 몇장 찍곤 바로 출발한다.
매봉(712.2m) 정상
복성이재에서 1km 남짓한 거리다 (07:10)
장님처럼 스틱과 램프에 의지해 눈길을 조심스럽게 올라왔다.
지리산 바래봉 철쭉재에 눌려 기를 못 펴던 봉화산 철쭉은 아영면 성리마을을 중심으로 낙후된 고장을 발
전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흥부마을 조성, 철쭉동산 가꾸기 사업 등을 벌려 해마다 봉화산 철쭉제를 열고 있
다.
매봉 정상에서 본 장수 번암마을
매봉 정상에 설치된 전망데크
매봉에서 봉화산 방향
백두대간 능선길로 키가 2m 남짓한 자생 철쭉군락지가 봉화산까지 주-욱 이어지며 모자도 빼앗고 베낭도
붙잡고 때론 무릅으로 기개까지하며 2시간 남짓 철쭉과 시름하며 빠져나가는 길이다.
봉화산 철쭉은 자생 철쭉으로 약 5ha 집단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개화는 하단부 500m부터 정상 920m에 이르기까지 약 20일
의 시차를 두고 개화를 한다. 타 지역의 철쭉보다 樹高가 높아(2m)이상되며 사람이 철쭉군락지 안에 들어가면 보이지 않을
정도며 찻길에서 약 1Km 정도밖에 되지 않아 쉽게게 감상할 수 있고 타 지역 철쭉보다 색상이 선명하여 먼 곳에서 보면 마
치 불이 활활 타는 듯하다.(아영면홈페이지)
철쭉군락지 사이로 전망테크, 계단, 정자 등이 설치되어 있어 군락지 보호와 관광객 편의를 동시에 해결한다.
매봉 0.2km 봉화산 3.0km 이정표
상록침엽수 히말라야시다(소나무과)
나무가지에 내려 앉은 눈이나 서리가 채 녹기 전에 얼음이 된 上古代, 상고대가 끼다.
산속에서 일출은 때와 장소를 바꾸며 나타난다.
드디어 봉화산이 보이고
뒤 돌아 보면 매봉도 이제 눈 아래다.
멀리 덕유산, 장안산(금남호남정맥)도 보이고
길 한 복판을 막고 있는 소나무, 눈꽃을 함박 피운 모습이 싱그럽다.
하늘로 향한 대간 길은 정상이 가까이 왔다는 알림이고.
한번 더 가파럽게 치고 오르면
봉화산 정상은 이런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08:40)
봉화산(919.8m)
봉화산은 봉수대는 백제와 신라의 국경 분쟁이 잦았던 시기에 설치되었다가 통일신라 이후부터 폐지된 것
으로 보이며 그 유적이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다고 한다.
봉화산 정상에서는 88올림픽 고속도로와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 금남호남정맥, 덕유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봄에는 봉화산 산등성이가 철쭉으로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봉화대
봉화산 정상 주변 모습
봉화산 정상 저 나무계단 아래로 대간 길이 열리고 옆 이동통신 기지국은 안 쫒아다니는 곳이 없구나
그래서 四通八達, 연락을 못해 위험에 처하는 경우는 없겠다.
봉화산을 지나면서 눈위 사람 발자욱은 희미해지고 적설량도 점차 는다. 잠깐 길을 비켜나면 눈은 발목까
지 찬다. 매봉은 가마득하게 자꾸 멀어지고
백운산은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봉화산 정상 일대의 억새는 백두대간 줄기를 따라 좌우로 펼쳐져 10월 쯤은 2m가 넘는 갈대의 출렁임이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한다고 한다.
대간 길은 번암쪽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나 나란히 걷다가
봉화산 쉼터에서 합친다.
남쪽으론 지리산 연봉들이 주저리 열리고
쉼터까지 번암쪽에서는 차도 오를 수 있는 모양이다.
눈밭을 가로 질러 숲속으로 난 계단을 이용해 대간 길은 계속 된다.
멀리 무명봉 표시판이 보이네...
지난 가을 억새풀을 보기 위해 온 산을 해매고 다니든 일들이 생각난다. 민둥산, 명성산, 광주 무등산까지
봉화산 억새밭도 훌륭하다. 지금은 눈속에 숨어 찬바람 피하지만 파란 하늘과 구름과 같이 만나 천상의 길
을 열어준다.
모처럼 집으로 전화를 건다. 내 지금 천상을 걷고 있다. 푸른 하늘이 천지에 꽉 차고 흰 백설로 꽃가루 뿌
려진 길, 바람도 잠깐 멈춘다. 아무도 없이 나혼자라 더욱 황홀하다.
가는 길에 雪花가 만발한 나무가지 그 사이로 푸른하늘이 재대로 청명하다.
무명봉(944m)통과
무명봉은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 함양군 백전면의 경계상에 있는 한 봉우리로 백구대간 지리산
과 덕유산을 연결하는 능선에 있다.(09:20)
계속 북진이며 백운산, 남덕유산은 항상 눈 앞에 있다.
북쪽을 향 할 수록 눈은 점점 더 많이 쌓이고 뒤에 처진 봉화산도 이제 마지막 보는 모양이다.
끈임없이 뒤 쫓든 철쭉도 억새평전도 드디어 사라지고 키 큰 참나무 빼곡히 있는 길로 들어선다.
월경산 위로 보름달이 뜨면 화투에 팔공산 같다는 생각에 혼자 失笑한다.
광대치(11:15)통과
함양군에서 조성한 「약초시범단지」
월경산(980.4m)삼거리 통과(11:55)
봉화산에서 광대치까지 계속 고도를 낮추다가 광대치에서 급격하게 고개를 한번 쳐든다. 1.2km의 거리를
40분간 경사면을 숨가쁘게 오르면 대간 길은 월경산 삼거리를 지나며 월경산은 비켜서 있다.
중기민텔 안내판이 반갑다, 월경산부터 중치까지는 계속 내리막 길이다.
월경산에서 중치까지는 산죽밭과
소나무 숲으로 가득차다.
중치 도착(12:40)
중재라고도 하며 해발 650m이고 복성이재까지는 12.1km, 백운산까지는 4.6km. 거리에 부담을 느끼는 사
람들은 중치에서 소 구간으로 나눈다. 중기마을로 탈출하는 길이 있어 「중기민텔 011-578-0949」로 전
화하면 차로 픽업도 해주며 숙박, 식사 다 가능한 모양이다.
물통에 물이 언지도 오래됐고 보온통 커피로 입을 조금씩 추기며 사진 찍는 순간 빼곤 계속 걸어왔다.
점심을 해야 하는데 적당한 곳이 눈에 안 띄어 선채로 김밥 한 줄, 팥빵 반, 사과 반쪽, 뜨거운 커피로 15분
만에 점심을 마친다.
백운산까지 4.6km 정상적인 상황 같으면 2시간 정도면 도달 할 수 있는 거리며 백운산부터 영취산까지
3.4km는 계속 내리막 길이니 날이 좀 어두워도 큰 염려는 안된다.
그래도 해지기 전에 부지런히 걷자.
중고개재(755m) 통과(13:35)부터 대간 길은 백운산의 서북측 사면으로 나 있다. 중고개재에서 백운산 정
상까지는 2.5km 급경사로 2시간 빡시게 걸어야 한다.
(14:45)암릉길을 만나니 그나마 다행이다, 밧줄 따라 길도 뚜렷이 보이고 바위 위로 눈도 적어 발 디딜 곳
이 확인되니 불안한 마음 잠시 가신다.
(15:35) 기상이 조건이 자꾸 안 좋아진다. 눈까지 동반한 강한 북서풍이 길에 쌓인 눈을 경사면으로 실어
날라 눈위 희미한 발자욱 마져 덮어 버린다.
갑짜기 컴컴해져 나무에 메달린 대간 표식기도 식별하기 힘든다. 눈은 무릅까지 빠지고 앞으로 갈려며는
다리를 무릅 높이로 들어 올려야 한다. 길은 완전히 없어졌다. 자칫 길을 잘못들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제
일 먼저 든다. 대간 표식기를 놓치지 말아야지. 표식기와 표식기를 확인한 후 직선으로 이어 곧장 눈을 헤
치고 나가기를 계속한다. 무서운 생각이 떠오른다.
'119를 불러야 할까' 급할 경우 마땅히 몸을 피신 할 장소도 안 보인다. 탈출로는 백운산 정상이 제일 가깝
다. 안 좋은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더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 어떻게든 정상까지는 가자.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일보 전진했다가 호흡을 충분히 가다듬기를 반복하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15:40)이 쯤에서 고도를 체크해 보니 (1035m)
(15:50)힘들여 고개마루에 올라서니 드디어 정상이 보인다. 고도는 1190m를 가르킨다.
결과부터 말하면 백운산 정상에 16시30분에 도착했다. 중고개재 지나면서 백운산 정상까지 약 2km, 2시
간은 최악의 순간이였다. '혼자 이러다간 죽을 수가 있겠구나' '이런 험한 길을 누가 동행해줄까' '무식하
면 정말 용감해지는가?'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가!' 결국 아무일 없을거라는 일념으로
그 동안 산행지식을 총 동원하여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을 기준으로 북쪽 영취산 쪽으로는 눈을 동반한 강풍에 눈도 재대로 뜰 수 없고 반대편 함양으로는 바
람 한점 없이 고요하다. 백운산은 일년의 삼분지이가 구름에 쌓인다는 구름과 관련이 많은 산이다.
함양 대왕마을까지는 4.3km 가파른 길에 눈도 쌓여있지만 중간에 상연대, 묵계암 같은 절도 있어 염려할
정도는 못된다.
(17:50) 함양, 남원가는 37번 지방도가 지나는 대왕마을에 도착했다. 백운산장이라는 식당에 들어가니
금일휴업이다. 겨울에 손님이 있을리 없지. 함양가는 버스와 택시 중에 택시(20,000원)를 부른다.
잠시 사이 베낭을 정리한다. 아이젠, 스패츠, 스틱, 젖은장갑. 제자리에 담고 디카 확인 들어간다.
위 장면 후로 백운대정상, 함양으로 하산직전까지 사진이 하나도 기록되지 않았다. 처음 겪는 일이다.
손끝 손톱 밑 부분에 통증이 온다. 그 사이 동상에 걸린 모양이다.
함양서 19시 출발하는 동서울 도착 고속버스를 탄다.
2012년 12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