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높아 산을 가리다
법륜사는 일주문 크기에 놀라고 대웅전 규모에 숨이 막 지경이었다. 기타 전각들도 이들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크게 지었다. 앞으로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데 어떻게 신도를 확보할 것인지, 과연 미래를 바라보고 절을 지었는지, 절을 기행 하는 비신자로서 버려지는 절을 바라보는 시각으로는 걱정스러울 뿐이다. 부처님의 역할은 여기까지이고 앞으로의 절의 운명은 오롯이 스님들의 몫이겠다.

문수산 법륜사 일주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고당리 243-2)

문수산법륜사창건공적비

법륜사 전경

음수대

용인 문수산 법륜사 안내판

종무소

만일결사도량(萬日結社道場)
불토정국에 들어서는 불이문에 해당되는 계단에 행복한 불자 됩시다, 붓다로 살자 발원문은 불자로 평생을 기도와 정진으로 삶을 살아가겠다는 수행자 모임의 서원이다.

안내 이정표

범종각(前)
주차장이 범종각 View를 그렇치지만 이제와서 어쩌겠나?

범종각 원경

범종각(後)

범종각 사물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대웅전 앞마당

대웅전
법륜사는 우리나라 그 많은 고찰 가운데 21세기(1996~2005)에 지은 절이다. 모양은 옛 것이나 재료는 현대물이다. 절을 창건한 사람도 우리 시대 사람이다. 서울 삼각산 승가사 주지스님으로 계시던 비구니 무아당 상륜스님(1929~2007)이 관음보살을 현몽하고 10년 뒤 2005년 용인시 원산면 문수산 자락에 창건한 관음성지 발원 기도도량 비구니 사찰이다.

만라상

대웅전 석불 문수보살(左) 석가모니불(中) 보현보살(좌)

문수보살(33톤) 석가모니불(53톤) 보현보살(33톤)
석물에 사용된 화강암은 익산 황등석이고 건물에 사용된 기둥과 재목은 백두산에서 공수해 온 홍송과 우리나라 적송이라고 하고 '亞' 字형 기와지붕에 화려하고 웅장한 외관은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참고로 석가모니불에 사용된 화강암은 경주 석굴암 부처님의 3배 규모라고 한다.

동진동안보살과 104 位의 신중단

천불전 (1,250 佛)
석가모니불, 관음보살, 지장보살은 은행나무로 제작하다.

극락보전

관음보살(좌) 아미타불(中) 지장보살(우)

관음전
삼층석탑(三層石塔)은 경기도 문화유산으로 고려시대 작품으로 서울시 구로동 한 가정집에 있던 것을 법륜사에 보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음보살

조사전

창건주 비구니 무아당 상륜스님(1929~2007)
경남 진주 출신으로 1946년 통도사에서 경봉 스님을 은사로 사미니계 보살계를 받고, 1955년 수덕사 견성암에서 득도했으며, 1966년 범어사에서 비구니계를 수지 했다. 2007년 12월 28일 세수 78세 법륜사에서 입적하고 예산 수덕사에서 다비식을 거헹했다.

용수각

백송

달마대사

약사전

약사불

삼성각

산신(左) 칠성여래(中) 독성(右)

법륜사 원경

법륜사 중경

법륜사 후경

대웅전 황금탑은 마당의 탑을 지붕으로 옮겨놓은 형국으로 6송이의 연꽃과 8장의 연잎을 겹으로 표현, 이는 6바라밀과 8정도를 상징하며 탑 꼭대기 수정구술은 우주를 품고 있는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을 나타내며 사바세계를 두루 비추어 모든 중생을 제도하신다는 서원의 표현이다.

법륜사 측경

탁발 수행 중인 달마대사

법륜사 문수봉 등산로
2007년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며 산길에 놓인 절은 모조리 답사를 했다. 20년 전 그때 우리나라 절의 분위기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절을 지키는 사람도 귀하고 신도도 줄고 문 닿은 절도 있었다. 쇠락의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문수산 법륜사는 사뭇 다르다. 계속 번성하길 기대한다. 한남정맥 2구간 종주와 법륜사 답사를 마치고 나오며 한남정맥 다음 구간인 기점인 문수봉 등산로도 확인했다. 두창고개~법륜사 구간은 정맥을 이탈해 헤매고 다녔지만 서러워하지 않는다, 남는 게 시간이고 길이란 두 번 가도 새롭지 않은가?
2026년 0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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