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절은 불타고 새 절이 금강산을 지킨다.
건봉사는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절이다. 냉천리는 전체가 민통선 내 지역이라 민간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완전히 해금이 되어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맘만 한 곳은 아니다. 진부령을 넘을 일이 없으면 일부러 찾아가기에는 먼 거리다. 우리나라 108 사찰을 순례하면서 건봉사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이번 둘째 아들 가족과 강원도 동해 지역을 여행하면서 마지막 날 일본사돈과 사요나라 하는 곳을 진부령길로 잡았다.
주차장
아침에 속초를 출발하여 고성통일전망대, 화진포 관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로 진부령길에 접어드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길가 봉평메밀냉면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일본에서 온 사돈과는 길 위에서 작별을 했다. 건봉사는 식당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광산리에서 건봉사로를 따라 군인들이 지키는 북쪽 산길을 약 5km 들어가니 금강산 자락이라고 하는 넓은 절터가 나타났다. 비포장 주차장이 한산했다.
연화교
비교적 넓은 도량 한가운데로 흐르는 계곡(냉천)이 대웅전지역과 극락전 지역으로 양분한다. 주차장 초입에서 어느 지역을 먼저 답사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극락전 지역으로 불이문 서 있다. 문을 들어서면서 불국정토에 들어서게 된다.
금강소나무
보호수 수령 500년 팽나무
사명당승병기념관과 만해한용운기념관
사명대사는 조선 중기 승려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집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일본 사신으로 갔을 때 도쿠가와 에이야스를 만나 강화조약을 맺으며 조선인 포로 3,500명을 인솔하여 귀국하였으며 양산 통도사에서 봉안 중인 부처님 진신사리를 왜병이 훔쳐간 것을 되찾아와 낙서암에 봉안했다. 한용운이는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이는 생전에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수식어도 다양하다. 스님, 시인, 소설가, 발행인, 독립운동가, 불교 개혁가, 거사 등 당대 최고 지성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건봉사에 머물며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을 집필한 공로이다.
만해당 대선사 시비 '사랑하는 까닭'과 월북작가 조영출의 노래시비 '칡넝쿨'
금강산 건봉사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신라 520년 아도화상이 원각사로 창건한 절로 939년 신라말기에 도선선사가 중수하며 서봉사로 개칭하였다가 고려말 나옹화상이 건봉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 세조 때 왕실 원당으로 지정되어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國齋 등 왕실의 대, 소 齋를 치렀으며 일제강점기 때 624칸의 건물과 124칸 18개 부속암자와 9개의 암자를 거느린 31 본산의 대찰이었다. 6, 25 전쟁 때 불이문만 남겨두고 모든 전각이 전소한 폐사지에서 1994년 일부 복원하면서 2023년 '고성 건봉사지'로 사적으로 지정했다.
老梅
不二門
1920년 세워진 문으로 현판은 해강 김규진 썼다. 한국전쟁 중 사찰 전소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물이다. 1984년 6월 2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었다. 모든 게 하나가 되는 해탈의 경지에 들어서는 문이다. 부처님 계시는 불국정토에 들어가는 마지막 문이다.
극락전 돌솟대(南無阿彌陀佛)
돌솟대((大方廣佛華嚴經, 佛紀2953戊辰夏)
梵鐘閣
法鼓는 불법을 널리 알리며 네발 달린 축생들을 구제하고 梵鐘은 천상과 지옥의 중생들을 제도하여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木漁는 물속의 중생들을 구제하고 잠을 자지 않고 도를 닦아라는 의미를 담고 雲板은 공중을 나르는 짐승 허공을 헤매는 중생을 천도한다.
極樂殿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시고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불로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서방세계는 한량없이 맑고 깨끗하며 일체의 근심과 고통이 없이 기쁨과 즐거움만 있다고 하여 극락이라 한다. 758년(경덕왕 17) 대사 발징이 염불만일회를 열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의 만일동안 염불하면 극락왕생한다는 수행 모임인 만일회의 시초이다.
(좌)관음보살, (중)아미타불, (우)대세지보살
포대화상
당나라 시대 전설적인 승려이다. 항상 포대를 들고 다니면서 시주받은 음식을 포대 안에 넣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배가 나오고 대머리가 특징이며 미륵의 현신이라고도 여겨졌다. 포대화상의 배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석주(龍蛇活地 放生塲界)
연지(龍과 蛇이 살아 숨쉬고, 물짐승과 산짐승이 자유롭게 살아간다)
매화
왕소나무
山神閣
건봉산 산신
탬플스테이
寂滅寶宮
현판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 치아사리탑
獨聖閣
독성은 하얀 수염과 긴 눈썹을 한 신선 같은 노인으로 나반존자이다, 16 나한 중 한 분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능파교(보물 제1336호)
건봉사의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는 홍예교 폭 3m, 길이 14.3m, 중앙부 높이 5.4m이다. 능파고신창기에 의하면 조선 1708년(숙종 35)에 축조 영조 때 개축 고종 때 중수하였다고 한다.
건봉사 전경 (대웅전 일원)
鳳西樓
十波羅蜜 석주
대승불교에서 보살이 실천해야 할 열 가지 덕목(布施, 持戒, 忍辱, 精進, 禪定, 般若, 方便, 願, 力, 智)을 말한다.
봉서루 '金剛山乾鳳寺' 현판
2층누각
대웅전 전경
사월 초파일 연등
大雄殿
(좌)문수보살, (중)석가모니불, (우)보현보살
冥府殿
명부는 지장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애쓰고 시왕들이 죽어서 다음 생애 어디로 갈까를 심판하는 곳이다.
지장보살과 시왕
건봉사를 둘러싸고 있는 산을 건봉산이라고 한다. 건봉산과 경계지역 등공대 입구에 있는 작은 연못이다. 일부러 물을 가두려고 연못을 판 것 같다. 불교식 합장물(진또배기)을 설치하여 운치를 더했다.
등공대 (해탈의 길)
천 년 전 만일 동안 염불에 정진한 31명의 스님이 극락왕생했다는 곳이다. 등공대는 금강산 끝자락 왕복 4km DMZ에 위치하고 있어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가 없고 종무소에 미리 신청하여 인솔자에 의해 출입할 수가 있다고 한다.
장군샘은 사명대사 때부터 있던 샘이라고 한다. 사명당과 얽힌 이야기가 있는데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주변에 흔한 등산로 약수터 같다. 물 맛은 좋았다.
장군샘
매화
카페 & 찻집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는데 1 시간 여 걸렸다. 적명보궁 친견에는 관리인의 참견이 많아 불편했고 부처님 진신사리는 멀리서 보게 하고 사진도 못 찍게 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전각들은 6,25 전쟁 이후 복원한 것들이라 신기한 줄 몰랐고 일주문, 팽나무, 왕소나무가 전쟁의 화마를 피했다니깐 자랑스러웠다. 옛날에 수행 스님, 시인 묵객, 여행자들이 금강산 찾아가면서 금강산 최남단에 있는 건봉사에서 묵고 갔다던 그 얘기가 아름다웠고 나는 그곳까지 간 것만으로 충분했다.
2025년 04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