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08 사찰/영월 사자산 법흥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답사

안태수 2024. 12. 1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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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산은 닫히고 대신 적멸보궁 참배

 

이번 답사는 사자산이 목적이고 법흥사는 뒷전으로 사자산 등산로가 막히는 바람에 법흥사를 참배하게 되었다. 법흥사는 오도 가도 못하는 무릉도원 사자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2017년 1월 9일 백덕산 겨울 등산을 마치고 하산길에 답사를 했었다. 그때 기억이 하도 생생해 그동안 변화가 있었는지 꼼꼼히 챙겨볼 작정이다. 사자산 백덕산 삼거리에서 차를 세워 산을 휘 돌아보니 산은 그대로이고 골짜기도 변함없는데 달라진 것은 상가, 펜션, 캠핑시설, 전원주택 등이 길가를 빈틈없이 채워 주변 환경이 많이 달라져 보였다.

    

獅子山法興寺 一柱門

부처님 뵈로 가는 길 일주문부터 금강문까지 약 1,2km, 여기서부터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하는데 세월이 좋아 차로 달린다. 아침 이른 시각 한산한 도로를 걸음걸이 속도로 천천히 달린다. 지나고 나면 다 아까운 풍경들 하나라도 놓칠세라   

 

청송 캠핑장 느티나무

   

 

사자산 연화봉 모습 어딘가에 연화장이 있다던데 숲에 가려 보이질 않고   

 

아직 단풍이 들려며는 이른 진입로

 

절 가까운 탐방로엔 단풍이 찾아들고 있다. 

 

법흥사 주차장

무릉도원이라는 오지를 무색게 하는 법흥사 주차장 주차 공간이 만포장이다. 

법흥사 전경

 

법흥사 전각 안내도

 

金剛門과 圓音樓 

 

원음루 사물 (법고 운판 목어)

 

칠엽수 단풍

 

단풍나무 단풍

 

음수대

사자가 토해내는 산수를 연꽃 물확에 담았다가 돌확으로 내려보내 만물의 생명수가 되나니... 

 

極樂殿

법흥사는 신라 자장율사(590~658)가 643년(선덕왕 12)에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사리와 가사 1벌을 가지고 돌아와 연화봉에 사리를 봉안하면서 흥녕사로 창건한 절이다. 그 후 징효대사(826~900)가 선문을 열고 크게 중흥하다가 병화(兵火), 화재(火災), 중건 등을 반복하여 오다가 천여 년 동안 폐사 상태로 남아있는 것을 1902년 대원각스님에 들어와서 법흥사로 개명하고 적멸보궁 등 지금의 모습으로 대불사가 이루어졌다.    

 

극락전 관음보살(좌), 아미타여래(중앙), 지장보상(우)

 

祖師殿

 

조사전 지장율사와 징효대사 영정

梵鐘閣

 

三聖閣

 

삼성각에는 독성(좌), 칠성(중앙), 용왕(우)을 모셨다. 산신을 산신각으로 따로 모셨으니 산신 자리에 용왕을 모셨다.  

 

징효대사보안탑비 (보물 제612호) 

이 비석은 징효대사의 탑비로 994년(혜종 1)에 세웠다. 징효대사는 통일신라 시대  황해도 봉산 출신의 신라의 승려로 이름은 절중( 折中 826~900), 시호는 澄曉, 탑호는 寶仁이다. 흥녕사에서 구산선문 사자산파 선종을 일으킨 칠감선사 도윤의 제자로 882년(헌강왕 8) 사자산 흥녕사(舊 법흥사)에 머물렀다. 비문은 최언위가 짓고, 글씨는 최윤이 쓰고, 최환규가 새겼으며 효공왕이 시호와 탑호를 내린 것이 기록되어 있다.     

 

징효대사 부도

 

만다라전 전각을 헐고 그자리에 애기를 안고 있는 새로운 불상을 세웠다. 부처님의 명호가 없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적멸보궁 입구

 

적멸보궁 참배길은 예나 다름없이 우거진 금강송 사이로 약 4~500m 시멘트 포장길과 돌계단을 오르며 연화봉을 올려다보며 한바탕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한다. 참배길에 감로각에서 기념으로 식수를 한 모금 마시고 약사전, 산신각을 차례로 들렸다가 마지막 적멸보궁 마당으로 올라선다. 

 

약사전 지붕 위로 연화봉 모습도 보고

 

약사전 문패

 

藥師殿

 

약사전에는 두 분의 부처님이 계시는데 약사여래와 무명부처님

 

山神閣

 

산신각에는 백덕산 女산신(좌), 구봉대산 산신(중앙), 사자산 산신(우)을 모셨다. 

 

보궁길

 

구봉대산 연릉 전망

 

적멸보궁 전경

 

寂滅寶宮

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시기 때문에 불상이나 불화 같은 것은 없고 사리도 건물 내부에 안치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밖에 사리탑이나 제단 같은 것을 만들어 모시기 때문에 그쪽 벽면은 펑 뚫어 놓는다.

 

적멸보궁 지장율사 수행 토굴

자장율사(慈藏:590~658) 토굴이라고 한다. 석분(石墳) 형식으로 외부는 흙으로 봉분을 쌓고 내부는 석실 형식으로 190㎝×150㎝×160㎝ 크기에 사방으로 돌을 쌓고 천정에는 한 판의 돌을 얹었다. 자장율사는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사리와 가사 1벌을 가지고 돌아와 국내 불교 성지가 될만한 장소를 골라 사리를 봉안하고 적멸보궁을 창건했다. 5대 적멸보궁은 자장율사와 연관을 맺고 있다. 

 

지장율사 사리탑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적멸보궁 돌아 나오는 길에 법흥사 후경이다. 만다라전 자리에 이름 모를 부처님 입상이 서 있고

 

마당 입구에 못 봤던 포대화상을 모셨다. 아직 흰 화강암이 빛나는 것을 보면 불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다.

 

법흥사 원음루 주변 가을 단풍

답사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에 과수원 입구에 나 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노인이 사과를 팔고 있었다. 과수원 주인처럼 보였다. 한 보따리에 만 원 사과를 보니 보기만 해도 이맛살이 찌부러지는 홍옥이었다. 시어 포기한다니깐  이해한다고 한다. 말 나온 김에 사자산 등산로 백덕계곡과 법흥사 산신각 뒤 등산로가가 막힌 이유를 물었다. 법흥사 스님은 막무가내로 부처님의 산이라고 통제를 한다고 하는데 야릇한 미소를 띠며 옛날에는 등산로가 있었는데 적멸보궁 뒤 연화봉에서 절 쪽으로 돌이 굴러 떨어져 他敎의 소행으로 여기고 폐쇄했다고 한다. 훗날 전설이 될뻔한 얘기다.        

 

 

 

 

 

 

2024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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