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을 마치며
내년이면 70이다. 이 나이에 혼자 백두대간을 완주했다면 다들 놀랄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두 사
람이 젊었을 때 친지들과 어울려 종주를 마쳤다. 한 사람은 벌써 고인이 되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나의 백
두대간을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만날 때마다 "지금 어딜 가고 있지" 하며 같이 추억에 잠긴다. 처음부터 백
두대간을 목표로 산행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은퇴 후 소일 삼아 시작한 서울 근교 청계산, 관악산, 북한산
산행이 발전하여 우리 명산 100 답사를 계획하게 되었고 답사 순서를 정하는 과정에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높은 산부터 시작하자였다. 소백산, 지리산, 설악산을 등산하면서 단지 정상만 갔다가 올 것이 아니라 주
변 능선을 연계하여 걷는 것이 더 뜻깊지 않을까 하여 구간을 정하다 보니 그게 백두대간길이 되고 말았다.
혼자 백두대간을 한다. 처음엔 의논할 상대도 없었고 그리고 꼭히 종주를 마쳐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었기
때문에 소위 시늉이라도 내어보자는 것에 불과했다. 대간 진행 방향을 정하고 언제라도 포기한다는 전제 아
래 따뜻한 남쪽부터 시작하여 북진하기로 하였고 기간도 70이 되는 해까지 3년으로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구례 지리산 성삼재에서 들머리를 찾으며 본격적인 백두대간이 시작되었다.
미시령 휴게소
속초에서 1박 하기로 숙소를 예약한 상태에서 미시령 터널길을 버리고 미시령 옛길로 간다. 친구에게 미
시령의 척박함도 소개하고 내일 새벽 나를 데려다 주는 지점을 알리기 위함이다. 고기압 맑은 날씨에 바
람이 강하다. 따뜻한 차 안에 있다가 밖을 나오니 초속 20여 미터의 걷기가 힘들 정도의 찬바람에 깜짝 놀
랐다. 미시령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고갯마루 중에서 폭설로 길이 제일 먼저 차단되는 곳으로 지금은 터널
이 생겨 고갯마루에서 잠시 쉬어가던 휴게소도 옛 영화를 뒤로 한 채 허물고 빈집이 되어 철거를 기다리고
있는 신세이다. 건물 곳곳에는 출입을 금지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미시령 전경
(07:10) 백두대간 미시령~진부령 마지막 구간을 응원 나온 후암과 우보
호텔에서 새벽 6시 30분 나와 7시 미시령에 도착했다. 후암과 우보는 나를 미시령까지 데려다 주고 내가
진부령에 도착할 시간에 맞추어 진부령에서 간단한 환영식을 해 주기로 했다. 그 사이 둘은 속초 관광을
한다. 속초 지방의 오늘 최저 기온은 영상 4도인데 현재 체감 온도는 영하, 어제 불던 바람이 지금까지 분
다. 강풍에 잠시 서 있는 것 조차 버거울 정도 다들 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 싶은 심정이다. 마침 옆에 트럭
기사가 차 안에서 식사하고 있어 셋이 기념사진을 부탁할 수가 있었다.
미시령 출발점
대간령까지 출입이 금지된 상태이다. 법을 어기지 않으면 완전한 백두대간 종주는 불가능한 일이다. 안내
문에는 백두대간 종주가 자연을 훼손하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산악인의 백두대간 종주를 무조건 막을 것
이 아니라 올바른 상식을 갖도록 일께우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정한 폭의 백두대간 탐방로를
조성하여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허용하는 정책을 기대한다.
백두대간 미시령 전경 트럭과 우보차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후암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요산의 북진 장면은 귀한 사진이 되겠다. 누군가 지켜보고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는 든든한지 발걸음이 가볍다.
825.7봉에서 미시령 황철봉 능선 조망
미시령에서 상봉 정상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하얗게 페인 등산로가 거의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것이 보
인다. 북서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힘겹게 산을 오른다. 손이 시려워 스틱도 접어 넣고 재킷에 달린 후드로
얼굴도 감싼다. 한 줄 등산로를 따라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히 걷는다.
825.7봉에서 백두대간 상봉 진행 방향
허리 높이의 관목灌木만 간신히 자라고 있는 마루금은 척박한 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6.25 전쟁의 화상에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지 전 국토 산림녹화 사업이 한창일 때 이곳만 피해 갔나 본다. 너덜과 바위만 앙상
히 드러나 있다. 대간을 걸으면서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은 우리 국토의 푸르름이다. 5~60년 전 우리가 살던
주변 산들은 벌거숭이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가 산림이 황폐해지기 시작한 시기는 조선 중기까지 거슬
러 올라간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산림 수탈, 6.25 전쟁의 폐허, 정부의 산림정책 소홀, 심는 나무보다 베는
나무가 더 많았다. 산림을 가꾸는 일이 잘 사는 나라가 되는 길이라는 것을 온 국민이 깨닫게 하고 실천한
지도자가 나타남으로 지금 우리는 푸른강산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인공조림의 성공한 사례는 독
일과 영국 그리고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나는 아직 산에 나무 한 그루 심어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울산바위, 서북능선, 대청, 중청, 설악이 제대로 보인다. 설악산을 한 눈에 볼려며는
설악을 벗어나야 하는데 설악의 북쪽 끝자락이 안성마춤이다. 설악은 한 눈에 들어오고 향로봉은 금강산
권역으로 우뚝 선다.
길 중간에 큰 바위 덩어리가 하나 있고 좌측으로 대간을 알리는 리본이 몇 개 달려 있다. 이쯤에서 우측으
로 샘터가 있고 화암사 가는 길이 있는 모양인데 확인 못하고 내 갈 길로 간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지역으로 입산을 금지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곳곳에 조사한 흔적으로 흰 천
이 땅에 꽂혀 있는데 이 부근이 아마 격전지였는 모양이다.
백두대간 황철봉 능선과 멀리 대청, 중청, 서북능선 조망
기암
상봉 직전부터 군데군데 너덜이 깔리며 작은 봉들은 너덜로 꽉 채워져 있으며
너덜의 규모는 황철봉과 비교가 안되지만 돌들의 크기는 황철봉과 막 먹는다.
신선봉 방향으로 암릉이 형성되어 있는데 동쪽 사면은 바위를 들어내며 절벽을 이루고 서쪽 사면은 흙으
로 덮여 있는데 그쪽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상봉 서쪽 사면 너덜지대
상봉 직전 헬기장
(08:50) 상봉(1,242m) 도착
상봉 정상석과 기념촬영
강풍을 견디지 못하고 필요한 사진만 급히 찍고는 쫓기듯 내려온다. 정상 아니더라도 바위산이라 시야를
가리는 게 없어 능선 전체가 훌륭한 조망처로 산행 중 내내 아름다운 풍광을 즐긴다.
첫눈을 본다. 앞서 간 발자국이 선명하다.
신성봉 조망
마산봉, 향로봉 조망
상봉 북동쪽 사면은 엄청난 너덜지대
작은 너덜지대 통과하고
(09:40) 화암재 좌측으로 마장터, 소간령, 용대리 갈림길이다.
(09:40~10:00) 바람이 하도 세게 불어 쉼 없이 달려왔다. 물도 마셔야 하고 허기지기 전에 밥도 먹어
야 한다.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지 못해 멀리까지 왔다. 큰 바위가 바람을 막아 주는 양지바른 곳에 낙엽을
걷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며 버너에 물을 끓인다. 수프와 샌드위치 커피가 아침 메뉴다.
신선봉을 둘러싼 너덜
신선봉 정상 모습
아침을 먹고 있을 때 내 앞을 지나가는 중년 남녀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산에서 만나면 통상하는 질문
은 언제 어디서 출발했느냐가 관심거리다. 이른 아침부터 백두대간을 걷는 것을 보면 종주하는 사람이 틀림
없으며 마지막 구간 진부령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한다. 새벽 4시에 미시령 도착하여 7~8명의 국립공원 감시
요원들에 의해 입산이 저지당해 먼저 와 있던 단체팀과 같이 현장을 떠났다가 날이 밝고 다시 와서 감시 요
원이 없어진 틈을 이용해 출발했다고 한다. 다행히 내가 출발할 때는 감시요원이 철수하고 난 후였던 모양
이다. 단체팀들은 황철봉 쪽으로 남진했는지 나를 추월하지는 않았다.
(10:40) 신선봉(1,204m) 도착
신선봉 표지판과 기념촬영
신선봉에서 백두대간 상봉 방향으로 조망
마산봉, 향로봉, 금강산 조망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 도원 저수지와 동해
속초시 동해
신선봉을 내려서니 그렇게도 야단스럽게 따라다니던 너덜은 자취를 감추고
신선봉 아래 큰 바위 조망
마산봉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별천지에 뚝 떨어진 기분이다. 작은 떡갈나무와 진달래가 숲을 이룬 가운데
잣나무가 점점이 들어서 있고 햇빛이 거침없이 쏟아지니 졸음이 찾아온다. 오후가 되니 바람도 많이 잠잠
해지고 기온도 많이 올라 봄 날 같다.
1,094봉(헬기장)
마산봉이 점점 가까워 진다.
(12:00) 대간령(큰새이령)
대간령은 속초, 고성 도원리 방면에서 용대리 인제로 넘어가는 고개로 미시령보다 고개가 낮고 진부령보
다 길이 가까워 옛날에는 동서를 잇는 주요 통로였다. 젊은 남녀가 속초에서 출발하여 마장터, 소간령 넘
어 용대리로 간다면서 고개에서 만났다. 백두대간 완주 마지막 구간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 소개 했더니
백두대간 정기를 받고 싶다면서 달려와 악수를 청한다.
채윤봉 조망
채윤봉(890봉)을 알리는 표지판에서 우회로로 가면 채윤봉에서 내려서는 암봉 삼거리와 바로 만나고 너덜
바위를 기어오르면 채윤봉 정상에 오른다.
너덜로 둘러 쌓인 채윤봉
채윤봉, 암봉, 890봉 봉을 하나 두고 세가지 명칭을 쓰고 있다.
암봉 삼거리 이정표
평편하고 넓은 구릉지를 형성한 경사면
이런 곳에서는 자칫하면 길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낙엽이 등산로를 덮고 있어 길 가늠이 쉽지 않다. 한
중앙에 서면 뚜렷한 목표물이 없어 방향 감각도 상실한다. 쉬었다가 일어서면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하기
일쑤다. 고치령 지나 자개봉 갈림길에서 대간을 놓여 자개봉을 두 차례 왕복하면서 3시간을 산속에서 헤
맨 적이 생각난다. '거 길이 거기고 거 길이 거기였다'
새로운 이정표
점심(13:30~14:00) 병풍바위 직전 계단 입구에서 점심을 먹는다. 일회용 햇반+황태국을 1인용 코펠에
물을 끓인 후 넣어 다시 5분 정도 더 끓이면 훌륭한 황태국밥이 된다. 뜨거운 국물이 속에 들어가니 피로
가 확 풀린다. 끓는 물을 보온통에 담으면 5시간까지 약 70도를 유지한다. 그런데 뜨거운 물로 조리하는
1회용 음식들은 70도에서는 설 익어 먹기가 그렇다. 보온통은 짧은 산행에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긴 산행
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요즘 캠핑용 물 끓이는 컵과 작은 버너가 좋은데 산중에선 취사 금지품목이라 안
타깝다.
병풍바위 도착
병풍바위 배경으로 기념촬영
병풍바위 모습
병풍바위에서 마산봉은 1km 거리
마산봉 이정표에는 진부령 팻말은 없고 알프스리조트 1.9km, 흘리 2.5km 두 팻말만 붙어 있다. 흘리에 알
프스리조트가 있는데 각각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마산봉에 올라 지형을 살핀다. 미시령에서 이곳까지
대간 머루금이 훤히 들어나 있는 길을 큰 어려움 없이 쉽게 왔다.
(14:30) 마산봉 도착
마산봉 정상석(1,052m)
마산봉 정상석과 기념촬영
고성군 간성읍 흘리 마을은 마산봉 서쪽 사면 거대한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다. 흘리 일대가 리조트로 조성
되면서 스키장과 관련된 시설물과 편의시설이 들어서 백두대간 마산봉 진부령 구간은 스키장에 묻히고 말
았다. 진부령이 어디쯤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진부령은 마산봉과 향로봉을 가르는 잿길인데 고갯
마루가 분지에 묻혔으니 고개라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다. 아마도 마을 뒤쪽 산자락이 진부령인가 본다. 마산
봉과 향로봉을 기준으로 달려와서 마산봉에 도착하면 백두대간은 서쪽으로 꺾어 급경사를 이루며 리조트를
지나 마을을 관통한 후 진부령에서 맞은편으로 곧장 난 군사도로를 따라 능선(칠절봉)으로 올라 우측으로 길
게 뻗는다. 능선 끝자락은 남한의 최 북단으로 향로봉이 지키고 있다. (진부령에서 향로봉 18km)
마산봉 정상에서 지도를 보며 하산길을 정한다. 알프스리조트로 가는 길은 오던 길로 다시 내려서야 하며
흘리는 정상을 통과한다. 흘리 방향으로 반듯하게 조성된 등로를 보며 단번에 대간으로 생각해 버린다. 이
쯤에서 백두대간 산꾼들의 리본이 요란하게 달려있을 법한데 안 보이는 게 마음에 걸린다.
흘리 2.3km
산죽으로 잘 가꾼 등산로
훌륭한 표시목
넓은 평원과 만나면서 억새풀 사이로 뜨문 뜨문 가옥이 나타나며 멀리 향로봉 능선이 한 줄로 길게 늘어
선다. 이길로 쭉 가면 향로봉과 만날 것만 같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이탈했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등로 옆에 백두대간을 보호하자는 현수막이 걸
려 있는 것을 보고 지금 대간길을 가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드디어 흘리마을 입구 도착하여 마산봉(2.5km)을 라는 표지판을 만난다.
옆에 쓰러진 등산 안내도를 보면 흘리마을은 진부령을 기준으로 중앙에 알프스리조트가 있고 현 위치는 흘
리마을 끝에 해당하는 곳이다.
임도와 차도를 따라 진부령 방향으로 약 2km 이동하여
알프스리조트와 경계를 이루는 대간 마루금을 만났다. 강원도 고성 진부령 마산봉 서쪽 자락에 조성된 알
프스리조트는 일제강점기에 스키장으로 운영하던 곳으로 1976년 정식으로 개장하여 2006년 경영악화로
문을 닫으면서 방치한 상태 지금은 새로운 인수자가 나타나 개장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백두대간 마루
금은 마산봉 직전에서 알프스리조트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리조트 건물(콘도)을 기준으로 내려오면 이
곳에 도착한다. 나는 마루금을 크게 우회해서 도착했다.
알프스리조트 경계 지점에 있는 이정표에 드디어 진부령 표기가 등장한다. 마산봉에도 표기하면 어디
덧나나?
백두대간 종주 기념공원
백두대간 대장정의 종착지가 몇 발자국 안 남았다. 그토록 가볍던 걸음이 천근만근 긴 나락에 빠진다. 심
한 울렁증이 나타나 속에 있는 것을 다 토해버릴 것만 같다. 백두대간이라는 끈을 붙들고 정신없이 달려왔
는데 목적을 이루고 난 뒤의 공허함이란 시작할 때의 두려움보다 더 무섭게 느껴진다. 아는 사람들은 '국내
큰 산 끝나면 해외로 원정 가야지' 독려하고 친지들은 산을 조금 낮추기를 권하며 식구들은 혼자 하는 등산
을 못하게 한다. 모두 나를 위한 배려의 말들이지만, 내 귀에는 경 읽기다. 마지막 설악 진부령 구간을 남겨
놓고는 10월 한 달 설악산을 구석구석 다녔다. 설악에서 다음의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아무것도 결정한 것 없이 진부령에 내려선다.
(15:50) 진부령 도착
진부령 정상 모습
종주 마치는 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혼자 마칠까 생각했다. 그동안 블로그와 카페에 산행기를 올려 주변
사람들은 다 안다. 가까운 사람들은 마지막 구간을 남겨 놓고 있다는 것도 안다. '축하 행사해야지' 하며
덕담을 건넨다.친구 중 厚巖과 牛步는 적극적으로 환영하며 진부령 행사를 주관하겠다고 나섰다. 처음에는
가족 중심으로 행사를 갖기로 계획했는데 큰며느리의 임신, 둘쨋집 손녀의 감기 등으로 가족 참여가 어려워
져 결국 후암과 우보의 행사로 귀결되었다. 가족보다 더 만만한 게 친구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진부령 표지석
후암과 우보가 제작한 현수막
현수막을 들고 환영 나온 후암, 우보
기념 촬영
한마디로 시원섭섭하다. 백두대간 준비하느라 분주하던 일상에서 해방되니 시원하고 뚜렷한 목표가 사라
지니 섭섭하다. 돌이켜 보면 산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대표적인 거 하나만 소개
하면 겁이 없어진 것이다. 마을과 멀리 떨어진 산속을 시도 때도 없이 혼자 들락거리려면 더위와 추위 눈과
비 그리고 어둠에 익숙해져야 하며 동식물과도 친해져야 한다. 한마디로 자연과 함께 사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겁을 몰아내는 비결이라 생각한다. 백두대간 마치면 세상 두려울 것이 없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나도 늦게나마 겁이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2015년 10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