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철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등산을 막 시작해서 서울 북한산, 관악산, 청계산 몇 번 오른 실력으로 백두대간 소백산 구간 (죽령~고치령)
도전에 나선 것이다. 처제가 선물한 백두대간 안내 책자를 읽으면서 무슨 뜻인지 모르는 내용이 많아 우선
중요 지명과 거리, 소요시간만 메모하고 출발했다. 희방사를 기점으로 연화봉, 고치령까지 가는 산행이었다.
지금 같았으면 당연히 죽령을 출발점으로 했을 건데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봉사 문고리 잡기 식이었다.
지나고 난 후 늘 찜찜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그때 빠트린 죽령~연화봉 구간을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홀가분하게 간다.
풍기온천리조트는 경북 영주시 풍기읍 희방사역과 풍기읍 중간쯤으로 연화봉을 뒤로하고 도솔봉 옥녀봉을
전망으로 하는 위치가 좋은 곳에 온천과 호텔을 같이 하고 있다. 풍기에서 하룻밤 더 머물러야 하므로 잠 잘
곳을 정해야 한다. 숙박은 언제나 민박, 여관, 모텔, 펜션 順이었으나 민박, 여관, 펜션은 멀리 있고 가까이는
모텔과 호텔이 있다. 풍기호텔은 숙박비 80,000원, 모텔은 전번 기억으로 50,000원 정도, 택시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돈 합치면 호텔에서 편히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호텔을 숙박지로 결정한다.
온천을 마치고 나오니 온천에 딸린 식당은 문을 닫고 있었다. "어디서 식사할 수 있습니까.?" 호텔 정문을
나가 풍기 쪽으로 5분 정도 가면 주유소와 식당을 겸하고 있는 "왕갈비집"을 가리켜 준다. 보슬비를 맞으면서
식당에 도착해서 왕갈비탕을 시킨다. 산에서 내려오면 항상 몸 안에 갈증이 남아 있기 때문에 국물 있는 음
식이 땡긴다. 갈비탕에 깍뚜기 국물을 부우니 느끼한 속이 확 달아난다. 내가 마지막 손님으로 주인장은 내가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비오는 길 호텔까지 태워주며 백두대간 무사히 마치기를 기원한다는 인사
말까지 남긴다.
죽령 제2연화봉 입구
오늘 산행 거리는 죽령에서 연화봉까지 7km, 연화봉에서 희방사 주차장까지 3.7km 약 11km다. 쉬어 가도
5시간이면 충분하다. 모처럼 좋은 방에서 시간에 쫓기지 않고 푹 자고 호텔 식당에서 황태국으로 아침도
잘 먹었으니 오늘 산행은 최상의 조건에서 시작하는 셈이다. 죽령까지 풍기 택시를 불러 20,000원에 도착
한다. 일기예보는 오후부터 갠다고 하고 오전에는 구름 많고 약간의 비 소식도 같이 한다.
죽령휴게소는 해발 696m 그리 높은 고개는 아니지만, 남북으로 큰 산을 끼고 있어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휑하게 날려가는 느낌을 준다. 빗방울도 떨어지고 바람도 세차게 불고 얼른 산속으로 몸을 피하기로 한다.
휴게소 가게를 연 곳(동갑 할매)은 한 곳 점심으로 마죽용으로 마 가루(미숫가루처럼 타고), 스포츠음료,
생수를 사서 출발한다.
정상에는 소백산천문대와 소백산강우레이더관측소 두 기지가 있다.
(09:30) 국립공원 소백산 죽령 탐방지원센터
공단 직원으로부터 산행 설명과 등산지도 챙기고 기념촬영까지 한다.
반사경에 내 모습도 비춰 보고
소백산 야생화 공부도 한다.
이야기 쉼터
국립공원 소백산 안내 표시목
제2연화봉까지 4.3km 포장도로 오르막 연속이며 뱀이 기어가듯 정상까지 구불거린다. 사방을 아무리 살펴
봐도 포장도로를 피해 갈 만한 길은 어디에도 없다.
잣나무 쉼터
영산홍 색갈을 분홍에다 밝은 빛을 섞으니 유리처럼 투명하고 곱다. 주변에서 자주보는 종류 같고 일부러
심은 것 같은데 높은 지대에 서식하면서 하늘을 닮아 가는 모양이다.
바람고개 전망대
아침에도 '응가'가 나올 낌새가 없었다. 나같은 경우 이틀에 한 번 정도 양이 제법 많은 응가를 보는데 산에
만 오면 무엇에 놀라 긴장을 하는지 영 신호가 안 온다. 죽령에도 공중시설이 있고 탐방센터에도 화장실이
있는데 그때 까지 기별이 없던 것이 오르막을 몇 차례 돌고나니 뱃속이 용트림 같이 요동을 친다. 언제까지
참을 수 없는 노릇, 적당한 곳을 물색하면서 위로위로 계속 올라간다. 이른 시간이라 뒤 쫒아 올 사람도 없고
장소만 택하면 되는데 마땅한 곳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쉼터 안내물을 설치 해논 데크 끝에서 일을 치르면
보기도 편하고 뒷처리도 간단할 것 같아 주위 낙옆을 끍어 모아 멘땅에 닿는 일을 방지한다. 오래 참았던
'응가'라 단번에 바가지만큼 쌓였다. 그것도 단단한 놈으로, 그 위 낙엽을 덮고 발로 가볍게 밀어보니 말똥
처럼 구르며 주위의 낙엽을 눈 뭉치듯 뭉친다. 벼랑까지 몰고가 내안의 찌꺼기를 자연의 품으로 돌려 보냈다.
일기예보대로 파란 하늘이 열리고 강우레이더관측소가 관측된다.
소백산 남쪽자락 도솔봉은 구름속에 쌓여있는 형국
(11:10) 제2연화봉(1,357.3m) 도착
제2연화봉 이정표
이정표 안내대로 산상전망대와 강우레이더관측소를 방문하기로 한다. 평생에 한번 있을 기회인데 게으른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면 "그거 보면 뭐하노" 하며 발길을 붙잡는다. 왕복 800m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을거
라고 믿고 올라간다.
소백산강우레이더관측소
산상전망대
산상전망대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면 죽령에서 시작해서 제2연화봉 거쳐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으로 가는
길이 좌우로 뚜렸하다.
제2연화봉에서 연화봉 넘어 가는 길은 노폭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멘트 포장 대신 쇄석한 작은 돌로 연화
봉 천문대까지 깔아 놓았다.
제2연화봉 철쭉
연화봉 방면
뒤 쫓아오던 사람이
앞지른다. 국망봉까지 갈려면 빨리가야지
소백산천문대 정문
첨성대처럼 지은 천체관측소 야간 근무 후 취침 시간이라 관람은 불가했다.
소백산천문대 연구동
연화봉 가는 길
길 양 옆으로
만개한 철쭉이
사람의 혼을 흔들고
단양 천동쪽 산기슭은 철쭉이 자리잡고
(12:40) 연화봉(1,383m) 도착
희방사쪽에서 정상에 막 도착한 사람들의 탄성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백두대간은 제1연화봉 비로봉 국망봉으로 이어지고
제2연화봉은 철쭉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이다.
연화봉 이정표는 멀리 비로봉을 4.3km 가리키고
(13:00) 희방사로 하산하는 길은 철쭉이 무리 지어 화사하기 그지없다.
철쭉 감상
철쭉터널
머리에 이는 철쭉
(13:50) 어느새 희방 깔딱고개 고개는 700m 오르 내림이다.
나라안에서 소문난 희방 깔딱고개(上) 오늘까지 포함해서 세 차례나 지난다.
깔딱고개(中)
깔딱고개(下)
깔딱고개 끝나는 지점
(14:10) 희방사 대웅전
喜方寺 마당에 전나무, 삼나무 스님에게 물어 보고
지장전은 인간의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곳답게 음침하게 웅크리고 있다.
(14:40) 희방폭포
희방폭포 계곡은 처음에는 머리에 헤드램프 키고 야간 통과, 두 번은 희방사 입구까지 차를 몰고 가는 바람
에 계곡의 심장부는 먼발치, 이번에는 제대로 계곡 따라 걸어 본다. 계속되는 가뭄 때문에 하산 길에 만나는
사람마다 폭포 수량을 물어보니 볼만하다는 대답이다. 위에서 물을 조절하는 장치가 갖추어진 모양이다.
주차장까지 시내버스는 올라오지 않고 희방삼거리 죽령 올라가는 입구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걸어서 30분 거리 버스는 한참 기다려야 하고 택시 기사가 슬슬 꼬신다. 막판에 큰돈 한 번 더 쓰자.
20,000원에 풍기역까지다. 풍기역 앞 "인천청국장"은 "한결청국장"으로 상호만 바뀌고 모텔을 고쳐서 개업한
목욕탕에서 혼자 목욕을 한 후 풍기 인견시장에서 사각팬티를 싼다. 값도 싸고(15,000원 전후) 촉감도 좋다.
소위 입은 둥 마는 둥 하다. 이제 서울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풍기터미널, 영주터미널 결과적으로 말하면
영주에서 출발하여 풍기를 거쳐 가는 과정이다. 풍기터미널에서 약 1시간 기다려 서울강남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탄다.
2014년 5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