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명山 100/광양 백운산

광양 백운산 (진틀~신선대~상봉~억불봉~노랭이봉~동동) 종주

안태수 2014. 3. 2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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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최고봉으로 백운산 이름 중 최고의 명산

 

남도 마지막 길이라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하다. 오후 1시 반 점심을 거른 채 강천산을 나왔다. 가다가 떡갈비나 대나무통밥 집을 만나면 들르기로 한다. 지나오면서 비슷한 식당들이 보였지만 주차장은 텅 비었고 손님도 없어 보여 그냥 지나쳐 순창읍까지 왔다. 어딜 가던 초행이라 한눈팔 수가 없어 네비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순창 IC에서 88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순창 IC는 진입로는 두 군데가 있다. 첫 번째 진입로를 들어서는데 네비가 난리 친다. 회차로가 안 보여 뒤따르든 차들의 양보를 받아 후진으로 처음 자리까지 와서 네비가 지시하는 데로 갔더니 또 진입로가 있다. 둘 다 이름이 같다. 진입로를 들어서면서 도로 구조를 살펴보니 요금소에서 같이 만난다. 남원휴게소에서 점심 메뉴를 고르다가 돈가스를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고 따라 시킨다.

남원분기점에서 순천~완주 고속도로로 타고 순천분기점에서 남해안 고속도로로 바꿔 광양시 외곽에서 옥룡면 백운산 방향으로 향한다. 백운산은 남해안을 끼고 있는 산중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 운전 내내 시야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남쪽 자락에는 원만한 경사면에 넓은 평지가 형성되어 햇볕도 골고루 하루종일 든다. 사람이 살기 좋은 곳. 산이 점점 가까워지니 길도 좁아지고 고개도높아지며 차는 산기슭을 기대이듯 스쳐 간다.

 

 

(16:00) 청송민박 투숙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동동마을)

정원을 잘 가꾼 집이라 단번에 눈에 띈다. 주인장을 찾아서 하룻밤 숙박과 저녁, 내일 점심을 부탁하니 난색을 한다. 지금은 고로쇠 채취 철이라 일손이 부족해 방문객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한다. 산에서도 자는데 바람 막고 등 붙이고 이불 떼기 하나면 충분하며 음식은 주인장 식사에 밥 한 공기 숟가락만 걸쳐주셔도 괜찮습니다. 기타 조건을 다 없애니 승낙한다.

 

 

 (7:20) 동동(東洞) 버스 정유장

별채는 관광철에 식당으로 쓰는 방이다. 집안 전체를 나무보일러로 난방하는 구조다. 보일러실이 바로 옆에 있어 나무 타는 냄새가 향기롭다.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나무 타는 냄새가 방안 가득 베여 있고 나무가 흔해 종일 불을 지펴 온돌은 찜질방처럼 뜨끈하다. 짐을 내려놓고 길게 누우니 피곤이 확 가신다. 저녁 반찬으로 굴비 두 마리가 나왔다. 보일러에서 나온 숯으로 화로를 쓰고 있는데 굴비를 양념하여 석쇠에 얹어 화로에 구웠다. 구수한 냄새가 회까지 동하게 한다. 조그마한 게 몸의 반은 알로 꽉 찼다. 화장실은 바깥에 있고 세면장은 본채에 딸렸다. 번잡하게 굴어서는 안 될 것 같아 볼일을 서둘러 마친다. 방에는 TV도 없다. 산행일지 정리하고 나니 할 일이 없다. 아직 초저녁이지만, 잠이나 자자. 불을 끄니 금방 암흑이다. 앞으로 10시간을 자야 한다. 

  

 

(7:45) 진틀 백운산 들머리 정상까지 3.3km

주인아주머니한데 점심을 받아 배낭에 담고 차는 하산 후 찾아가기로 한다. 東洞 버스정류장에서 진틀까지 가는 아침 첫 버스를 탄다. 버스는 광양시에서 출발하고 동동에서 진틀까지는 10분 거리다. 손님은 나 하나뿐 이 길의 끝은 논실이고 앞으로 한재 넘어 구례까지 길이 날 예정이라고 한다. 진틀은 백운산 가는 능선 툭 튀어나온 자락에 있다. 바람이 많은 곳, 산을 넘어오는 바람과 계곡 바람이 부딪쳐 어디서 부는 바람인지 분간이 어렵다. 대형 펜션, 산장이 눈에 띈다.  

   

 

진틀에서 신선대와 정상의 끝이 지평선처럼 보인다. 지난밤 추위에 정상 주변으로 내린 서리가 눈꽃으로 변해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난다. 마치 仙界를 보는 듯하다. 

  

 

백운산 서울대학교 남부 학술림

학술림답게 나무마다 이름표를 달아 놓았다. 우리나라 산림의 70%가 참나뭇과라 한다. 참나무 종류도 얼마나 많은지 이름은 댈 수 있어도 구분은 아직 못한다. 이름표가 달린 나무는 열심히 쳐다 보고 간다.

 

 

고로쇠 채취용 고무호스를 전선으로 잠시 오해한다.

군 시절 전방 졸병으로 근무할 때 주특기가 통신보급이었는데 선임자가 미적거리고 있는 바람에 보직도 이 사역에만, 끌려다니던 때가 있었다. 한번은 가설병으로 차출되어 와이어 통을 짊어지고 온종일 산속을 누비고 다녔다.

 

 

고로쇠 체취 장면

고로쇠는 단풍나무과로 15년 이상 된 나무에서 채취한다. 체취기간은 경칩을 전후로 짧게는 보름, 길게는 2월 초에서 3월 말까지 채취하며 본디 골리수(骨利水)로 불리다가 어휘 변화를 일으켜 고로쇠로 바꼈다 한다. 고로쇠는 신라 풍수지리설의 창시자 도선국사가 백운산에서 참선을 수행하면서 오랜 좌선 끝에 무릎 통증으로 서기가 힘들어 나무를 짚고 일어서면서 수액을 발견, 수액을 채취해 마신 후 통증이 사라졌다는 얘기가 뼈에 좋은 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고로쇠의 원조는 백운산 일대. 수액은 맑은 우윳빛을 띄며 약간 달짝지근하며 풋풋한 나무냄새가 난다. 많이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 좋은 점을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8:40) 진틀 삼거리에서 신선대 1.2km, 정상 1.4km 백운산 종주를 하려면 신선대 코스를 이용해야 한다. 정상으로 먼저 갔다간 신선대를 놓치든지 아니면 일부러 갔다 와야 한다. 진틀 삼거리에서 정산코스는 계곡을 좀 더 올라가야 하고 신선대는 경사면으로 올라가 능선과 합류한다.

 

 

 능선에 올라서니 맨 먼저 푸른 하늘이 반긴다. 구름 따위는 있으나 마나 푸른 기세에 눌려 하늘색을 띤다. 북쪽 찬바람은 매섭게 불지만, 달아오른 몸뚱어리를 식히는데도 역부족이다.

 

 

신선대 600m

 

 

처음 보는 소나무 이름이 무얼까? '미송' 그냥 '소나무' 흔히 보는 소나무와는 다르다. 전나무와 잣나무처럼 키가 컨데 줄기가 곧지 않고 잎도 하늘로 쳐 들고 있다. 가는 길에 눈에 띄여 기념으로 찍어 본다.

 

 

(9:45) 신선대 도착

 

 

신선대 암봉 모습

바위가 앞을 막고 양옆으로 한재와 정상으로 가는 길만 내준다. 뒤로 물러날 곳이 없어 렌즈의 표현 한계로 평범한 바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나다. 신선대를 알리는 표지목이 바위 바로 아래 있어 신선대 찍었다고 하고 그냥 통과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배낭을 벗어 놓고 카메라만 가지고 암벽등반을 한다. 바위 뒤로 등로를 찾는다. 뒤쪽은 바위 절벽, 바위틈 사이로 길이 있다. 그냥 갔으면 서운할 뻔했다.

 

 

신선대 마지막 계단

 

 

 10여 평 정도 되는 암반 위 너른 공간이다. 바위 사이로 흙이 남아 있어 식물이 자라고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가운데 가장자리로 나가 자세를 낮추어 사방 사진 몇 장 찍고 황급히 내려온다. 구름은 바람에 쫓겨 흔적도 없고 푸른 하늘만 눈이 부신다. 간밤에 서리는 눈꽃 되어 가는 겨울을 붙잡고 있다. 

 

 

구례 노고단과 백두대간 (左에서 右로)

 

 

 백운산 정상 모습

 

 

여수, 순천만 방향

 

 

광양東川  계곡보다 크고 강보다 작은 川으로 광양 앞바다로 흘러들어간다. 동천 상류는 여름에 각지에서 피서객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며 타고 온 차량들로 도로는 주차장이 되어 각한 교통문제를 발생 시킨다고 한다. 동천 주변으로 휴양시설이 엄청나게 들어서 있다. 민박, 모텔, 펜션, 산장, 야영장, 음식점 등 요즘 집 짓는 기술이 좋아 각기 다른 모양으로 주변 경관과 잘 맞추어 짓는다. 그런데 보기는 좋은데 와서 살라며는 고개가 저어질 것 같다. 너무 큰 기업형 위락시설물이라 부담스럽다.

 

 

백운산 정상은 돌덩어리로 산 위에 작은 산처럼 하고 있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냥 올라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밑에 가보니 턱도 없다. 꼭대기에서 길게 늘어트린 밧줄을 잡고 올라간다. 정상답게 사방으로 걸거치는 게 없다.

 

 

(10:00) 백운산 상봉 (白雲山 上峯 1,222.2m)

백운산 정상을 백운산 상봉이라 한다. 정상석은 뾰족한 바위에 세워져 있어 올라서기가 위험하다. 정상석과의 기념촬영은 손으로 디카를 돌려서 잡는다. 여러 번 찍다 보니 앵글 각도도 알고 표정도 지을 줄 안다. 정상석 뒤로 신선대 한재 또아리봉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백두대간 지리산 구간 노고단(左)에서 천왕봉(右).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는 섬진강

 

 

억불봉 조망

 

 

백운산 정상에서 반대편 편한 등로를 따라 내려오면 바로 진틀삼거리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지점이 나온다. 이정표에는 억불봉 5.9km.

 

 

백운산이 북서풍을 막아주니 추위는 금방 사라지고 이내 땀에 젖는다. 걷는 속도를 내면 땀이 계속 나 몸은 젖은 상태가 된다. 이때 속도를 적당히 조절하면서 땀을 말린다. 능선 정상부로 걷는다. 산 밑에서 보면 이런 길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한다. 땅이 촉촉히 녹으면서 마른다. 키작은 떡갈나무와 철쭉이 군락을 짓고 누런 것은 쓰러진 억새들이다.

 

    

백운사 삼거리

 

 

상 백운암

 

 

굽은 소나무 행렬

 

 

억불봉 억새밭은 가을이 장관이고 억불봉 철쭉밭은 봄이 장관이다. 겨울에 눈 덮이고 여름은 녹음에 가려 산은 어디고 같아진다.

멀리 갈 것 없어라

 

 

(12:30) 억불봉 삼거리 통과 (헬기장)

 

 

두번째 암봉

슨 철계단 고정 장치가 풀려 덜렁덜렁 한다. 몇번 세차게 흔들어 보니 나가 떨어지지는 않겠다.

 

 

세번째 암봉

억불봉삼거리에서 작은 암봉 하나는 옆으로 돌아가고 큰 암봉 두개는 타 넘고 간다. 덜컹거리는 철사다리도 있고 밧줄도 메여 있어서 큰 염려는 안해도 된다.

 

 

마지막 철사다리를 내려서면

 

 

삼각뿔처럼 생긴 억불봉 정상이 얌전하게 모습을 나타낸다. 산등성은 잡목 하나 없는 철쭉밭이다. 5월이면 이렇게 고울 수가 상상이 간다.

 

 

(13:00) 억불봉 도착 점심시간 (30분 정도 소요)

아주머니가 싸준 점심이 내내 궁금했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꺼낸다. 손에 물컹 잡히는 것이 부피가 대단하다.

조심스럽게 펼쳐보니 김밥 네 줄에 비닐봉지에 담긴 묵은 지. 김밥은 속이 없는 멘 밥이다. 김에 참기름을 발라 손에 고소한 냄새가 묻는다. 한 잎 물어보니 하얀 쌀밥에 참기름, 깨소금, 소금물로 간을 맞추어 싱겁지도 짜지도 않다. 목이 막히면 묵은 로 숨을 돌린다. 모처럼 씹는 즐거움을 맛본다. 

  

 

억불봉(997m) 정상석과 기념 촬영

 

 

 백운산 종주 능선 정상, 신선대, 또아리봉 조망

 

 

섬진강이 보인다.

 

 

하동 광양 방향

 

 

여수 순천만 방향

 

 

(13:50) 다시 억불봉 삼거리로 되돌아와서 노랭이봉으로 진행

 

 

노랭이봉 가는 길도 억새밭이다. 흰빛 나는 작은 관목은 철죽이고 짙은 고동색 낙엽은 떡갈나무 사이사이 푸른 소나무가 지리함을 달랜다.

 

 

 노랭이봉 삼거리 포스코 백운산 수련장 1.3km

 

 

(14:10) 노랭이봉 정상 도착

 

 

 노랭이봉(804m) 정상석과 기념 촬영

 

 

노랭이 봉에서 본 억불봉

 

 

노랭이봉에서 하산하는 방향으로 이정표는 뚱딴지 같이 헬기장 1.9km로 표시되어 있다. 산 중턱에 있는 헬기장은 무엇에다 쓰나 산불 진화용도 아니고 인명 구조용도 아닌데 백운산과 상관없는 시설물이 아닌가? 동동마을로 표시했다면 훨씬 알기 쉬웠을 텐데 헬기장은 포스코 수련장 시설인 것 같다.

 

 

포스코 백운산 수련원을 뒤로 백운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봐도 사납게 솟은 봉은 없다. 백운산 정상을 기점으로 억불봉까지는 세 곳의 봉우리가 있지만 계속 고도를 낮추고 있기 때문에 평지나 다름없는 기분으로 걷는다. 백운산 종주를 한다면진틀에서 동동마을로 내려오는 코스를 권하고 싶다.

 

 

포스코 수련원 헬기장

 

 

(15:00) 동동마을 약 14km 거리에 7시간 소요하고 오후 3시 청송민박에 도착했다. 주인 부부가 무사 귀환갑게 맞는다. 온 김에 고로쇠 4.5L 두통 30,000원 주고 쌌다. 차가 있으니 가능하지 배낭만 메고 왔다어림없다. 양 가서 목욕하고 역순으로 서울 간다. 산은 잘 보고 가지만 먼 곳까지 와서 빠트리고 가는 게 너무 많다. 담양 소쇄원을 비롯한 10곳 정자, 금성산성, 담양 10 味 중 한우떡갈비와 대나무통밥, 광양의 불고기는 그리울 게다.

 

 

 

 

 

    

                                                        2014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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