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백두대간 속리산국립공원을 넘다
대간 길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몇 번 차를 가지고 다녀 봤다. 편리한 만큼 비용은 많이 들고 안전도 담보할
수가 없다. 서울서 새벽 2시에 출발하려며는 잠은 한숨도 못 자고 누웠다가 바로 일어나는 형국이라 정신
이 혼미한 상태에서 집을 나서는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산행을 마치고 차를 회수하여 서울로 돌아오
는 길도 심신이 극도로 피로한 상태이기 때문에 위험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하루 전에
산밑에 도착해서 하룻밤 자고 출발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화령은 근래에 들어와 행정구역 개편 때 상주시의 서쪽에 있다 하여 화서면이라 바뀌게 되었지만, 옛날부
터 화령으로 널리 알려졌어 지금도 사람들은 화령이라고 부르고 있다. 화령도 벌써 세 차례 방문이다. 여
관, 식당, 목욕탕, 마트를 비롯하여 내 음성을 기억하는 택시기사까지 생겼다.
(6:30) 비재
'화령칼국수'집 아줌마는 새벽에 점심 도시락을 싸주고 '문화장여관'집 아저씨는 비재까지 차를 태워준다.
곤하게 잠자는 시간인데도 밝은 얼굴이다.
비재에 도착할 때 나는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다. 손목에 차고 있는 나침반도 깜빡했다. 비재는 지금 야생
동물이동로 공사 때문에 산을 깎은 양쪽 절개지 모습이 너무 흡사하여 구분이 어렵다. 전번에 하산하면서
도로 위에 서서 차가 가는 왼쪽사면을 다음 코스로 기억한 것인데 오늘은 차가 반대 방향에서 올라온 것이
다. 아저씨가 불러 세우지 않았다면 봉황산까지 가서 되돌아 올 뻔했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갈령삼거리 방향으로 급경사면에 조성된 낙엽송군락지를 올라 숨을 고른 후 조금만 전진하면 500m 봉에
도착, 반갑게 맞는 리본들을 본다.
바위를 만나서 오른쪽으로 돌아 밧줄 잡고 올라간다.
전망바위에 올라가서
삼형제봉 조망
속리산이 岩山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암릉구간이 자주 나타난다.
억시기 마을
(7:55) 못제
백두대간 마루금에 있는 5~600평 규모의 못, 대간 상 유일한 못,
상주에서 후백제를 일으킨 견훤이 보은군의 호족 황충과의 싸움에서 매번 승리하자 견훤이 못제에서 목욕
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견훤이 지렁이 후손임을 아는 황충이가 못에 소금을 뿌려 견훤의 힘을 빼서 승
리한다는 이야기가 담긴 못.
헬기장
(8:45) 갈령삼거리
비재를 출발하면서 갈령삼거리까지 3.4km를 두 시간여 걸려서 왔다. 못제에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발길
을 재촉한 결과 예정시간에 통과한다. 일조시간과 교통편에 맞혀 하산하려면 불필요한 행동은 금물이다.
갈령삼거리를 지나면서 형제봉까지는 오르막 연속이며 발길에는 암석들이 곳곳에 돌출되어 있다.
할배바위는 형제봉 바로 옆에 있다.
형제봉
(9:10) 형제봉 (832m)
추풍령에서 화령까지는 해발 고도 200m 높이에 낮은 구릉이성 산맥을 이루면서 600m 높이의 백학산도 있
지만, 나머지는 3~400m 높이의 산이 대부분이라 산을 오른다기보다 둘레길을 걷는 분위기다. 화령을 지
나 봉황산을 오르면서 대간은 다시 고도를 높이며 그동안 느슨한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형제봉은 속리산 주봉의 호의무사처럼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우뚝 솟아 천지를 굽어보고 있다.
국립공원 말뚝식 거리표시목 형식(16-13)으로 1구간당 500m를 표시한다. 지금까지 오면서 14, 15 말뚝
은 없었고 처음 나타난 말뚝이다.
(9:55~10:10) 피앗재
만수동 1km/30분 거리에 산장이 있으니 급한 사람은 이 길로 하산.
피앗재에서부터 천왕봉까지는 몇 군데 안부를 제외하고 계속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전망대가 나타나면 천왕봉의 멋진 모습과 속리산 주능선을 보게 된다.
충북알프스(구병산)
속리산 정상부 주능선
산죽밭 통과 하면
천왕봉 정상까지 구간 최고의 급경사 지역으로 인내심을 발휘하여야 한다.
(11:50~12:10) 전망바위에서 형제봉 뒤로 하는 대간 길 조망
속리산 속살
국립공원 안내판 형식
(13:15~13:45) 천왕봉 도착 (1058m)
천왕봉은 두 번째 올라 본다.
천왕봉은 국립공원 속리산의 주봉이며 한강, 금강, 낙동강의 분수령을 이룬 삼파수 지점, 한남금북정맥의
분기점이다. 속리산에 최고봉에 올라서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겹겹의 산세와 점점이 박힌 마을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천왕봉과 문장대를 잇는 기암 능선에는 비로봉, 입석대, 청법대, 문수봉이 제각기 다른 형
태를 지으면서 도열하 듯 줄지어 있고 울긋불긋 멋을 부린 등산객들의 옷차림은 흰 화강석 바위와 섞여 인
간과 자연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맑고 파란 하늘은 세상을 품은 듯 꿈적 않고 있다.
화령식당 아주머니가 싸준 점심 도시락을 펼친다.
스티로폼 도시락 2개에 하나는 밥이 담기고 다른 하나에는 찬이 쌓인 은박지가 일곱 개나 담겨 있다. 하나
하나 풀어보니 반찬이 지극 정성이다.
천왕봉에서 문장대까지 한눈에 본다.
지금까지 걸어온 백두대간 마루금, 가까이에서부터 형제봉, 봉황산, 백학산, 황악산, 멀리 보일 듯 말 듯한
덕유산까지 눈물 나도록 정답다.
상고석문
용상바위
비로봉
고리라바위
입석대
조선 후기의 임경업장군이 수도를 했던 곳으로 접근이 불가능함.
신선대
신선은 온데간데없고 신선이 놀던 곳엔 휴게소가 차지하고 있다.
신선대휴게소는 개인 소유물이라고 들었다. 이런 명당자리를 후손에게 물려준 것을 보면 신선이 한 일임
이 틀림없다.
칠형제봉
청법대는 부처상을 하고 있으며 일곱 개 봉우리 맨 앞에 있다고 하는데 확인이 안 된다. 칠형제봉 쪽으로
는 등산로가 없어 접근이 불가능함.
앞에서 부터 문수봉, 신선대, 비로봉, 천왕봉까지 조망
문장대 휴게소가 있는 쉼터에 도착하면서 제일 먼저 대간 길부터 찾아다닌다. 문장대에서 늘재까지 백두
대간 생태계 보호구역으로 기한 없이 통행금지구역으로 묶여있다. 이를 위반하면 10~30원 이하 벌금을 부
과한다고 공시하고 있다. 어디로 갈까 망설여진다. 법주사나 화북탐방센터로 하산 하는 길은 훤히 열려 있
고 사람들이 부지런히 오르내리고 있다. 문장대에 올라 대간 길부터 확인 한다.
(15:30) 문장대 원래 구름 속에 묻혀 있다 하여 운장대(雲藏臺)라 하였는데 조선 세조가 다녀간 후 문장대
(文藏臺)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봉우리에 넓은 터가 있고 가운데 돌덩어리가 자
리 잡게 된 배경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문장대 (1028m)
문장대에서 헬기장을 확인하고 암릉으로 덮인 다음 구간을 진행한다.
대간 길을 알리는 어떤 표시물도 없다. 출입금지 경고판 뒤로 어슴푸레 길이 보인다. 나처럼 구구절절한 사
람이 다니는 迷路 같다.
헬기장을 가로 질러 산죽밭을 통과하여 첫 번째 바윗덩어리 앞에 서니 앞길이 걱정된다. 국립공원에서는
통행금지 표시판을 붙여 놓았으니 등산로 안전시설 미비로 인한 인명사고 책임은 면피하는 것이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다. 좁은 바위 사이를 억지로 비집고 올라선다.
밤티재까지 능선 반이 암릉 길, 앞으로 1시간을 암릉과 시름 해야 하는데 경치 하나는 끝내준다.
집채만한 바위를 안고 사방으로 돌아보니 바위 사이로 사람 몸 하나 겨우 빠져나갈 듯한 틈이 보인다.
사제 로프가 메여 있는 것을 보니 '답답한 사람이 샘 판다'고 대간 종주가 급한 사람의 소행처럼 보인다.
그나마 그런 분이 없었다면 도저히 통행할 수 없는 코스다.
개구멍을 통과할 때는 배낭을 벗고 통과해야 한다.
이런 불실한 줄을 만나면 꼼꼼히 안전을 확인한 후 통과
사방이 낭떨어지, 바람 없어 다행, 크게 뛰어 넘어, 바위 끝까지 기어간다.
큰 나무에 매인 밧줄을 끝으로 1시간여 바위와 시름을 끝내고 흙이 덮인 길을 만난다.
바위에 낙서 보고 꾸짖곤 했는데 오늘은 아니다.
(17:50) 밤티재 도착
당초 계획은 늘재까지 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체력이 다 소진되어 밤티재에서 포기한다.
밤티재 도착 30분 전에 화서 개인택시와 연락하여 6시까지 픽업 해주기로 약속했다.
산을 다 내려오니 등산로를 폐쇄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생태계 보호 등의 이유는 명목상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탐방객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
어 있지 않은 것이다. 눈, 비, 빙판 때는 정말로 위험한 곳이다.
화령에 도착하여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 터미널 바로 앞 화령장에서 목욕을 한다.
옷을 말끔히 갈아입고 나니 또 산 생각이 난다.
2013년 10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