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08 사찰/영주 소백산 부석사,초암사

순흥 배점리 소백산 초암사 답사

안태수 2026. 3. 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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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의 遊山 길에 초암사 답사

 

이번 답사가 세 번째이다. 올 때마다 주변 환경이 변하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전에는 국망봉 지킴터만 죽계천변 임도에 조그마하게 자리 잡고 있어 산사까지 깊은 산행을 했는데 지금은 확장된 도로에 버젓한 주차장까지 갖추어 산속 깊은 오지 사찰이라는 선입감이 확 사라졌다. 소백산 지형은 동고서저이다. 국망봉 동쪽사면은 가파르고 경사가 심하여 산사면이 흩어져 계곡 답지가 않고 아래쪽에 와서야 협곡을 이루고 골도 깊어지고 바위가 가득 차고 폭포와 웅덩이가 만들어져 물 떨어지는 소리 흐르는 소리가 계곡을 울린다. 초암사는 석륜암 계곡이 끝나고 죽계구곡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小白山草庵寺

초암사는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창건 한 절이라고 한다. 의상대사가 소백산을 돌아다니며 수행을 할때 이곳이 산세가 깊고 물도 맑아 작은 초가 암자를 지어 머무르며 부석사를 창건한 후  머무르던 초가 암자에 절을 지어 초암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죽계구곡 9曲 중 현재는 1曲, 2曲, 4曲, 5曲, 9曲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어딘지 모른다.  

 

죽계구곡

소백산 동쪽자락 순흥면 배점리에 있는 계곡이다. 1457년 (세조 3) 세조가 왕위에 오르고 금성대군을 비롯한 반대 세력이 단종복위운동을 하다가 조정에 발각되어 안동도호부 관군과 한양의 철기군이 출동하여 순흥도호부를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학살하여 순흥을 본향으로 둔 토후 순흥 안 씨를 중심으로 300여 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목이 잘린 죽은 사람들의 피가 혈류가 되어 죽계천을 타고 4km 떨어진 피끝마을까지 흘렀다고 한다. 

 

죽계2곡

靑雲臺란 이름은 퇴계 이황 선생이 짓고 글씨다. 원래는 백운대였다고 하는데  퇴계가 소백산 유산을 하면서 이 너럭바위에 올라 잠시 쉬면서 마침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청운대가 좋겠다 하며 즉석에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초암사 단풍

 

초암사삼층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자산)

통일신라 후기 작품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석탑이다. 

 

초암사 전경

산중 수행 사찰로 소백산 자락에는 암자를 비롯해 작은 사찰이 유명했다고 한다.   

 

국망봉 가는 길이다. 국망봉은  신라 말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은거지를 찾아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국망봉에 올라 경주를 바라보며 망국의 눈물을 흘렸다는 산이고 퇴계 이황 선생의 소백산 유산기에 나오는 산이다. 

 

법종각

 

대울전

 

삼성각

 

대웅보전

 

일주문을 나서다

 

초암사 주차장

계곡은 안 보이고 도로만 활발하네 그 옛날 처음 초암사를 찾아을 때 죽계천을 따라 차 1대가 겨우 다닐 정도의 위태로운 흙길이었다 그런 가운데 죽계구곡을 보겠다 차창밖으로 목을 길게 빼내 잡목으로 둘러싸인 구곡의 물소리만 들으며 초암사까지 약 2km 그렇게 올라갔다. 지금 죽계교가 있는 자리 그때 다리가 없었고 시멘트 바닥 위로 계곡을 건너야 했다 차가 무사히 지날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었다. 그 시각 초암사는 저녁이었고 예불 시간인지 공양 때인지를 알리는 종소리가 산사에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2025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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